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사북』 : 구원을 위한 기억의 문학화

글 입력 2023.06.04 22: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내사랑사북.jpg

 

 

들어가며


 모든 기억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흐릿해진다. 그 기억이 권력이 은폐하고자 하는 무언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땅에서 오랫동안 1980년의 사건들은 그런 기억의 전형이었다. 1980년대는 1980년 1월 1일이 아니라 1980년 5월 18일에 시작되었다고 말해진다. 자국민을 향해 헬기 기총까지 난사한 광주에서의 학살이 80년대 내내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을 낳으면서 한 시대를 선명하게 특징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해 군홧발로 짓밟힌 곳은 광주만이 아니었다. 광주에서의 참극이 발생하기 한 달 여전인 4월 21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사북은 산골이다. ‘산골’하면 으레 전원적 풍경이 연상되고 낭만이 느껴지지만,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사북은 극한의 노동조건이 지배하는 삶의 전쟁터였다. 광부들은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으며, 열악한 삶의 처지를 감내해야 했다. 추위가 미처 가시지 않았던 강원도의 늦봄, 광부와 그 가족들은 계속된 슬픔을 거부하며 분연히 일어났다. 이옥수는 소설 『내 사랑, 사북』을 통해 그 항쟁의 풍경을 삽화처럼 그려낸다.

 

 

‘짝사랑’이라는 ‘통과의례담’


 재미있는 점은 소설의 화자가 광부도 광부의 아내도 아닌 광부의 딸이자 여중생 ‘수하’라는 사실이다. 서사의 표층은 젊은 광부 ‘정욱오빠’에 대한 ‘수하’의 짝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수하의 ‘통과의례’로서의 짝사랑은 우연적 계기를 통해 시작된다. 가져온 양동이를 내려놓고 나서 물을 받기 위해 수도꼭지를 틀려는 찰나, 자신의 뒤를 지나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드는 순간 수하는 ‘정욱’을 처음 보았다. 자신을 보고 싱긋 웃는 오빠를 본 수하는 “그 순간 알 수 없는 슬픔이 싸르르 밀려오면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하얀 파도가 일었다.” 고 말한다. 가슴이 아릿해진 수하의 뇌리에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오빠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정욱을 본 다음날 아침 수하는 심한 열감기를 앓은 것 같다. 오빠와 같이 걷게 된 수하는 짝사랑을 찬란한 슬픔으로, 서로 엇갈린 길을 가고 있는 삭도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듯 광부인 오빠를 사랑하는 수하지만 동시에 그는 반드시 탄광촌에서 탈출하고야 말겠다는 꿈을 품는다. “광산촌에서 사는 한 불가항력인 아니꼽고 더러운 일들”, 아빠의 고된 노동, “사방이 온통 탄가루로 덮여 있는, 흑백사진처럼 시커먼 이 곳”을 수하는 못 마땅해한다.

 사춘기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수하는 순수한 사랑의 열병을 격정적이고도 우울하게 겪는다. 작품에서 표층 배치된 ‘청소년-짝사랑-통과의례’는 자칫하면 엄숙해질 수 있는 ‘사건’에 대한 기억서사의 전달 방식을 경량화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부담 없이 기억의 흔적을 매개할 수 있게 해준다. 소설은 연애담과 항쟁담의 착종을 통해 사회 대 개인, 역사 대 일상이라는 도식을 허물며 세계에 대한 대립적 이해 방식을 약화시킨다. 이는 역사 속 인물의 개별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변증법적 이미지: ‘점묘화’ 그리기


 작가는 수하를 내세워 1980년 4월 사북 탄광 노동자들의 쟁의가 발생했던 정치적 공간으로 향한다. 『내 사랑, 사북』에서 작가는 광부의 딸인 수하를 통해 항쟁 직전 탄광촌 일상 공간의 풍경을 몽타주 방식으로 현시한다. 이는 벤야민이 ‘변증법적 이미지’(Dialectical Image)로 명명한 것으로, “극히 작은, 정밀하고 잘라서 조립할 수 있는 건축 부품들로 큰 사건을 세우는 것”, “실로 자그마한 개별적 계기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전체 사건의 결정체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옥수는 이러한 변증법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사북항쟁의 편린들을 형상화한다.

