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해야 돼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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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를 늘 믿고 지지해 주시는 선생님과 만남을 가지게 되어 평택에 있는 본가로부터 조금은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길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가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만남을 고대했다. 사실, 그분의 따뜻하고 굳건한 응원과 배려는 항상 큰 힘이 되어 왔지만, 실제로는 처음 뵙는 어른이셨어서 긴장도 되고,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만나 뵌 분은, 놀랍게도 친근했다.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초면인 상대방을 앞에 두고 생각이 말로 그냥 튀어나오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왜, 첫 대화를 준비할 때 보통 '오늘 가서는 이 얘기를 해야지!'하며 토픽을 생각해 가지 않나. 그게 다 소용이 없었다. 속에 담아두었던 사적인 고민들, 나의 삶의 모토 또는 그에 따른 루틴을 설명하는가 하면, 그분의 최근 이슈들까지 모두 공유 받는 자리가 되어 버렸달까. 재미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발 걸음이 가벼웠다.
그날 만남에서 나눴던 대화의 포인트는 '가벼운 발걸음'인 것 같다. 부러 말씀해 주신 건진 모르겠지만, 입에 붙어 버린 '열심히 하겠습니다.'에 대한 진정한 대답을 주셨다.
'즐겁게 하세요!'
지금 이걸 보고 계신 여러분들 중에, 신입생 또는 신입 사원, 또는 초심자가 있으실까? 인생의 또 다른 챕터로 진입하기 전에 무언가를 막 준비하고 있는 분도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어딜 가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또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일반화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어떠한 일에 부담감을 갖기 시작하는 순간 되려던 일도 안 되는 경험을 해 보니,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더라는 나의 세상살이 느낀 점을 모두와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만나 뵙는 어르신들마다 '입시 준비는 잘 하고 있니?'라든가, '하기로 했던 거 잘 하고 있니?'라는 검토성 질문을 많이 하셨다. 그 질문에 '해야죠..ㅎㅎ;'라는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은 후 대화를 종결시키던 순간의 탈력감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 힘 없이 내뱉던 말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해야 된다'라니.
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공부고, 활동이고, 입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의 기대와 관심이 쏟아지고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아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해야 돼'라는 마음을 먹게 되고 나니 갖고 있던 계획들이 어느새 처리해야 할 숙제들이 되어 있었다. 들고 있던 것들이 너무 무거워서 되려 서 있는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쉬이 뗄 수 없었다.
그래서, '즐거이'하라는 간단하고도 명료한 선생님의 말씀이 더욱 와닿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즐겁다'라는 가벼움이 내 삶엔 꼭 필요했달까. 이뤄갈 게 많은 나에게, 이룬 것이 많은 어른이 주는 가볍고도 따뜻한, 그러면서도 든든한 말씀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아주 큰 동력이 될 것 같다.
나는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긴 글만 써 왔고, 말 줄이기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짧은 글은 성의가 없어 보일까 걱정하기도 했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짧은 글로 마무리한다. 앞으로 있을 일들을 '의무'가 아닌 '선택'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로 하고, 즐거이.
[유서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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