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걸음마다 안녕을 [문화 전반]

2023 연등회
글 입력 2023.05.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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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밤의 습기는 언제나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내 것인 마음들과 내 것이 아닌 상황들이 목과 코 사이의 쿨쩍거림을 만들어내고, 딱히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꺼내 보게 되는 기억들을 일기장 째로 꺼내어 읽으며 머쓱하게 눈썹을 긁는다. 초봄의 낮이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날씨라면 늦봄과 초여름 사이의 밤은 마음 밑바닥을 간질이는 날씨다.

 

그런 밤에는 등이 필요하다. 좁은 방을 밝히는 백색 형광등이 아니라 조금 더 따뜻한 빛의 무언가가 발 아래를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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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등회를 밝히는 것은 행진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등을 밀고 작은 등을 들며 빛을 운반한다. 기꺼이 운반자를 자처한 이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봄밤이 주는 멜랑콜리는 전부 잊어버렸다는 듯 거리는 안녕하세요, 행복하세요, 성불하세요 하는 인사들로 채워진다.

 

양 끝으로 갈라진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들고 사람의 키를 훨씬 넘는 등들을, 악기를 연주하는 사물놀이패를,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제자리를 도는 사람들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그 중 가장 큰 탄성을 자아내는 것은 단연코 아이들이다.

 

자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자기 머리보다 큰 등을 안고 유모차에 탄다. 이제 막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 같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손을 잡고 걸으며 손을 흔들고, 중학생들은 자길 향해 인사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신나게 헬로, 아이 러브 유를 외친다. 고등학생들은 조금 부끄러워하는 눈치를 보이지만 얼굴이 상기된 채로 수줍게 웃는다.

 

사람들은 빛을 들고 걷는 아이들을 향해 무한정의 환호를 보내고 아이들은 우리에게 행복하라는 말을 폭죽처럼 내려준다. 발갛게 물든 아이들의 얼굴, 유난히 신나 보이는 발걸음 같은 것들을 보면서 내일과 모레의 어른들은 이 시간이 이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이들의 앞길에 너무 많은 슬픔이 다가오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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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무조건적인 응원이다. 누군가가 나의 행복을 빌어 주었으면. 나 아닌 누군가가 나의 삶에 다정한 말을 보내 주었으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 속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게 웃어 주며 나의 행복을 바란다고 하는 것을 믿기가 어렵지만 색색의 등을 든 밤 속에서는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수만 명의 사람들, 그의 몇 배가 되는 등, 거대한 조형물과 시끄러운 음악, 색색의 나무들 사이로 솟아오른 고층 건물 사이에서 같은 목소리가 함성처럼 터져나온다.

 

안녕하세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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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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