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리된 평화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6.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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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놀스의 '분리된 평화'


 

독일 청소년 필독 추천작이다. 국내에서도 워낙에 유명한 책인만큼 사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것이기는 했는데, 이상하게 손이 안 갔다. 무거운 제목 때문인가? ‘분리된 평화’가 과연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청소년 소설인데 왜 이렇게까지 무거운 제목을 사용했을까 하는 의문으로 첫 장을 넘겼다. 

 

책을 읽다보니 몇 가지 생각이 정리되었다. 우선'분리된 평화'의 의미는 각기 다른 것들로 해석될 수 있는 듯하다. 첫 번째 '분리된 평화'는 전쟁 상황을 겪고 있는 바깥과 '분리'되어 학교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학생들에게 주어진 '평화'인 듯 보인다.

 

두 번째는 진과 핀이 '분리'되었을 그 상태, 어찌 보면 '평화'롭지 못한 상태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평화'로운 모순적인 상태를 뜻한 것 같기도 했다. 세 번째는 진이 핀을 향해 가지게 되는 질투심과 애정 그 사이를 '분리' 짓는 일종의 상징이 '평화'로 은유된 것 같기도 하였다. '분리된 평화', 무거운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정말 많은 것들을 복합적으로 함의하고자 하는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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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상징적으로 '나무'의 의미가 재차 강조된다.

이에 나무 사진을 덧붙여 보았다.

 

 

책을 읽을 때는 무엇보다 핀과 진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어 내용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핀을 향해 가지고 있는 진의 미묘한 감정들에 특히나 주목하였다. 진에게서는 애정과 질투라는 두 모순적인 단어를 모두 아우르는 특정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일종의 동경과 열등감의 뒤섞임 같기도 했다. 진은 갖가지 마음들을 한데 포개어 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청소년기에 가장 뚜렷하게 느껴 볼 법한 감정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인이 된 상태에서도 여전히 우리 뒤를 따라다니는 감정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미숙하고 복잡한 마음과 타협하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진과 핀의 관계로 매우 첨예하게 그려 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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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핀의 관계에서 '나무'는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핀은 실로 진이 본받을 만한 대상이었다. 단지 스포츠에 뛰어나서, 리더십 있어서, 또는 인기 있고 멋있어서만은 아니다. 핀은 진과 달랐다. 핀은 우정을 빌미로 상대방에게 열등감을 가지지 않으며, 다리를 절게 되었을 때도 핀과 연관된 어떠한 진실에 집착하지 않는다. 핀은 매우 성숙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진과 핀의 우정이 마냥 아름답지 않았던 근본적인 이유 역시 이렇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둘의 태도가 갈라지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어떠한 것을 성취하는 방법 역시 달랐는데, 노력형 인간 진은 재능형 인간 핀을 본능적으로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진은 늘 핀을 부러워했다. 설령 핀이 가진 능력이 자신의 주력 분야와 다른 부분에서 빛났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직 서툴고 어린 진은 이러한 감정들이 낯설었기에 어떻게 그것들을 잘 처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많은 청소년 독자들은 진이 느끼는 이러한 미묘한 심리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덮은 청소년 독자들은 자신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친구를 생각해 볼 테고, 그렇다면 그 질투심과 시기심을 어떻게 현명하게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를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순수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맺을 수 있는 우정은 없는 것일까? 유독 청소년들의 마음에 그러한 시기심이 자주 일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미숙하기 때문일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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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실제로 참여하지는 않았어도 주인공 진은 데번에서 나름대로의 전쟁, 전쟁만큼이나 치열한 성장통을 겪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곳 데번은 지금의 학교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공간이었다. 학교에서는 과거에도 지금도 어쩌면 전쟁과도 다름없는 미묘한 신경전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전쟁에서, 표면적으로 상정하고자 하는 진의 적은 역설적이게도 단짝 핀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핀만이 진의 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의 적은 핀일 수도, 브링커일 수도, 또는 엄격한 선생님들일 수도 있는 것처럼,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수많은 적들에 둘러싸인 채 생활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공간은 정말이지 매우 매섭고 모진 공간인 것 같다. 

 

아이들의 적은 누구일까? 생각해 보면 인간이라는 게 그렇다. 설령 아주 친한 친구일지라도 한번 질투심을 느낀 순간, 그 친구는 마음 한편에서는 또 은밀한 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물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또 그렇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몰래 미워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열등감에 똘똥 뭉쳐 종국에는 질투의 대상이 어떻게든 처벌받아야지만 마음속의 평화를 느끼는 지독한 종자들을 많이 봐 온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은 진의 성장을 통해 이러한 치기 어린 마음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친한 친구를 향한 묘한 질투심, 바로 그런 기이한 마음들을 해결하고 다스리는 과정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성장의 일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쯤 읽고 생각을 정리하기에 매우 훌륭한 책인 듯 싶다.

 

 

[신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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