 작가가 변증법적 이미지를 매개로 소환하는 기억 공간은 사북 탄광촌의 생활 공간인 ‘사택촌’, ‘동네 우물’, ‘안경다리’, ‘사북시장’, ‘사북지서’ 등과 광부들이 출근하여 석탄 채굴작업이 이루어지는 작업 공간인 ‘광업소’와 ‘광업소 마당’이다. 수하는 부모의 생활담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주거 환경이 좋은 회사 중역과 사무원 그리고 “사회책에 실린 거제도 포로수용소”같은 광부의 열악한 주거 공간을 감각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거주자의 계급적 차이를 드러낸다.

 

 “길쭉한 슬레이트 지붕 밑으로는 우리 엄마 말처럼 “키 큰 놈이 발을 쭉 뻗으면 발이 벽밖으로 튀어나갈” 토끼장 같은 집이 한 동에 다섯 집씩 붙어 있다. (중략) 그 한 칸에서 너댓 식구가 서로 엉겨 붙어 새우잠을 잔다고 했다. 아빠는 “사무실에서 펜대를 굴리는 사무원들이나 회사 간부들에게는 널찍한 집을 지어 주고 새 빠지게 탄 캐는 광부들에게는 콧구멍 만한 사택을 집이라고 지어준 놈들은 벼락 맞아 죽을 놈들”이라고 했다.”

 

 사택촌은 산업화 시기 형성된 노동계급의 집단 거주 공간으로, 중산층의 널찍한 주택과는 대비되는 열악한 주거 환경을 보인다. 사택촌의 풍광은 전형적인 계급과 공간의 일치를 보여주는데, 이는 ‘계급으로서의 광산노동자들’의 일체감과 연대의식을 강화한다. 요컨대 부르주아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을 대거 산출하는 셈이다. 홉스봄은 “궁전과 대귀족의 저택, 시장, 대성당, 공공 광장과 빈민가가 뒤섞여” 있는 도시의 결합 형태가 “폭동을 부르는 초대장” 이라고 말했다. 소설에서 재현된 사북의 경관은 이 문구에 들어 맞는다. 공동우물과 빨래터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다양한 소문과 여론을 조성하는 일종의 공공 광장으로 그려진다. 우물은 사택 가족들이 일상을 공유하며 탄광촌 소식이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마을 방송국인 것이다. 이처럼 ‘팔도공화국’이라 불리는 탄광촌에서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확대 생산되기도 한다.

 안경다리는 사북시장과 탄광촌을 이어주는 공간으로 사북 읍내와 광산을 나누는 경계선이 된다. 안경다리 안쪽에 있는 사북시장은 풍요의 공간으로, 안경다리 바깥의 탄광촌은 험한 노동과 빈곤의 일상 공간으로 이미지화 된다. 항쟁 당시 광산 사람들은 시장으로 향하며 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부당한 대우를 안경다리를 넘어 세상에 폭로하고자 했다. 사북 시장은 석탄 산업의 호황으로 불어난 광산 자본이 유입되어 “광산에서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지역 담론을 형성한다. 그러나 담론의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시장을 배회하는 광부가족에게는 “한 달에 한번씩 많든 적든 많든 월급을 받으니 돈이 흔해서 흥청망청 술을 마셔 댄다”, “사택 아주머니들은 월급이 나온 뒤 곗날이 되면 어울리지도 않는 립스틱을 시뻘겋게 바르고 무리를 지어 뺀질나게 사북시장을 오르내렸다.”와 같은 향락의 이미지, “고향을 떠나온 막장 인생들이 한 잔 술로 설움을 달래는” 애환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둘 중 어느 이미지가 우세하던 시장은 광부들이 막장에서 목숨을 담보하는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벗어나 긴장을 해소하고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는 도피와 쾌락의 장소로 기능한다.

 항쟁 이후 시장은 집회 공간으로 변용한다. 그동안 자본과 권력의 감시 아래 삶을 억압당했던 그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몰려간 사북시장은 광부와 그 가족들이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는 참여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생산에서의 소외에서 비롯된 슬픔을 술과 립스틱으로 ‘잊으려’했던 소극적 ‘소비공간’으로서의 사북시장은 영원한 슬픔을 거부하고 그것의 근원을 적극적으로 뿌리 뽑고자 하는 ‘정치공간’으로 뒤바뀐다.

