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배움과 도전에 거리낌 없던 예술가, 라울 뒤피

더 현대 서울 ALT.1 〈뒤피: 행복의 멜로디〉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6.0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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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서울_퐁피두_뒤피_포스터1.jpg

 

 

더 현대 서울 ALT.1(알트원)에서 라울 뒤피(Raoul Dufy) 개인전 〈뒤피:행복의 멜로디〉가 5월 17일부터 9월 6일까지 진행된다.

 

최근 세계 각국의 미술관을 공부하던 나에게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의 소장품이 더 현대 서울에 찾아온다는 소식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가 더 현대 서울 또한 설계했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이번 전시로 퐁피두센터와 현대백화점의 연결점이 알게 모르게 짙어지는 느낌이었다.

 

 

Autoportrait, 1898.jpg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된 라울 뒤피는 서양미술사에서 핵심적인 인물 중 한 명이지만 국내에선 아직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전시는 퐁피두센터의 라울 뒤피 소장품을 바탕으로 크리스티앙 브리앙 퐁피두센터 수석큐레이터가 총감독으로 기획을 맡았다. 라울 뒤피라는 예술가에 대해 제대로 탐구해 볼 기회라고 생각하여 전시를 방문하게 되었다.

 

총 12개의 섹션으로 뒤피 작품의 스타일과 주제, 매체 등으로 구분하였으며 섹션별다른 색의 벽지로 구성하였다.

 

전시는 인상주의를 수용한 뒤피 작품으로 시작한다. 뒤피는 프랑스 북서부 지역 노르망디에 있는 산업 항구 도시 르아브르(Le Havre)에서 태어났다.

   


La plage de Sainte-Adresse, 1904.jpg

 

 

뒤피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의 장소인 생트-아드레스(Sainte-Adresse)는 르아브르 북쪽에 있는, 인기 있는 휴양지였다. 뒤피는 당시 사람들이 해변에서 휴양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빛을 담아낸 색채를 통해 포착해냈다. 생트 아드레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은 조르주 쇠라의 화면 구도를 연상시키며 주제나 기법 면에서 인상주의를 거의 수용한 듯 보였다.

 

1906년에 이르러 뒤피는 야수파 스타일로 작업하였다. "내가 말하는 색채는 본연의 색채가 아닌, 팔레트 위의, 화가에게 단어와도 같은 색이다." 이와 같은 뒤피의 말에서 색은 결국 사물 자체가 가진 색, 객관적인 색이 아닌 우리가 눈으로 보고 인식하게 되는 색을 의미한다. 


이는 외부 세계의 색을 인식하는 데 있어 이전까지 등한시되었던 우리 눈의 지각 과정을 주목함으로써 다양한 표현 양식을 탄생시킨 괴테의 색채론과 이어지는 대목이었다.

   

〈팔레즈의 생-제르베 광장〉(1906)에서 색채로 형태가 이뤄진 건물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트루빌의 벽보들〉(1906)에서 〈에스타크의 카페〉(1908)에 이르기까지, 색채와 인물 구성이 마티스의 화풍을 복사한 듯하였다. 대담하게 보색을 사용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이뤄냈다.

   

 

La Place Saint-Gervais à Falaise, 1906.jpg

 


이후 뒤피는 큐비즘을 구축한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작업하기도 하였다. 기존의 큐비즘처럼 오렌지, 갈색 위주로 화면이 구성되어 다채로움이 상대적으로 감소하였다.

 

〈에스타크의 나무들〉(1908)과 같은 작품은 브라크의 것인지 뒤피의 것인지 분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큐브즘을 통한 대상의 기하학적 형태로의 해체는 풍경뿐 아니라 인물에게도 적용되었다.

 

〈앉아있는 누드〉(c.1909)에서 여인은 마네킹처럼 보이며 각 신체 부위가 분절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무표정의 얼굴에선 마치 세잔의 멜랑콜리 회화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형식상의 유사점에 그쳐 다른 무언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1912년의 〈생트 아드레스 해변〉 역시 각진 형태의 건물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상을 이루는 독특한 필선과 바다의 물결 모양이 점점 뒤피만의 스타일이 태동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처럼 뒤피는 동시대 화풍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수용하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시키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였다. 한편, 뒤피는 회화뿐만 아니라 판화와 직물, 패션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대한 미적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대중예술의 혁신” 섹션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시 ‘동물우화, 오르페의 장례행렬’의 삽화를 목판화로 그려낸 작업이 전시되었다. 삽화였기 때문에 시를 직접적으로 나타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시 내용과 상관없거나 자유롭게 변형한 판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한편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인 상황에 의해 선전용 그림도 제작하였다.

