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발레로 만나는 심청의 기적 - 유니버설 발레단 '심청'

글 입력 2023.05.2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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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포스터 수정.jpg

 

 

역사적으로 세대를 아울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고전소설인 경우가 많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효에 관한 대표적인 고전소설이 있다면 바로 <심청>이다. 효녀 심청이라는 이야기만 듣고도 대체로 비슷한 이미지와 서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위해 효녀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고난의 세월을 거쳐 심청이 아버지와 다시 만난다. 그러자 심봉사는 거짓말처럼 눈을 번쩍 뜬다.'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전 세계 15개국에 선보인 공연 <심청>을 본 것은 좋은 의미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동화책에서나 보았던 그 이야기를 발레 작품으로 표현해 냈다니 말이다. 더군다나 고전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발레 공연이 무려 37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역사마저 너무나 놀라웠다. 

 

공연 내내 한 편의 뮤지컬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는 ‘몸의 예술’이었지만, 무용과 음악, 무대 연출이 드러내는 서사만으로 <심청>의 효의 정신과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심봉사의 하나뿐인 딸 '심청'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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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이야기를 모두 다 알고 있음에도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을 보는 것은 완전히 색다른 매력을 느끼는 계기였다. 오로지 발레로 표현할 수 있는 역동적인 서사에 감탄하게 됐다.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어릴 때의 심청의 모습부터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 발레리나가 등장해 아버지 심봉사와 포옹을 나눴다. 그 모습 자체로 사랑스럽고 귀여운 ‘심청’의 모습이었다. 이후 초등학생 발레리나가 조금 더 성장한 모습으로 발레 동작을 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마침내 오두막 집에서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내는 어른이 된 ‘심청’이 등장했다. 아름다운 어른 심청이 등장하자마자 관객석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공연의 시작부터 마음이 먹먹하고 촉촉해지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이 ‘심청’이라는 아이가 심봉사에게 얼마나 소중한 딸인지,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 보여줄 눈물겨운 ‘효’의 서사가 얼마나 다사다난한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효


 

2019심청(강미선)-Photo by Kyoungjin Kim ⓒUniversal Balllet 67.jpg

 

 

<심청>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단연 폭풍우가 몰아치는 인당수에서 몸을 던지는 심청의 모습이었다. 1막 1장과 2장에서는 심청이 눈먼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선원들을 따라 배에 올라 스스로 제의의 제물이 된다.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바친 심청의 애절함과 효심을 마주하며 휘몰아치는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특히 강미선 수석무용수가 심청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섬세한 표정 연기를 보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생사의 길이 갈리는 순간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슬픔에 잠긴 듯한 얼굴을 보며 발레 동작의 의미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배에 오른 선원들의 강인하고 역동적인 군무는 마치 해적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선원들의 안무를 보면서 지금까지 발레에 대해 다소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인지하게 됐다. 발레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몸짓으로 대표되는 장르만으로 생각해 왔는데, 박진감 넘치는 군무를 보며 발레의 넓은 스펙트럼에 감탄했다. 배를 타고 빠르게 전진하는 것을 나타내고자 선원들이 노를 직접 저어 칼 같은 동작을 선보인 것도 인상적인 장면이다.


이후 대형 스크린의 영상을 통해 바닷속에 빠진 심청의 모습을 보았다. 바다 안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을 법도 한데, 바다 안의 조용한 먹먹함과 부드러운 물의 물성을 나타낸 영상 연출을 통해 계속해서 서사에 몰입할 수 있었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바다 왕궁, 그 안에서의 '심청'



2019심청(강미선)-Photo by Kyoungjin Kim ⓒUniversal Balllet 90.jpg

 

 

1막 3장에서는 바다 요정과 왕궁 궁녀들의 우아한 군무가 이어졌다. 물고기와 인어, 진주의 디베르티스망이 펼쳐진다. 발레 용어 사전에 따르면 디베르티스망은 ‘심심풀이, 오락’이라는 뜻으로 무용극의 줄거리와는 상관없는 무용의 모음곡 또는 소품집이다. 이들의 통통 튀는 가볍고도 경쾌한 스텝과 더불어 물고기의 비늘과 꼬리, 알록달록한 형형색색의 특징을 연상시키는 의상이 인상적이었다. 발레리나들이 쓰고 나온 모자마저도 물고기의 화려한 지느러미를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했다.   


이어서 심청과 용왕의 파드되가 펼쳐진다. 파드되는 무용에서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이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두 사람의 동작을 보며 폭풍우가 몰아쳤던 바다씬과는 달리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 두 마리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산뜻하고 밝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심청의 효심이 만들어낸 기적



2019심청(강미선)-Photo by Kyoungjin Kim ⓒUniversal Balllet 118.jpg

 

 

2막의 심청과 왕의 ‘문라이트 파드되’는 장관이었다. 휘어진 활 모양을 연상케 하는 ‘백 캄브레’, 한쪽 다리로 서서 균형을 잡고 반대쪽 다리를 뒤로 직각으로 곧게 뻗는 ‘아라베스크’를 통해서 심청의 곧은 심지를 엿볼 수 있었다. 심청과 왕의 생동감 넘치는 리프트 동작은 붉어지고 깊어지는 사랑의 감정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몸을 띄워 공중에서 사랑의 감정을 쏟아내는 이들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달빛 아래에서 펼쳐지는 파드되는 낭만적이고 달콤한 밤을 선사했다. 

 

왕실 궁녀들이 단체로 선보이는 단아한 군무도 빠질 수 없었다. 한국 고유의 전통 의상을 입고 기품 있는 발레 동작들을 이어가며 밝고 경쾌한 궁의 분위기를 드러냈다. 이뿐만 아니라 봉산 탈춤까지 등장하여 풍성한 볼거리를 더해 발레 공연에서 흥겨운 가면극까지 접할 수 있는 재미를 누렸다. 

 

 

2019심청(강미선)-Photo by Kyoungjin Kim ⓒUniversal Balllet 145.jpg

 

 

<심청>의 ‘절정’은 역시나 심청과 아버지의 감격적인 상봉이었다. 

 

왕비가 되어 맹인잔치를 연 심청이 심봉사를 알아보고 다가가지만, 심봉사는 자신의 딸을 바로 알아보지 못한다. 심청은 끓어오르는 그리움과 사랑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아당기며 자신의 얼굴로 갖다 대는데, 이 순간 아버지가 심청인 것을 알아차리는 장면은 벅찬 감동을 자극한다. 심청의 애절함으로 아버지가 번뜩 눈을 뜨고 관객에서는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

 

공연장을 나오고 나서부터 유니버설 발레단에 대한 사랑은 더욱 진해졌다. 지난 3월에 올린 <코리아 이모션>에 이어 연달아 <심청>까지 보고나니, 유니버설 발레단이 작품의 독창성과 진정성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코리아 이모션> 때는 한국의 정(情)을 표현하기 위해 국악과 판소리의 음악으로 아름다운 공연을 펼쳤다. 이번 <심청>에서는 오케스트라까지 함께하여 ‘효’의 정신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 <심청>의 기승전결을 쉽게 이해하도록 짜인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음악, 다채로운 바다 궁전과 전통 궁궐까지 화려하게 꾸민 무대 연출로 눈과 귀가 즐거웠다. 그야말로 종합예술 그 자체였다.

 

단순히 외국 작품을 그대로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이야기와 정서를 발레로 재창조한 것이 매번 놀랍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출신 무용수까지도 발레단에 속해있으며, 이미 전세계 40개의 도시에서 <심청>을 공연했으니 세계적으로 한국의 이야기를 알리는 데 유니버설 발레단이 굉장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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