 한편 사북시장과는 대조적으로, 사북지서는 사택촌 주민들을 통제하는 억압적 국가기구로 그려진다. 사북지서는 탄광촌의 열악한 주거 환경, 3교대 근무로 인한 이웃간 소음 문제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툼으로 비춰지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탄광촌의 질서를 규율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항쟁 당시 사북지서 마당에 모여든 노동자들은 폭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최후의 보루였던 무기고 앞에서 해산한다. 사북지서는 체제의 권위를 표상하는 공간이자 광부들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광업소는 마을의 젖줄인 석탄의 생산과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지만 광업소 마당은 안전한 작업 환경이 보장되지 않아 막장 사고가 일어났을 때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마당은 살아남은 자에게는 안도의 공간이고, 주검을 마주한 가족에게는 통곡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광업소 마당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발 걸치고 있는 광부들의 처지를 환기하는 공간인 것이다.

 

“주검이 실린 들것은 구급차 안으로 들어갔고, 젊은 아주머니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구급차에 한 발을 올리고 있었다. 명치끝에서 꾹꾹 울음이 치받쳤다. 속에서 분이 솟으며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을 손톱을 세워 할퀴고 잡아뜯고 싶었다. (중략) 저 엉겨 있는 핏덩이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렇듯 작가는 탄광촌의 모습을 몽타주 기법으로 보여준다. 이는 현재의 관점에서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 행위이다. 벤야민은 “기억은 체험된 것의 매개물이며, 파묻힌 자신의 과거에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은 발굴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과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거듭해서 동일한 사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옥수는 사북사건의 “기억이 지나간 것을 알아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매개물” 로써 막장에 묻히지 않도록 발굴한다. 이옥수는 연대기적 서술에 입각한 역사주의가 실증과 객관의 이름으로 무수한 사건을 배제하거나 개별 사건의 고유성을 인정하지 않아 승리자의 기록으로 남겨질 뻔한 사북의 기억 공간을 심층적으로 해석하며 기억투쟁을 전개한다. 이는 “위험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게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과거의 이미지를 붙드는 일”이라는 “역사적 유물론의 중요한 과제”를 해내는 것으로, 저항의 기억을 구원의 메시아가 스며드는 시간으로 포착, 텍스트로써 구현하는 작업이다. 개별이면서 총체이고, 총체이면서 개별인 이 반기억의 섬광–변증법적 이미지들–을 소설은 마치 점묘화와 같이 그려낸다.

 

 

계급투쟁과 역사유물론


  소설은 서사를 개진하는 내내 광부와 그 가족들을 포함한 ‘사택촌 사람들’의 계급적 처지를 서술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 이는 이내 벌어질 계급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진술이다. 오일쇼크 이후, 정부와 자본은 급증한 석탄 수요에 맞춰 석탄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광부들에게 과로를 강요한다. 작가는 수하의 시선을 통해, 3교대를 하면서 눈치 보느라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광부들이 놓인 비인간적 작업 환경을 들춰낸다.

 

“아빠는 갑반 때는 보온 도시락에 밥을 싸 가지만 을반이나 병반 때는 간단하게 김밥 두줄을 돌돌 말아서 주머니에 넣고 간다. 생각해보면 밤낮이 똑같은 굴속에서 먹는 도시락은 갑반 때나 병반 때나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도, 아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갑반 때는 모두 어깨에 도시락을 둘러메고 일을 간다”

 

 수하는 아빠의 근무시간이 달라져도 도시락을 먹는 탄광은 밤낮이 구별되지 않는 굴속이기 때문에 보온도시락과 김밥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함으로써 광산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환기한다. 자본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형식적으로 정기 검진을 실시하고 진폐증을 은폐한다. 광부들 역시 진폐증을 앓고 있어도 생계 때문에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쳐 평생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 놓인다.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탄가루를 많이 들이마시기 때문에 폐에 탄가루가 쌓여서 진폐증 같은 직업병이 생긴다. 사람들은 이 병에 걸려서 병원 가는 사람들을 보고 ‘코 꿴다’고했다. 한번 병원에 가면 살아오기 힘들다고 하는 말이다. (중략) 광부들도 막상 진폐 판정을 받으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식구들 먹여 살릴 걱정에 숨기면서 버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하는 우물 방송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암행 독찰대’의 존재를 전한다. 일명 ‘땅개’로도 불리는 독찰대는 사측이 고용한 정보원으로, 지배와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한다.

