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남겨진 사물, 남겨진 사람 - 보존과학자 [공연]

글 입력 2023.06.1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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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야기가 모이는 곳. '보존과학자1'이 살고 있다. 사실 '1'을 붙이지 않아도 연극 속에서 보존과학자는 한 명이라 특정된다. 아니 그 시간대에 살아남은 인간은 보존과학자1 하나뿐이라 사실 '미래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연극 <보존과학자>가 그리는 미래는 약 2931년이다. 지금껏 발굴되고 보존된 많은 물건들 중 작동을 멈춘 텔레비전 한 대를 보존과학자가 발견하면서 극이 시작된다. 

 

 

[국립극단]보존과학자_홍보사진02.jpg

 

 

 

보존과학자



그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홍보 자료 속 이미지를 보면 굉장히 통제된 미래 사회 속에서 차가운 눈빛과 단호한 몸짓으로 일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수학적으로 계산된 치밀함을 요구할 것 같은 '과학자'라는 명칭 앞에 붙은 인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보존'이라는 단어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게 만든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참고해서 간단히 '보존과학'을 설명하면 물질을 분석해서 원형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주로 문화재의 원상을 회복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 이용된다.


연극은 보존과학자가 존재하는 약 2931년 미래와 텔레비전의 이야기가 되는 세 자매의 가족이 사는 과거로 나누어 진행된다. (국립극단에서 제작한 줄거리에는 '현재'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이 글에서는 무대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관객의 시간대까지 생각하여 가족은 보존과학자의 시점보다, 연극이 올려지는 시점보다 과거이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과거'라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연극은 관객이 이해하기에 쉽지 않은 편이다. 먼저 12명의 존재가 등장한다. 그들은 거의 모든 순간 무대 위에 모두 올라가있다. 감사하게도 이들의 존재가 헷갈릴 일은 없다. 모든 존재의 의상이 각양각색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문 앞에 있는 존재들'로 소개되는 림, 송, 아누, 제제는 연극이 끝나도록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옷 색으로 구별했고, 연극이 끝나고 나와서까지 기억할 수 있었다.    


등장하는 존재들도 많은데 시간대도 과거와 미래 그리고 관객이 보는 가운데 두 시간대가 만나는 (어쩌면) 현재가 존재한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연극의 이야기는 시간대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그리고 연극이 끝나고도 가장 물음표가 남았던 '문'의 존재가 있다. 무대 가장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문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더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연극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다. 

 

 

[국립극단]보존과학자_홍보사진05.jpg

 

 

연극은 두 질문에 답을 찾게 했다. 제목에도 나타난 '보존'이라는 키워드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왜 보존하는가. 무엇을 보존하는가. 내가 보존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마음에 들어 구매한 책들, 친구가 선물한 인형, 성실히 작성한 일기,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 어릴 때 갔던 놀이공원 티켓, 콘서트장에서 받아 온 종이 슬로건, 만족스럽게 본 연극의 MD,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  

 

누군가에게는 보존의 가치가 없는 이것들을 지금까지 함부로 대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는 이유는 나에게는 삶의 어떤 순간을 축약한 사물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온 시간대를 그 사물을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 잠시 생생하게 그날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질적인 보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나의 컴퓨터에, 핸드폰에 용량이 부족한 이유는 지난 시간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 위함이다.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문화재와 예술품을 보존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하나의 날로 지정하여 보존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는 3월 1일 3·1절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4월 22일을 지구의 날로 지정하여 지구를 보존하는 노력의 필요성을 깨닫고, 행동하고 있다.


 

 

왜 보존? 왜 텔레비전?



보존과학자는 최선을 다해 작동이 멈춘 채 보존과학실에 놓여있던 텔레비전을 보존·복원하고자 노력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산되고 탄생한 순간부터 소멸을 향해 시간이 흐른다. 기록된 디지털 데이터는 영원할 것 같지만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기기가 소멸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정보가 된다. 내가 보존하는 것은 오직 나에게 영향을 미친 사물들이었다면 보존과학자는 홀로 남아 사람의 흔적을 지키고 있다. 


