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We: 우리의 가까이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6.0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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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텔란의 작품들은 보기에 단순하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극사실적 조각과 회화가 주를 이루며, 대부분 미술사를 슬쩍 도용하거나 익숙한 대중적 요소를 교묘히 이용한다. 익살스럽게 냉소적인 일화로 포장된 그의 작품은 무례하고 뻔뻔한 태도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하고 우리 인식의 근간을 순식간에 뒤엎어버린다.”


카텔란의 전시를 보게 되면 전시 소개가 너무나도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을 보면서 왜인지 모르겠는 불편함이 느껴지고 특히 카텔란의 작품들 속, 눈과 마주할 때마다 고개를 피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동안 느꼈던 예술과 우리의 거리감이 가까워지다 못해 우리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하는 삶의 모습들과 사회의 단면들은 일종의 불편함과 회피를 유발했다.


 

 

<모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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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가 한창 많은 관람객들에게 관심을 받을 때,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인지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으로 전시를 보게 되었다. 물론, 전시를 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현장 입장도 없어지고 예약도 빠르게 마감되어 하루 전 날 겨우 잡은 취소표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데도 사람이 많아서 한 작품을 자세히 보려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고 심지어 복제된 바티칸 시스티나 내부를 구경하기 위한 줄은 끝도 없이 길었다.

 

축소판 바티칸 시스티나 내부를 줄을 서 있다가 마주한 작품은 <모두, 2007>이다. 흰 천으로 가려진 시신들이 레드 카펫 같은 바닥에 일렬로 전시되어 있다. 비극적인 사건과 참사의 현장을 기리기 위한 작품으로 일부러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사건들을 형상화하며 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흰 천에 덮여 있어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시신들은 결국 우리 모두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기에 비극적인 사건과 참사가 우리와 ‘관련 없는’ 것이 아닌,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본 작품은 그저 지나가버리고 그 너머의 바티칸 시스티나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바로 옆에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카텔란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과연 이러한 것이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결국 사람들은 현실을 다시 외면하고 이상과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만 집중했다. 카텔란이 꼬집고자 했던 사회의 모습이 전시장 내부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아 충동적인 마음에 축소판 시스티나를 보기 위해 서있던 줄에서 빠져나왔다. 한 명이 사라졌다고 좋아하던 뒷 사람들의 이야기도 잊을 수 없다.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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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2007>의 옆, 벽에 끼인 것 같은 말의 형태가 눈길을 끌었다. 영화에서든, 사진에서든 대부분 말의 앞모습을 보여주기에 말의 뒷모습을 봤던 경험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말은 그렇게 위풍당당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고 많은 예술가들 또한 말을 유사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카텔란은 힘차게 도약하려다가 벽에 가로막혀 관객과 엉덩이를 마주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전시함으로써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말에 대한 관념을 변화시킨다.

 

말은 높이 날아오르며 성공을 중시하는 사회의 기준을 따라가려고 하지만, 날아오르기는커녕 앞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좌절의 순간을 경험한다. 벽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 말의 표정은 어땠을까. 말의 뒷모습에서도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드러나는데, 그 앞모습은 어떨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작품이다. 결국, 온전한 성공을 상징하는 것은 없으며 성공만을 위한 길을 좇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직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전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서 느꼈던 좋은 점은 관람객들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었다. 평면적으로 붙어 있거나 차례대로 나열되어서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가 아니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보기 위해서 천장도 쳐다보고, 바닥에 있는 작은 것들도 살펴보고 어쩔 때는 쭈구리고 앉아서 작품들을 자세히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특별한 형식 없이 배치되어 있는 작품들은 오히려 관람객들을 전시에 참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 해당 작품도 눈높이에서는 벗어나 높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에서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메시지, 관람객들의 주목까지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카텔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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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텔란은 도덕적 합리성이나 계몽적 이상을 설파하는 예술가 역할을 거부한다. 그는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 불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릿광대를 자처하고 스스로를 희화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우리 삶의 폐부를 찌르는 예리한 현실 비평가이기도 하다. 전시장 도처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수많은 카텔란은 침입자, 경찰, 사제, 범죄자, 예술가, 소년을 능숙하게 연기하며 비관적이고 우울하며 냉소적인 카텔란판 인간 희극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눈을 마주치면 느껴지던 이유 모를 불편함들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텔란이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과 메시지는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회피해왔던, 알아도 알지 못한 척했던 인간과 사회의 모습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완전하게 우리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에 전시를 통해 마주한 것들이 다시금 우리가 회피했던 그 순간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과정들이 우리를 ‘불편함’이라는 감정 속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누군가는 다시금 작품에서 빠르게 발길을 옮기기도 하겠고 누군가는 당당하게 직면하기도 한다.

 

카텔란은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우리를 어디서나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언제 어디서든지 인간의 모습과 사회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암시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가 앞으로 인간과 사회의 어떠한 면을 비판할지,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혹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단편들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기대와 함께 다시 한번 느끼게 될 불편함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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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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