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보는 그림에서 읽는 그림으로 - 도서 '고요히 치열했던 사적인 그림 읽기'

글 입력 2023.05.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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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私的)이고 사적(史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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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처럼, 지은이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첫 페이지를 시작한다.

 

신문방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아무 연고도 없는 역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그림이라는 유용한 사료(史料)를 만나 즐기게 된 미술 감상. 과거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림 뒷면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상상력으로 찾아 나가는 그림의 매력은 지은이가 사랑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역사서의 한 페이지를 연구하듯 그림을 읽었다'라고 말한다. 본다는 개념에서 나아가, 읽는다는 건 대상의 단면이 아닌 입체적인 모습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어쩌면 단순하지 않은, 깊은 애정이 필요한 일이다.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지은이는 하나의 그림을 미술, 역사, 개인의 사색이 얽힌 다양한 관점에서 지극히 사적(私的)이고 사적(史的)인 에세이를 써 내려간다. 본인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독자들에게도 그림을 진정 내 것으로 만드는 경험을 넌지시 권한다.

 

1부 「외롭지 않은 고독」,  2부 「아름답게 치열할 것」, 3부 「고요하게 바라보는 시간」으로 이어지는 열다섯 편의 글, 글의 소재가 되는 그림에서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발견해 보면 어떨까?

 

 

“역사를 공부하기 전에는 그림이 나의 글감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역사학에 뛰어들면서부터 미술 감상을 즐겼다. 처음에 그림은 내게 유용한 사료였다. 역사서의 한 페이지를 연구하듯 그림을 읽었다.

 

아는 만큼 보였고, 보이는 만큼 그 안에 나의 경험과 사유를 담아 ‘내 것’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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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외롭지 않은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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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중

 

 

며칠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개인전에 다녀왔다. 호퍼는 고독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었다. 분명하게 대비되는 명암과 고요하고 잔잔한 그림 속 배경에서 느껴지듯, 그는 실제로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작업하기를 즐겼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쓸쓸하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색에 빠져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자유로이 유영하고 있다. 시끄럽고 복잡한 곳에서 벗어나, 정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어 보는 나까지 차분해졌다.

 

호퍼의 그림처럼, 지은이 역시 정적이 흐르는 혼자만의 시간에서 힘을 얻는 사람이다.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것'으로 고독을 정의하며, 자신을 확고한 내향형 인간으로 분류한다. 질 좋은 고독을 누리기가 쉽지 않은 시대에 충분한 고독에 집중하고 즐기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표현한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치 그림 속 거리의 행인이 된 듯 유리창 너머를 오래 주시했다. 작품은 그만큼 흡입력이 컸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흔히 말하듯 단지 외로움과 쓸쓸함만은 아니었다. 작품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덕분인지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니, 작품에 흘러넘치는 단절과 적막에서 외로움보다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때때로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 54~55쪽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 소수의 사람이 등장해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빽빽하고 답답하게 건물이 들어선 도시에서 탈출해 마주한 안식처 같달까. 세상은 그의 작품을 두고 현대인의 외로움, 우울한 뉴요커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해설하지만, 호퍼의 그림은 지은이에게 편안함을 안겨준다.

 

호화로웠지만 불안정하고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던 미국의 20세기 초중반에 등장한 화가이지만, 20세기와 달리 21세기에서 바라보는 호퍼의 그림은 또 다르다. 평소 과묵하고 혼자 작업했던 호퍼에게 고독은 삶과 작업까지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을 것이다.

 

지은이는 그런 자연스러운 일상을 호퍼에 대한 배경지식, 당시 시대상, 자신의 고독을 존중하지 않고 이상한 시선을 보내왔던 이들과 그에 관한 견해를 종합해 풀어낸다. '외로움이 꼭 고독에서만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 과도한 관계 속에서 충분한 고독을 취하지 못할 때도 외로움은 찾아왔다.'라는 문장이 유독 여운에 남는다.

 

 

 

 2부 「아름답게 치열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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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 시대의 자기표현법: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자화상」 중

 

 

지은이는 잠재적 독자를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관종의 길을 피해갈 수만은 없었다. 글뿐만 아니라 사진, 영상, 음악 등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라면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은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결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종의 시대에 접어든 지은이가 마주한 고민은 '어떻게 나를 표현할까?'였다. 창작물에 자신의 모든 면을 담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아니어서도 안 되는 표현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떠올린다.

 

17세기 초중반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이탈리아 여성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본인의 얼굴을 작품에 자주 등장시켰다. 대부분의 화가가 남성이었던 시대에 등장한 여성 화가, 뛰어난 실력과 함께 화가가 작품의 주요 인물로 등판하는 비범함은 당대에 주목을 받았다. 지은이는 젠틸레스키가 당대의 치열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전파하는 전략을 사용했다고 말한다.

