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문찐이다 [도서/문학]

민음사 인문잡지 <한편 - 플랫폼>
글 입력 2023.06.0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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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찐이란, 대중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 즉 문화 진따를 지칭하는 말이다. 좋은 말은 아니다. 얼추 문화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뜻인데. 솔직히 이 말을 듣는다고 해서 별 타격감은 없다. 더불어 직접적으로 ‘너 문찐이다’라고 들은 적은 없다. 내가 혼자 생각했을 뿐.

 

요즘 사람들과 유독 대화할 때 내가 문찐임을 많이 자각한다. 인스타에서 유행하는 짧은 동영상들인 릴스, 유행하는 각종 말들, 유행하는 챌린지 등을 잘 모르는 난 뒤처진 걸까? 그걸 알아야만 이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난 이 문화들 없이도 잘 살고 싶다. 내 욕심이 과한 걸까? 이 잡지를 읽고 내 의심들은 더욱 불거졌다.

 

 

‘시시각각 바뀌는 타임라인을 볼 때면 이상한 소외감과 불안감을 느낀다. 빠르게 흘러가는 이슈들의 한복판에서 나는 어디에 귀 기울이고 무엇은 무시할지 판단하지 못한 채로 엄지손가락을 움직일 뿐이다. 나를 둘러싼 이야기들의 기승전결은 이미 지나가고 흘러간 시간과 사건의 기록만이 남아있다.’

 

 

전형적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휴대폰 화면 속 플랫폼의 형태이다. 한번 새로 고침을 하면 눈 깜짝할 사이 수많은 것들이 새로 업데이트 되어있다. 그것이 익숙하지 않다 가도 한두 번 클릭하면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어떤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빠져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새롭고 자극적인 것들에 매료된 채 한두 시간은 그냥 화면을 쳐다보며 보내게 된다. 이 속에서 우리의 지각 능력이 존재하는가? 스스로 정보를 찾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식별할 자유로운 정보 탐색의 권리 따위는 없다. 

 

그저 뜨는 정보들을 마주해야만 하고, 거기서 불편한 정보를 보게 되었을 때 감수해야 할 사람은 처음 이곳에 들어온 본인이다. 조금 과장된 비유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억지로 입안에 음식물들이 들어가고, 그것을 뱉어낼 수조차 없는 상황과 같다.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난 자주 플랫폼 안에서 소름 돋는 경험을 한다. 예를 들어 맞춤형 광고를 허용하면, 이 자그마한 휴대폰 하나가 나를 간파한 느낌이 든다. 내가 찾고자 생각했던 온갖 물건들, 내 취향을 고려한 쇼핑 리스트, 내 질환까지… 그 어떤 곳에도 이러한 사적인 나의 정보들을 흘린 적이 없는데 플랫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휴대폰이 다 짜 놓은 판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닐까? 휴대폰 속에서 과연 내 자유의지는 존재하는 게 맞을까?

 

 

‘연결은 종종 피곤하고, 소통은 쉽지 않다.’

 

 

가끔 내가 ‘이 빠르고 바쁜 정보화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연락하는 것이 여전히 버겁다. 전에 사귀었던 연인들도, 친한 친구들에게도, 심지어는 부모님께도 ‘연락’이라는 것이 굉장히 일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서로 최소한의 소통을 위해서 연락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자. 

 

우선, 긴급 상황이 아닌 이상 ‘당장 해야 할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 하룻밤, 아니 며칠 지나서 해도 아무 문제 없을 뿐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그 이야기는 텍스트로 쳐서 공유했을 때 보다 만나서 했을 때 훨씬 더 재미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서로의 표정, 목소리 등의 생생한 묘사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간이 지나면 감각이 더디어질 것 같아 빨리 이야기를 해서 처리해야하는 이야기들도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이건 극소수의 예외인 이야기들이다. 결론적으로 ‘만남’을 중요시하고 소중히 하는 난 만남을 대신하고 있는 ‘연락’이란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가끔 연결의 필요성을 느끼곤 한다. 바쁜 현대인들은 매일 같이 만나서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취하면서 서로 연결이 되길 원하고 소통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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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빠르다. 한순간에 구닥다리가 된 이 기기.

 

 

이 상황에는 근본적인 외로움과 유대를 원하는 인간 본능이 작용한다. 하지만 이 이해관계 때문에 더 피곤해진다. 누군가는 연락이 절실하고 누군가는 그 니즈를 받아주는 관계인 것이다. 서로의 원하는 정도가 다른데, 이 정도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인간 심리적으로 엮일 수 있는 문제니 곪기도 쉽다. 이 피곤함에 메이기 싫어 난 연락을 회피해왔다.

 

한번 하면 계속해야 할 것 같고, 없으면 허전하고, 이 연락이란 굴레 안에 갇히기가 식은 죽 먹기다. 그 덫이 심어질 위치조차 없애 언젠가 이 연락의 문제 때문에 공허 해질 수 있는 나를 지키려고 한 방편이라고 할까?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지만, 내 행동에 대한 변명이자 해석을 부여하자면 이렇다.

 

 
‘기기들이 포착하는 ‘나’는 실시간으로 변형된다. 기술 없이는 기억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는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휴대폰과 손 깎지 낀 채 살아간다. 시간을 봐야 하고, 연락을 해야 하고, 무언가를 사야 하고, 이런 작은 필요들을 충족하다 보니 휴대폰은 더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가끔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보지 않고 멍하니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소외감이 몰려오면서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휴대폰을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휴대폰을 보는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된 이 세상, 그 몰두한 모습이 좀비 같을 때가 있다.

 

만약 내가 휴대폰, 번호가 없다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내 존재가 인정받을 수 있을까? 휴대폰이 없다면 가장 크게 엄습해올 두려움이다. 어릴 적, 친구 생일이나 번호를 외우는 건 우정의 증표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생일조차 외울 필요가 없다. 카카오톡에서 그날그날 생일인 친구들을 알려주며, 선물까지 무엇을 갖고 싶은지 알 수 있다. 휴대폰이 없다면 생일 축하부터 받기 어려울 것이다.

 

 

‘생각은 감각이다. 우리는 손쉽게 얻어지는 특정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나도 몰랐던 욕망을 발견하고 흥미로운 생각을 촉발하는 만남을 원한다.’

 

 

챗 gpt가 우리의 생각, 일 모든 걸 대체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기술은 그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 그 욕망은 감각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심장이 뛰는 것들에 반응한다.

 

현재 논란이 되는 기술과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든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보았다. 이글을 읽으면서 무감각해진 기술과 자신의 자아 그 경계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길 바란다.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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