존재는 소멸하는 과정에서 흔적을 남긴다. 삶의 흔적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존재를 통해 드러난다. 생명이 없는 사물도 생명체에게 영향을 주며 존재했다는 사실을 소멸의 순간 이후까지 나타낸다. 어릴 때 아끼던 인형은 시간이 지나 모두 헤지고 망가져 버리게 되어도 그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기억하는 한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명이 된다. 존재의 흔적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보존하고자 한 보존과학자는 그 안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을 테다. 유명한 이의 흔적이 담긴 데이터를 확인하고 싶었을 테지만 어쩌면 그가 원한 것은 '백남준'이 아니라도 누군가의 삶이 담겨 있는 영상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보존하는 대상이 텔레비전인 이유이다. 백남준 작가를 아는 보존과학자는 텔레비전이 약 1000년 전에 어떤 역할을 하는 사물이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보존과학실 수장고 안 박스들에 어떤 사물들이 들어있는지 다 알 수 없지만 그가 텔레비전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현장에 없더라도 가장 생생하게 한 시점을 담고 있는 영상을 보여주는 기계를 선택하며 가진 기대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순도 높은 알루미늄을 사용해서라도 텔레비전의 원래 기능을 되찾고 싶어 하는, 불을 켜고자 하는 보존과학자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어쩌면 그는 그저 움직이는 사람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 생존자'라는 보존과학자의 설명은 연극 전체의 이야기가 다루는 넓은 영역으로 인해 소홀하게 인지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지구에 사는 70억 인구 틈에서 시끌벅적 소란스럽게 붙어서 살고 있지만 홀로 남은 인간은 고독하고 외로울 것이다. 그가 원하던 것을 딸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해소했길 바라는 마음이다. 

 

 

[국립극단]보존과학자_홍보사진08.jpg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감동 포인트


연극이 끝난 뒤, 함께 본 친구와 무척 만족스러운 연극이었다고 이야기 나누었다. 같은 연극을 보고 둘 다 좋음을 느꼈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다른 이유로 만족했다. 

 

친구는 과거에 존재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를 얻었다고 말해주었다. 열정적으로 한 번의 인생을 뜨겁게 현실에 부딪히며 사는 첫째와, 자신이 만든 높은 벽으로 인해 스스로 가치를 낮추는 삶을 사는 둘째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 자신의 가치를 찾아갈 시간조차 갖지 못한 셋째의 이야기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 자매는 정말 많이 달랐다. 그래서 그 안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가 나아가고 싶은 힘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을 잘 찾는 재능이 있다. 첫째에게서 불행한 삶의 순간에서도 넘어져 있는 시간보다 억척스럽게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모습을 배우고 싶었다. 셋째에게도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나아가는 용기를 얻었다. 두 사람한테 연약하게 넘어지기도 하지만 회복할 수 있는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둘째는 어려운 순간의 우리가 보였다. 사람들은 매일 넘어지고 일어나지만 매번 잘 일어나다가도 도저히 일어날 힘의 출처를 찾을 수 없는 낙담을 겪기도 한다. 어떤 위로와 친절에도 회복되지 않는 시기. 둘째의 상황이 그러했다.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둘째를 응원했다. 

 

다시 웃음을 되찾길 바랐다. 세 자매 중 웃는 시간이 가장 적은 둘째였지만 연극이 끝나고 누구보다 밝게 웃은 것은 둘째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꿈꾸는 둘째를 닮고 싶었다. 


내가 이 연극이 좋았던 것은 연극을 보는 순간보다 이후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작품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보존과학자>는 희한한 연극이다. 미래를 다루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텔레비전에 들어간 아버지, 그 사물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보존과학자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 기대하던 바와 다르게 뜻밖의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이것은 슬픈 결말이 아니다. 새롭게 발견한 결말이다. 


이 이야기는 이제 내 남은 삶에 오래도록 영향을 줄 것이다. 낡고 보잘것없는 물건에게 의미 부여한 일이 가치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무언가 간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면 예상하지 못했더라도 행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 것이다. 나에게 텔레비전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는가? 일상에서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끊이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질료를 만난 기분이다.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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