[Opinion] 감당할 수 없이 뜨거운 것은 처음에 알아차리기 힘든 법이다 [영화]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글 입력 2023.06.1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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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영화라는 사실에 가려진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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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물’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몇 있을 것이다. 그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인데, 칸 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받은 퀴어영화 중 단연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다만, 작품의 우수성보다는 ‘퀴어’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 역시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잘 만든 퀴어영화’라는 인식이 강하기도 했고.


물론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퀴어영화로도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퀴어’라는 프레임에서 이 작품을 감상하기보단, 그저 한 영화로써 바라보는 것이 이 작품의 가치를 더 잘 체감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시각으로 시청했던 사람으로서 그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고, 그렇기에 이 영화가 지니는 상징성을 비롯한 약간의 분석을 하려고 한다. 이미 잘 알려진 부분도 많고, 또 당연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의 소소하고도 개인적인 기록이라 생각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18세기 여성의 삶


 

본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18세기 말, 프랑스의 한 섬에서 결혼을 앞둔 귀족 여성과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간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18세기 프랑스, 귀족, 결혼 적령기의 여성. 이 세 요소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영화의 결말이 마냥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겠구나’였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당대 여성의 현실을 시각적·상징적으로 은은하게 표현하고 있다. 몸매를 강조하는 답답한 코르셋과 드레스 외에는 다른 외출복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해야 하고, 여성이기에 남성 누드를 제대로 그릴 수 없으며,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과거 여성의 수동적이고 제약적인 인생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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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관계의 과정이 순탄할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마리안느는 결혼 기념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찾아온 일시적인 외부인일 뿐이다. 그림이 완성되면, 엘로이즈를 떠나야 한다. 그의 본래 소임을 다했으므로. 그들의 사랑에는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의 애정의 형태는 이성애가 아닌 동성애라는 이유로, 이런 이야기의 끝을 맞이한다는 것은 당연한 절차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영화는 초상화를 완성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결말의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분명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영화는 마지막까지도 당대 여성의 운명적인 삶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철저하게 표현한다. 그림이 완성됨과 동시에 엘로이즈는 정해진 대로 약혼자와 결혼하게 됨으로써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간 관계 역시 끝을 맺는다. 표면적으로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이용한 주체성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각자의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 타율적으로 순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결말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영화는 여러 장치를 통해 이들이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에 있어서는 본인의 주체적인 선택이 있었다고 시사한다.


그중 대표적인 소재로는 그리스 신화가 있다. 영화 중간에는 엘로이즈, 마리안느, 소피 세 명이 모여 오르페우스 신화의 내용을 읽는 장면이 등장한다. 다음은 오르페우스의 내용 중 마지막 부분이다.

 

 

이승과 그리 멀지 않은 저승 끝에 다다랐을 때, 아내를 잃을까 봐 겁났던 오르페우스는 못 참고 고개를 돌려서 그녀가 뒤에 오는지 봤다.

아내는 팔을 뻗어 남편을 안으려 했지만, 그 안타까운 손은 허공만 잡을 뿐.

다시 죽은 그녀는 남편을 탓하지 않았다. 

사랑이 무슨 죄겠는가?

 


이에 대해 소피와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의 행동에 대해 그래서는 안 됐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엘로이즈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여자가 말했을 수도 있죠. ‘뒤돌아봐요.’” 죽은 아내 스스로 이별을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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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간에 대한 감정이 깊어져 갈수록, 또 그림을 그려나갈수록 마리안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의 환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초상화가 완성되고, 그들이 이별을 맞이할 때, 도망치듯이 저택을 나서는 마리안느에게 웨딩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는 말한다. “뒤돌아봐.” 환영으로만 보던 엘로이즈의 모습을 실제로 맞이하게 되면서 그 순간 둘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원전에서의 에우리디케는 행위의 객체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에우리디케의 삶과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에 대한 선택은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엘로이즈는 자신의 새로운 시각을 통해 에우리디케를 재탄생시켰고, 이어 능동적인 관계의 주체로 자신의 운명을 매듭지음으로써 자신과 에우리디케를 동일시한다. 영화의 진가는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 사회적 통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결정을 내림으로써, 시대적 한계 앞에서 무너진다거나, 또는 극복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는 청중의 예상을 비틀어버린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이어 주목하게 된 점은 이 영화에서는 남성 인물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도적 제외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엘로이즈의 아버지는 부재하고, 남편이 될 사람에 대해서는 엘로이즈도 밀라노에 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 상태이며, 소피가 임신한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는 언급도 되지 않고,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남성을 배제함으로써, 여성 ‘위주’도 아닌 여성‘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한다. 해당 작품의 감독 셀린 시아마 역시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된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나의 모든 관심은 여성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여성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그렇다 보니 구체적으로 왜 꼭 여성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영화에서 여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이다.”

 

- 셀린 시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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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 엘로이즈, 소피. 이 세 여성은 신분도, 처한 상황도 각기 다르다. 그렇지만 이들은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평등하고도 존엄한 존재로 바라볼 뿐이다.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고, 게임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존댓말을 사용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 또한 각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같이 해결해 나가려는 모습은 여성 간 보이지 않는 강력한 연대를 보여준다. 소피의 낙태를 도와주는 것이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


고요하지만 파격적이며, 은은하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영화라고 생각한다. 마치 제목처럼, 미미한 작은 불씨가 번져 나중에는 뜨겁게 타오르는 듯한 작품이다. 제때 보러 가지 않고, 거의 4년 가까이 지난 이제야 접한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미처 다 쓰지 못한 가치가 아직 많이 있는데, 그것들을 이 글에 다 담지 못한다는 것이 다소 유감스럽다. 이 글에서 설명하지 못한 이 영화만의 매력들이 존재하니, 시간이 되고 조금의 흥미가 있다면 꼭 감상하는 것을 권유한다. 2시간이라는 다소 긴 상영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해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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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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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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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코넛딸기스무디
    • 저도 이 영화 정말 좋아해요. '고요하지만 파격적이며, 은은하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강렬한 음악 때문인지, 그들의 서사 때문인지 마음이 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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