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돌봄과 책임짐의 상관관계, 그 남매가 택한 장막 - 극단 정:지 연출가 페스티벌, 극단 정:지의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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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극단 정:지의 연극 <거울>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배우들의 열연과 움직임 표현, 극을 이끌어 가는 방식에 감명을 받아 한동안 <거울>의 장면들이 떠올랐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극단 정:지의 연극을 또 보러 가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 메시지에 극단 정:지의 이름이 다시 노출되었을 때 고민 없이 향유하기 버튼을 눌렀다.
제1회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의 일환인 이번 연극 <막>은 연극 <거울>과는 다른 장소에서 막을 올렸다. 덕분에 문래 주말극장은 물론 문래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문래 주말극장 역시 몇 번 가 보았던 다른 소극장들처럼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어두운 색의 커튼을 살짝 걷고 들어가면 무대와 가까운 객석이 보였다. 무대는 누군가의 집 거실 공간으로 연출되어 있었다. 제목의 ‘막’이 1막, 2막을 가를 때의 막인지 아니면 보호막이나 가림막처럼 무언가를 가리거나 차단하는 막인지 궁금해하며 좌석에 앉았다.
연극 <막>의 주인공 성희와 성민은 쌍둥이 남매다. 고작 1분 차이지만 태어난 순서에 따라 성희가 누나, 성민이 동생이 되었다. 통상적으로 손위 형제는 손아래 형제를 ‘돌볼’ 책임을 진다. 나이 차이는 아니지만 태어난 시간 차이는 나는 성희 역시 마찬가지다. 성민은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일어난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고 트라우마를 얻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발작을 일으킬 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깊어 실어증까지 생겼다.
남매가 의지할 대상은 서로밖에 없다. 남매는 이미 어릴 적 병약했던 어머니를 여의었고, 그나마 연락을 해오는 삼촌은 조카들이 받은 교통사고 보험금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성희는 성민을 다정스레 보살핀다. 남동생을 대하는 성희의 표정과 말투는 밝고 친절하지만, 그것이 꼭 어린아이 대하는 것 마냥 다소 과한 감이 있기는 하다. 심리적인 상처가 큰 동생을 부서지기 쉬운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필담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성민에게 성희는 함께 수어를 배워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것을 영상으로 찍는다. 안녕하세요, 사랑해, 고마워, 괜찮아 같은 말을 성희가 수어로 알려주면 성민이 수어를 외운다. 성희는 성민과 수어 수업을 이어가는 중간중간 장을 보기도 하고, 보험금을 탐내는 삼촌의 전화에 화를 내기도 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비밀이 있는 것 같다. 성희는 자기 앞으로 온 택배를 성민이 뜯어 보면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성민은 성희가 집을 나가고 혼자 있을 때면 미묘한 조소를 얼굴에 띄운다. 마치 내가 뭐하고 있는 걸까, 이게 다 뭐하는 짓일까 라는 말이 그 아래 깔려 있는 듯하다.
두 사람의 비밀은 곧 밝혀진다. 혼자서 유튜브 영상들을 넘겨 보며 시간을 때우던 성민은 우연히 성희의 유튜브 채널을 발견하게 된다. 알고 보니 성희 앞으로 온 택배들은 유튜브 촬영과 관련이 있던 것이었다. 성희는 성민에게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어떠한 언질도 주지 않고 성민의 일상 일부를 올려 성금과 물품 후원을 받고 있었다.
성민의 비밀 역시 만만치 않게 놀랍다. 혼자 있다가 교통사고의 악몽을 꾼 성민은 발작을 하다가 사고 당시 죽어가던 아버지의 유언을 복제하듯 중얼거린다. 성민아, 네 누나 네가 지켜야 해. 네가 누나를 책임져야 해. 그런 말들. 여기까지만 해도 충격으로 인해 잠시 언어 기능이 돌아온 것인가 했는데 삼촌과의 전화 통화에서 너무나 차분하게 대화를 하는 것을 보면 애초에 실어증이 있었던 게 맞는지 의아해졌다. 삼촌에게 성민의 상태에 대해 전해 들은 성희는 성민을 추궁한다. 성민은 결국 사실을 말한다. 자기는 처음부터 말을 못 한 적이 없었다고.
그들은 각자 장막을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한 집에서, 의지할 구석이라곤 서로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그 위장의 장막을 두른 이유에 대해 성민은 누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 경기를 일으키는 건 진짜지만 말 못 한 적은 없다고. 그런데 내가 말을 못 하니까, 누나가 살아났어. 누나가 행복하다면 자기는 유튜브 채널을 위해 평생 말 안 하고 살아도 된다고까지 말한다. 그런 성민의 말에 성희는 외친다.
내가 나만 좋자고 이래?
