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카이로스 시간 속의 물건 [사람]

지나간 시간 속 물건
글 입력 2023.06.1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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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간에는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다. 시계의 분침과 시침이 가리키는 대로 흘러가는 시간,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흘러가는 시간이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반면 카이로스의 시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시간이다. 모두에게 객관적인 시간이 아닌 주관적 시간이다.


사실 모두에게 크로노스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각자의 생활과 느낌에 따라 시간의 속도와 의미는 다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런 주관적 시간의 의미는 서로의 추억과 그 추억 속에 있는 물건에 의해서도 제각각이다.

 

우리의 삶은 카이로스의 시간에 따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기억과 물건을 통해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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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물건 중 하나가 유선 이어폰이다. 이 물건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꽤 보편적이었으나 무선 이어폰이 출시된 이후로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유선 이어폰을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 주변에서 보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이 아직 쓴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나 역시 아직 유선 이어폰을 쓰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나 길을 다닐 때는 무선 이어폰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자의 성격에 따라 유선 이어폰을 원한다면 계속 쓰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술의 발달은 유선 이어폰이 설 자리를 점차 없애고 있다. 내가 휴대전화를 바꾸기 전까지만 해도 휴대전화 아래쪽 겉면에는 이어폰을 꽃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휴대전화를 바꾼 이후로 그런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 휴대전화를 쓸 때면 반드시 무선 이어폰과 연결해야 하는 것이다.


무선 이어폰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의 신선함은 유선 이어폰에 대한 무딘 감정을 대체하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엉킨 줄을 풀며 귀찮아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와 나눠 낄 때도 거리로 인해 이어폰이 빠지는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서서히 무선 이어폰의 편리함에 압도된 것도 사실이지만 초반에는 유선 이어폰을 더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꽂기만 하면 바로 나오는 소리가 좋아서, 블루투스를 켜고 연결할 때까지의 그 찰나의 기다림이 싫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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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개론> 중

 

 

때때로 사람들은 무선 이어폰이 생겨나면서 예전의 낭만이 사라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거 유선 이어폰은 두 명의 사람이 하나의 이어폰 선에 의지한 채 같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낭만이 존재했다. 이는 영화의 소재에도 빈번히 사용되곤 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경우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에게 이어폰 한쪽을 주며 "들을래?"라고 말하는 장면과 이내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듣는 모습은 아직까지 이 영화를 떠올렸을 때 회자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이렇듯 두 사람이 가깝게 붙어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것은 유선 이어폰의 순기능으로 작용하였다.


현재는 이런 장면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유선 이어폰을 쓰고 싶어도 더는 쓰지 못한다. 그래도 아직 나의 노트북에는 유선 이어폰을 사용할 수 있는 구멍이 남아있다. 그래서 노트북을 사용할 때만큼은 늘 유선 이어폰을 사용한다. 앞서 말했듯이 찰나의 기다림도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기도 하지만 유선 이어폰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너무나 편리하게 만들어주었지만, 그 편리함이 때로는 어떤 물건에 대한 그리움으로 변할 때가 있다. 그리고 문득 이런 그리움은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몇십 년부터 계속된 문명의 발달과 함께 여러 물건이 사람의 손길에서 밀려나고 그 잔상이 희미해지는 경험은 계속되어왔기 때문이다. 무선호출기로 불리며 수신기능이 있는 삐삐부터 시작해서 전자사전, 오로지 노래만 들을 수 있는 MP3까지. 모두 한때는 큰 인기를 끌고 사람들과 함께 해왔던 것들이지만 더 좋은 물건이 발명되면서 이제는 사진으로만 구경할 수 있는 물건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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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에 따라 앞으로는 어떤 물건이 추억 속 물건으로 자리 잡게 될까? 우리의 일상 속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물건들도 빠르게 발달하는 세상에 발맞추어 더 발전된 물건으로 대체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물건이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영원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에서만큼은 그 물건을 비롯하여 그것과 함께 한 사람, 기억, 그리고 추억이 평생 떠오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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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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