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창작집단 짓, 수취인 부재 - 제1회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

글 입력 2023.05.2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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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본 연극은 연출가전 페스티벌의 첫 극인 <수취인 부재>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연출 부분에 집중해서 작품을 관람했다.


위치는 문래동이었다. 갤러리 많은 을지로같이 생겼다. 극이 열린 주말 극장은 정말 연극이 열릴 것 같지 않은 동네에 위치하고있다.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다. 지하 냄새가 나는 곳으로 내려가자 수취인이 없는 편지 봉투로 꾸며진 대기 공간과 극장이 보였다.


앉아서 리플렛 들여다봤다. 연출가 박정민, 그리고 젊은 배우 4명인 극이었다.

 

배우 분들이 상당히 젊어 보인다. 연극에 들어가기 전 연출가의 짧은 글도 미리 읽었다. 유난히도 많은 재난을 겪어왔다는 90년대생에게 생은 말 그대로 운이 좋아 얻게 된 결과라고 운을 띄며 시작한 글은 재난이 절단내는 인연 간의 가능성을 추모하며 마무리 짓는다.


짧은 글이었다. 극을 보기 전까지 그다지 와 닿지 않는. 극은 짧았다. 40분. 이젠 연극도 숏츠의 시대가 오는 것인가 생각했다. 사실은 시간이 빠듯했어서 짧은 러닝 타임이 속으로 굉장히 반가웠다.


극장으로 들어서자 가본 소극장 중에서도 가장 작은 극장이 보인다. 객석은 12석 남짓한. 그래서 그런지 목소리나 배우들의 표정, 행동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포스터.jpg

 

 

극이 시작했고, 배우들의 대사, 리플 속 글로 진행 상황을 짐작해 나가며 극에 집중했다.

 

배우 네 분의 연기가 합이 잘 맞았다. 누구 하나 크게 튀지 않아 보기 편했다. 극은 무언가를 잃었지만, 잃은 것조차도 잃어버림을 깨달아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특히 사회의 재난 분위기가 닥쳤을 때 말이다.

 

현실 속 재난의 후속 대책이 정말 예방책, ‘추모’의 방식이 될 수 있는가. 그저 정치적 무기로서 본질을 잃어버린 허풍이 아닌가. 그렇게 잃은 것에 대해 잊고 진정한 추모는 해보지도 못하고 끝난 재난에 대한 은유같았다.


비비(전상원 배우)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 앞만 보고 달려나가길 강요하는 분위기를 은유하는 인물이었다. 초반엔 이 인물이 그저 1차원적 빌런 역으로 매력 없이 느껴졌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나를 포함해 대부분이 비비와 같은 입장에 서 있지 않나 생각했다. 비비가 하는 대사는 정말, 너무나, 굉장히, 많이 듣던 소리이다. 부모님께, 학교 선생님께, 동료에게, 미디어에서...


일단 재난이 일어났다면 울 시간이 있어야 한다. 감정이 있어야 한다. 매사 도도하던 순화(장영은배우)가 잊어버리고 살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열하던 장면에선 나도 눈물을 훔쳤다.

 

사람은 논리와 이성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감정을 심연에 꽁꽁 감춰두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신체 시스템이다. 재난에 대한 후속 대처란 제도적인 것 외에도 감정적인 것을 포함해야 한다. 이것이 이 극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연출에 집중해서 보다보니 보는 내내 리플렛 속 연출가의 말이 떠올랐다.

 

재난을 추모하는 방식, 기억을 깨워내는 작업, 심연을 보여주는 현미경으로서 예술이 점차 많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당사자만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재현의 당사자성에 발목이 잡힐까 아슬아슬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로서 시대의 흐름에 용기 있게 한 몫한 극단 정:지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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