 

“내가 들은 대로라면 ‘땅개’라는 ‘암행 독찰대’는 광업소에서 돈을 받고 정보원 노릇을 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 사람들은 갱 안에 있는 막장뿐만 아니라 광부들이 사는 사택까지 감시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만약 회사 물건을 가지고 나오거나 회사일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다가 걸리면 어떤 구실을 달아서라도 감봉하거나 해고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위에서 시키는 대로 두더지처럼 탄이나 파고 주는 돈이나 받으라 하고, 다른 군소리는 못 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게 더러워서 회사를 그만 두면, 아예 광산을 떠난다면 몰라도 다른 곳에 취직할 수도 없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광산들이 서로 결탁해서 해고된 광부를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생계를 빌미로 노동자를 속박하고 저당 잡는 자본의 면모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지적했듯, ‘노동력을 판매할 자유’와 ‘굶어죽을 자유’중에서 양자택일 해야 하는, 자본제 사회의 프롤레타리아가 가진 형해화된 ‘이중의 자유’를 암시한다. 광부의 고단한 처지는 “두 개의 하늘을 이고 산다”는 소설 속 문장으로 축약된다. 이러한 광부들이 놓인 비인간적 조건은 결과적으로 계급투쟁을 촉발한다.

 

“임금을 인상하고 어용 노조 지부장 물러가라!”

 

 광부와 그 가족들은 가두시위에 나선다. 시위대의 슬로건은 임금 인상과 어용 노조 지부장의 퇴진으로 축약된다. 싸움의 무대가 탄광촌인만큼, 시위의 여파는 광부와 그 가족뿐만 아니라 교정에도 가닿는다. 쟁의가 시작되자 학교에서는 “선생님들께서는 지금 곧 수업을 중단하시고 모두 교무실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울려퍼진다.

 광부들은 시위를 전쟁에 비유한다. 이는 자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신군부의 잔악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쟁의가 본질적으로 계급과 계급 간의 전쟁임을 암시한다.

 

“정말 전쟁이 났구나! (중략) 저놈들이 사람 잡으려고 총을 쏜다!”

 

 사태는 점차 격화되고, 경찰 한 명이 사망하기에 이른다. 이때 작가는 늘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광부의 생활을 언급하며 폭력투쟁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깟 경찰 하나 죽은 게 뭔 대수냐? 광부들은 굴 속에서 수도 없이 죽는다!”

 

 벤야민은 역사주의와 역사적 유물론을 구분한다. 역사주의의 서술자가 승리자에게 감정이입하여 그때그때 지배하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며, 승리를 거둔 이는 오늘날 바닥에 누워 있는 자들을 짓밟고 가는 지배자들의 ‘개선 행렬’에 동참하고, 전승의 과정 역시 야만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가능한 그러한 전승에서 비켜서면서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것” 을 자신의 과제로 본다. 이 사명을 통해 사건의 기억은 공허하고 균질한 일대기적 시간에서 구출되어 비로소 ‘억눌린 자, 패배한 자, 몫 없는 자’들의 역사를 복원해낸다.

 

 

패배와 구원

 한편 광부들의 생존권 투쟁은 노조지부장 아내의 린치로 이어진다. 이후 시위대는 공수부대의 진압을 앞두고 무기고로 향하지만, 폭도로 몰리는 상황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어 사북지서 무기고 앞에서 해산을 결정한다. 항쟁 이후 사북에는 봄이 완연했지만 저항의 주체는 권력에 의해 사라진다. 항쟁 이후 우물방송의 ‘떠벌이 아줌마’, ‘부녀회장’, ‘순태 아빠’ 등은 어딘가로 사라지지만 “잡혀간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이 ‘빨갱이’ 딱지를 붙여 놨다는 소문이 사북을 떠돌”뿐이었다. 1980년 겨울, 수하네 식구는 “계엄군들이 짓밟고 또 짓밟아 익은 감자처럼 온몸이 찌그러진 아빠와 함께” 사북을 떠난다. 이러한 패배의 풍경을 작가는 투쟁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닌 ‘수하’의 렌즈를 통해 덤덤하게 그린다.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졌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무기고 앞을 떠나기 시작했다. (중략) 사북 사람들에게는 막강한 힘에 대항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중략) 이제 모든 게 끝났다. 우리 아빠는 다시 검은 탄복을 입고 막장에 들어갈 테고, 나는 학교에 갈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다. 저항의 기억에는 ‘역사 속에서 진보의 궁극적 목적이 아닌 종종 실패로 끝나는 실행된 진보의 중단’이라는 메시아적 시간이 스며든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묵계로, ‘지금-여기’의 구원의 전제조건이 된다.

 

 

[최정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