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에 존재하는 '우주먼지'들에게 보내는 잔잔한 응원 - 제1회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

연극 <우주먼지>
글 입력 2023.06.1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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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뜨거웠던 6월의 어느 주말. 오랜만의 연극이라 여행에 떠나는 듯한 부푼 마음을 안고, 예로부터 창작촌이 있기로 유명한 문래동의 한 소극장에서 열린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 중 프로젝트 스페이스바의 극 <우주먼지>를 관람하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포스터.jpg


 

<우주먼지>라는 제목에 자석처럼 이끌렸던 건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에 대해 골몰하던 습관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대체 왜 태어났을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번 씩은 던져봤으리라 생각한다. 필자 역시도 그렇다. 아니, 수만 번을 되뇌었다고 하는 게 솔직한 답일 것이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침전되는 기분을 느꼈다. 특히 힘에 부치는 날에는 더더욱 그랬다.

 

돌이켜 보면, 답이 없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해서 혼란스러웠지 싶다. 어느 누구도 세상에 태어나기를 선택해서 나오지는 않았을 텐데. 주어진 삶을 진심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찾게 되는 게 곧 정답일 텐데 말이다. 이제는 애써 답을 찾으려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산다는 건 어렵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고뇌를 겪을 필요조차 없었을 건데. 그렇지만 낙담하기에는 조금 이르지 않은가? 그래서 슬프고 지칠 때마다, '어떻게 하면 내게 주어진 삶을, 그리고 지금 처한 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앞서 말한 고민은 비단 필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보통의 존재라면 자아가 형성될 무렵부터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봤을 고민이다. 넓은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한 톨의 먼지와도 같은 존재일 텐데. 이 작은 생명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그렇다면 지금 겪고 있는 것들이 모두 의미가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연극 <우주먼지>는 탄생했다.

 

이처럼 죽을 때까지 해야 할 고민에 대한 누군가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것이 이번 페스티벌에서 <우주먼지>를 선택한 이유다. 과연 극은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을까?

 

 

 

연극 <우주먼지>



짙은 어둠이 깔린 무대 위로 박스에 버스 정류장이라고 쓰여진 빛나는 글씨가 보인다. 별 같기도 하고, 먼지 같기도 한 작고 반짝이는 흰 점과 선들이 어둠의 공백을 채우고 있다. 이윽고 적막이 감도는 무대에 빛이 모두 사라지고, 큰 조명 하나가 무대 중앙을 비춘다. 박스 위에는 주인공이 서있다. 그렇게 극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소녀의 독백과 부유하는 몸짓으로 시작한다.

 

#소녀 - "나는 가끔 우주 먼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소녀는 하루를 성실히 사는, 지극히도 평범한 20대의 모습이다. 소녀는 배우라는 꿈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해야 할 일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꿈을 뒷바라지라도 하듯이 햄버거 가게에서 감정 노동을 하고, 이외의 시간은 모두 꿈을 좇는데에 사용한다. 24시간이 늘 모자라게 살면서도, 원하는 삶에 한 발 짝 다가간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 간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 또한 해보고 싶은 건 이제 할 만큼 하지 않았냐고 말한다. 그렇지만 소녀는 연기를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보험이라도 들듯이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자격증 공부를 병행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에게 열심히 사는 게 결코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차갑기만 하다. 그런 현실에 소녀는 점점 지쳐간다.


#남성 - 행색이 남루한 한 남성이 있다.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로, 삶을 놓아버리고 몇 년 째 길바닥에서 삶을 보내는 중이다. 과거 회사를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그는 사업 실패로 망가지고 만다. 가족과 돈, 그리고 세상을 살아갈 전의를 상실했다.

 

그러니까,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그에게도 한때는 꿈이 있었다. 지금은 비록 사회로부터 패배자 혹은 실패자 소리를 듣지만, 그런 그에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한 번 꺾여버린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렇게 그는 길거리로 나왔고, 하루하루를 흘려 보내듯 산다.

 

#마음 둘 곳 없는 두 사람의 만남 - 어느 날 그는 머물던 버스 정류장에서 한 소녀를 발견하게 된다. 중얼대는 말을 자세히 들은 그는 심상치 않은 내용에 관심을 갖고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녀는 오디션에 가지고 갈 대사를 외우고 있을 뿐이었고, 그 사건 이후로 두 사람의 기이한 관계가 시작된다.

 

두 사람 모두 매일같이 방문하는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칠 확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들은 얼굴을 맞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의 고민과 아픔을 털어놓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삶을 부양하기 위해 힘든 사회 생활을 견디는 소녀의 이야기, 소위 '성공한 사람'이었던 시절을 추억하는 장면 등에서 인간 냄새가 물씬 느껴져 공감을 자아낸다.

 

우연한 기회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그저 노숙인이었을 한 시민 그리고 혼잣말을 크게 내뱉으며 이상한 동작을 하는 어린 학생일 뿐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암울하게만 느껴졌던 일상이 다르게 묘사되는 장면에서 둘의 만남이 터닝 포인트가 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소녀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달리 갖게 되고, 사내는 미련이 없는 선택을 맞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이상 살아내야 하니까


 

"그러니까 살아간다는 건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인 거야.."

 

극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주먼지처럼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로 느껴질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면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큰 행복을 좇기보다는 행복의 빈도수에 더 집중하며 정진하다 보면 삶의 가치를 몸소 느낄 수 있다고 말이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습성이다. "왜?"라고 되묻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감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세상의 선명도를 높여가며 살아간다. 행여 원하던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인간은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곤 한다.

 

<우주먼지>는 그 과정을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보여준다. 꿈은 있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꿈을 가진 소녀, 그리고 과거에 머물러있는 한 사내. 얼핏 보면 다른 삶이지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게 결코 별 거 아닌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극의 진행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다.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소품 사용을 최소화하여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무대 중앙에 설치해둔 박스들은 주사위처럼 각 면에 버스 정류장이나 집 등을 나타내는 글자가 써져있다. 박스의 위치를 옮기거나 쌓는 것으로 장면의 전환 및 공간의 이동을 보여준다. 극 중간에 배우들이 직접 옮기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억지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을 즐겁게 연기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집중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도와줘서 이질감 없이 볼 수 있었다.

 

페스티벌을 기획한 <정:지>는 'Ugly Movement'라는 독창적이고 신선한 몸짓을 통해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묘사하고, 이름처럼 잠시 멈춰서 심연의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는 집단이다. 그래서인지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이번 <우주먼지>에서 선보인 몸짓도 상당히 신선했다. 익살스러운 몸짓은 자칫하면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극에서 웃음을 이끌어낸다.

 

외롭고, 온기가 필요한 두 '우주먼지'의 만남은 어쩌면 새 별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치열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아직 빛을 보지 못한, 광활한 우주의 크나큰 먼지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 연극 <우주먼지>다.

 

 

 

윤화 전문필진.PNG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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