 

 

젠틸레스키의 인생에서 관심은 꼭 필요하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관심은 양날의 검이 되어 그녀에게 명예도 주고 상처도 입혔다. 그 가운데 그녀는 항상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목소리를 냈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진심이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랐다.

 

물론 작품으로 그녀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자기를 해석하고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그래서 애써 기록으로 남긴 그 말들을 지금 우리가 400년의 시차를 극복하고 듣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종 시대의 자기표현법」, 171쪽


 

젠틸레스키의 자기표현 방식은 주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던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시대상이 반영된 결과다. 이 시기에는 자기 자신도 객관화의 대상이었고, 개인의 인생을 담은 초상화나 자화상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젠틸레스키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가지고 작품활동을 해나갔다. 강인하고 도전적이면서 결연한 모습의 여성을 주요 소재로 그려온 그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깊은 상처를 그림에 풀어내 자신과 같은 기억을 지닌 여성들의 삶을 위로하며 대변해 주었다. 세상에 용감한 목소리를 내는 데도 망설이지 않았다.

 

깊은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젠틸레스키의 용기는 혼자만의 아픔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동감하는 진심으로 다가갔다. 글을 쓰는 지은이도 혼자의 생각으로 끝났다면 무로 사라졌을 말들을 기록하고, 독자와 나누는 과정에서 표현하는 것의 가치를 발견한다.

 

가치를 발견함과 동시에, 스스로 다짐하기도 한다. 자신이 보는 세계와 생각들을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스럽게 써 내려가려 한다고, 관종들의 세계에 이제 막 들어온 자기 자신에게 초심의 다짐을 해본다.

 

 

 

3부 「고요하게 바라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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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갑니다, 더 나은 삶을 희망하며: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쾰른, 정기선의 도착-저녁」 중


  

어느덧 새로운 자취방으로 이사한 지 4개월이 지났다. 같은 동네로 이사했지만, 먹고 자는 생활 환경이 변한다는 건 내게 새로운 설렘을 안겨주었다.

 

지은이도 서울에서 서울로의 이사를 마치며 새로운 공간과 삶의 방식에 대비했다. 그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사한다는 것은 자의이든 타의이든지 간에 이사를 가는 공간에서 펼쳐질 새 삶을 희망으로 그려보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이사에 대해 생각하면서, 지은이는 영국의 산업혁명 시대에 살았던 국민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의 그림들을 떠올린다. 터너의 유명한 작품 <비, 증기, 속도>는 영국 산업혁명 시대를 그대로 담고 있다.

 

빠른 속도로 증기를 내뿜으며 거침없이 달리는 증기기관차는 영국 산업혁명의 증거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시로 이동하는 사람들, 일자리와 문화가 있는 중심지로 가는 이방인들을 태운 운송수단의 모습이 보인다. 이사의 의미와 비슷한 맥락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자유로우면서도 자유롭지 않은 변화에 적응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투영된 것만 같다.

 

 

누군가는 도시의 삶을 동경하며, 누군가는 등쌀에 떠밀리듯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의 새 삶을 택했다.

 

이미 16세기부터 영국은 전보다 더 유동적인 사회가 되었고 18세기 공업화와 함께 본격적으로 도시로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근대적 자유민이 행사한 '거주 이전의 권리'의 이면이었다.

 

「이사갑니다, 더 나은 삶을 희망하며」, 238쪽

 

 

지은이는 터너의 그림에서 도시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도시가 주는 설렘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떠나온 사람들에게 도시 정착기는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산업혁명이 불어온 19세기 영국 또한 각종 도시문제가 대두되었다. 한정된 공간에 몰려든 인구, 그로 인한 범죄, 주거, 빈민 등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러한 문제는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심각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다.

 

19세기의 노동자, 21세기의 현대인들 모두 도시화에 따른 문제를 맞닥뜨렸다. 지은이는 터너의 그림에서 도시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언제 어디에 사는 누구라도 더 나은 삶을 꿈꾸기를 소망한다.

 

어디에나 슬픔과 괴로움은 있지만, 당신이 가는 곳이 어디든 과거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터너의 작품을 찬찬히 읽어준다.

 

*

 

<고요히 치열했던 사적인 그림 읽기>가 좋았던 이유는 형식적이거나 뻔하지 않아서다. 검색하면 나오는 작품 해설의 전형성을 띄지 않고, 지은이의 생각과 경험을 역사적인 사료와 결합해 풀어나가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개인의 시선으로 쌓아 올린 미술관을 보고 읽는 느낌이었다. 작품, 그리고 지은이와 호흡하며 그림에 투영된 내 삶을 사적(私的)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지은이가 쌓아 올린 미술관에서, 나의 미술관을 쌓아 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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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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