 

 

Le Panthéon, 1924-1929.jpg

 

 

섬유 작업과 패션에서도 뒤피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다. 특히 패션에 대한 그의 작업이 인상적이었다. 철근 다리와 증기기관차를 배경으로 당대 유행하는 스타일을 그려낸 그림들은 그야말로 현대적이었다. 뒤피의 이러한 미적 감각은 화병과 일러스트, 광고 벽보 작업까지 이어졌다.

 

 

Robes pour l'été, 1920.jpg

 


“바다와 말” 섹션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인데, 가장 ‘뒤피스러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구 도시에서 나고 자라 삶의 일부가 된 바다와 노르망디에서 경마장을 운영할 정도로 친숙했던 말은 뒤피 작업의 주된 소재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바다와 말의 풍경을 뒤피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화폭에 아름답게 담아냈다.

   

기존의 여러 양식을 열심히 익히던 시절과는 달리 1920년대 즈음부턴 뒤피 스타일이 구축되고 있었다. 장식 미술의 경험 때문인지, 화면과 그 안의 각 요소는 더욱 평면적으로 나타났고 요소들은 일종의 도상처럼 화면 곳곳에 자유롭게 배치되었다.

  

〈수영하는 붉은 빛의 여인〉(1925)에서 여인은 배보다 훨씬 크게 그려지며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것처럼 전신이 뚜렷하게 보인다. 〈암피트리테〉(1925)에서 볼 수 있는 바다의 여신인 암피트리테를 비롯한 여인들과 말, 조개, 선박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뒤피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소재이다.

 

뒤피는 현대적인 선박이 드나드는 항구의 풍경과 신화적이고 신비로운 여신,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여인과 말이 바다에 함께 공존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자칫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산재하는 화면에 그만의 색채와 필선을 통해 통일성을 부여했다. 드로잉 같은 빠른 필선으로 그려진 형태들은 색채가 배경과 요소 내부를 자유롭게 오가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뒤피 스타일은 그의 대형 작품 〈전기 요정〉(1953)으로 이어진다. 1930년대는 라울 뒤피가 대형 벽화 장식에 심혈을 기울인 시기였는데, 1937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에서 전기를 주제로 한 벽화 장식을 의뢰받아 전기 요정을 제작하였다. 이번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은 습작과 석판화로, 유일하게 촬영이 가능한 작품이기도 하다.

 

 

La Fée Electricité (partie gauche), 1937(1).jpg

 

 

방대한 크기의 작품만큼이나 다양한 요소들이 혼재해있다. 전등으로 반짝거리는 도시 풍경과 발전소, 기차를 비롯한 각종 현대적인 건축물과 함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나 번개를 다스리는 제우스를 비롯한 각종 신화적 인물들도 배치되었다.

 

역사 속 고대의 위인부터 전기의 발전에 공헌한 다수의 위인도 그려져 있다. 그야말로 세계박람회에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각각의 요소들은 색채를 통해 구분되며 역시나 형태를 이루는 드로잉 같은 필선이 특징적이다.

 

한편, 뒤피는 자신의 아틀리에 그림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배경은 그의 아틀리에 작품 속에서 바이올린을 비롯한 악기들을 등장시켰다. 특히 〈방스 아틀리에의 누드〉(1943)는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의 바다를 배경으로 모델이 서 있는 모습에서 그가 작업해 온 방식을 유추해볼 수 있다.

 

 

L'atelier, vers 1940.jpg

 

 

일종의 하나의 액자로서 작용하는 창은 그에게 단순히 실제적인 바다와 여인이 아닌, 영감을 주는 풍경이자 자신만의 색채와 상상력으로 탈바꿈하는 시각적 공간을 제공했을 것이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 “검은빛”에서는 뒤피가 검은색을 대담하게 사용한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이는 햇빛을 오래 보고 있으면 사물들의 색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시각적인 실험 차원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파괴되어버린 고향 항구를 나타낸다는 시대적 차원의 다층적 영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Cargo noir à Sainte‐Adresse, 1948‐1952.jpg


 

뒤피는 당시의 다양한 회화 양식을 수용, 실험했던 개방적인 예술가였다. 순수회화부터 각종 장식 미술까지 섭렵하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확립할 수 있던 점은 뒤피의 작가로서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개방성은 작품 내에서도 작동하여 다양한 소재들, 신화적인 것에서부터 현대적인 것들까지 한 화면 내에서 자유로우면서도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한편으로 보들레르가 현대적인 삶을 드로잉과 같은 빠른 붓놀림으로 그려낸 콩스탕탱 기를 높이 평가한 관점에서 볼 때 뒤피 또한 기에 못지않게 시대의 유행과 흐름을 잘 포착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장식 미술을 통해 디자이너로서 상업적인 성공을 이뤄낸 것이 과거엔 비판점으로 보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의 트렌디함이 밝고 찬란한 색채와 함께 재조명받을 수 있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20230525-20230525_190054.jpg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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