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 아마도 성희의 대사에는 이 말이 생략되어 있을 것이다. 성희가 이 2인 가족 안에서 먼저 맡은 역할은 돌봄이었다.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로 실어증을 갖게 된 남동생을 돌보는 누나. 그런데 이 돌봄은 가계를 꾸리는 생계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동생 성민의 트라우마와 그 발현 양상은 이 유튜브 채널의 성격을 만드는 특징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유튜브 채널의 후원 계좌로 들어오는 성금과 기부받은 생필품은 가계에 보탬이 되었고 성희와 성민이 ‘먹고 사는’ 데에 쓰였다. 어찌 보면 성희가 성민의 고통을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채널 운영으로 얻은 자원을 같이 소비함으로써 나는 너를 책임졌다는 말을, 성희는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성민이 먼저 ‘나를 책임지기 위해 나를 이용해도 좋다’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
가족의 형태는 전보다 다양해졌지만 아직도 ‘정상가족’의 이미지라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들의 조합을 떠올리게 된다. 부모는 외벌이든 맞벌이든 돈을 벌고 관리하며 자녀를 돌보고 양육한다. 자녀는 가정 안에서 독립할 능력을 키우며, 언젠가는 자기 가정을 만들고, 자신을 길러준 부모의 노후를 책임질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경제공동체이면서 돌봄, 양육의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가족이라면 성희와 성민의 가족 형태 역시 그 기능들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성희와 성민 남매가 유지하는 가족 형태의 돌봄 기능과 경제 기능은 순환되는 원형 구조로 이어져 있다. 가정의 밖, 사회에서 노동을 하여 임금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가족 내의 일을 콘텐츠화하여 외부로 송출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자원을 가족 안으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성민은 누나가 ‘돌봄-생계를 책임짐’의 순환 고리를 만드는 동안 한발 물러나 있는 듯 보이지만 이 순환 구조의 기반은 바로 성민의 트라우마와 실어증에 있다. 그는 누나를 책임져 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손위 형제가 손아래 형제를 돌보고 책임지는 것이 여전히 유효한 사회적 통념이라면, 집안에 남은 유일한 남자 형제가 다른 여자 형제를 보호하고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사회적 통념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책임질 당위성 내지는 당위성에 대한 압박감 같은 것을 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압박감을 더 강하게 느낀 쪽은 성민이다. 성민은 유일한 가족이자 누나인 성희를 책임지는 대신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자신이 말을 잃어버렸다고 믿는 누나 앞에서 누나의 믿음을 부정하지 않고 그 오독이 더 강화되도록 만들었다.
성민은 그것이 누나를 위한 희생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정말 희생이기만 했을까? 인간의 감정이나 판단에 순도 100%의 것이 드물다 하더라도 나는 성민의 선택이 희생보다는 회피에 조금 더 기울어져 있다고 보았다. 자신을 책임지며 갈수록 생기를 보이는 누나의 모습을 보며 안심이 되기도 했겠지만 혼자 있을 때 그가 보인 표정은 실소나 조소에 가까웠다. 그건 상황에 대한 조소였다. 주체성을 일부 저버린다는 선택은 자기가 한 선택이어도 좌절감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인간은 자기 의지를 무거워하면서도 의지대로 살지 못하면 말라 죽어가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좌절감이나 무상함은 상대를 위한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상대를 향한 분노로 변질되기 쉽다. 희생은 어느 순간에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라는 생각이나 애증을 만나면 그 태도의 본질이 쉽게 흐려진다. 가짜 실어증을 들키지 않았다면 성민의 희생도 언젠가는 누나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 가능성이 꽤 크다고 보았다.
모든 진실을 알아버린 후 남매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먼저 움직인 쪽은 성희다. 성희는 무방비상태로 자고 있는 성민에게 다가가, 성민의 트라우마를 가장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그 소리,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재생한다. 성민은 이번에도 죽을 듯이 괴로워한다. 성희는 그런 성민을 지켜본다. 정도는 알 수 없지만 성민의 트라우마는 심히 악화될 것이다.
조명이 꺼지고 배우들이 막이 내림을 알리는 인사를 했다. 짧은 러닝 타임 때문에 관객들은 정말로 연극이 끝난 것인지 의아해 하고 있다가 박수를 쳤다. 이 부분이 상당히 아쉬웠다. 결말 자체도 모호함을 내포하는데 관객들이 극이 끝났는지를 파악하지 못해 결말의 여운을 해석할 겨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성민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해질지, 그의 실어증이 결국 영영 진짜가 되었을지 연극은 관객에게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성희는 성민의 악화된 트라우마를 분명히 이용했을 것이고, 그것이 영구적인 상처에 가까워질 수록 남매에게 만들어진 돌봄과 생계와 책임의 순환 구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뒤틀린 안정성을 향해 달려가며, 두 사람 사이의 막은 걷혔다. 이제 그들의 막은 그들과 세상 사이에 있을 것이다. 위장의 장막은 그들을 묶어주는 보호막이 되어줄 것이며, 막은 갈수록 더 강해지다 마침내 당연해져 견고하고 투명해질 것이다.
이는 차마 해피엔딩이라고 부르기 힘든, 그들만의 아늑한 엔딩이었다.
[신성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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