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홀로 서기 위해 함께 하기 [드라마/예능]

<노멀 피플>의 결말을 생각하다
글 입력 2023.05.09 19: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드라마를 푹 빠져서 보다 보면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부터 시청자들은 이야기의 결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새드 엔딩이 될 것인가. 마음속에서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싹튼다.

 

‘해피 엔딩’은 드라마와 시청자 사이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규칙이다. 특히 장르가 로맨스일 때 그 규칙은 더욱 강력해진다. 그래서 ‘결혼’은 로맨스 드라마 마지막 회차의 단골 소재다. 주인공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은 너무 많아서 셀 수조차 없을 것이다.

 

가끔 이 강력한 규칙에 호기롭게 반기를 드는 작품도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청자의 뭇매를 피해 가지 못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주인공의 사랑이 결실을 보지 못한 데서 오는 시청자의 분노와 아쉬움은 꼬리표가 되어 계속해서 작품을 따라다닌다.

 

*

 

<노멀 피플>도 위와 같은 규칙을 깨는 작품 중 하나다. 수년간 서로의 주위를 맴돌며 엇갈리기만 했던 메리엔과 코널은 뒤늦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지막 회에서 두 사람은 다시 이별한다.

 

두 사람이 관계의 종착점을 맞이한 모습을 끝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작품도 마무리된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결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사람이 헤어짐의 순간을 직감하고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은 슬프다기보다는 아름다웠다.

 

메리엔은 겉으로는 강인해 보여도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사람이었다. 부유하지만 사랑이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사랑받는 법을 몰랐고, 사람들 사이에선 언제나 외딴섬처럼 겉돌기만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메리엔의 깊은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삶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관계를 습관처럼 계속 붙들고 있기도 하고, 자기에게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일삼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메리엔에게는 수년간 자신의 삶을 떠나지 않고 때로는 아주 먼 곳에서, 때로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자기를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코널이 있었다. 슬라이고가 싫어서 더블린으로, 스웨덴으로 항상 도피하듯 떠나 있었던 메리엔에게 코널은 단 하나뿐인 마음의 고향이었다.

 

*

 

코널에게 메리엔의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부유하진 않아도 사랑만큼은 넘치는 가정에서 자란 코넬은 학창 시절 메리엔과 달리 큰 문제 없이 지극히 평범하고도 일반적인 일상을 잘 영위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항상 타인의 기대와 시선 속에 살았고, 정작 자신의 목소리에는 한 번도 귀 기울인 적이 없었다.

 

그랬던 코넬은 메리엔의 추천으로 자기가 정말 관심이 있었던 영문학을 전공하게 된다.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자신의 섬세한 감성과 작문 실력을 차근차근 키워나간다. 타지 생활을 이어 나가기 위한 고된 노동 앞에 쓰러지고, 또 고향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너져 내릴 때도 그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 붙잡는 존재는 언제나 메리엔이었다.

 

자기를 괴롭히는 삶의 문제를 풀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 언젠가는 이 세상에 잘 녹아들기를 바랐던 메리엔과 코널.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수많은 실패와 상처를 견뎌야 했지만, 그들은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에게 기대어 있으면서 어떤 아픔도 이겨낼 수 있었다.

 

 

couple-6548045_1920.jpg

   

 

코널이 뉴욕에 있는 대학원으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게 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함께 했더라도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테지만, 이들의 이별은 단순히 열매를 맺지 못한 사랑으로 표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고향인 슬라이고를 떠나지도 못했던 코널은 글을 쓰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슬라이고가 싫어서 바깥세상을 외롭게 전전하던 메리엔은 만족스러운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슬라이고에 남기로 한다.

 

이들 삶에 일어난 변화는 절대 작지 않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난 부분처럼 툭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세상에 스며들었다. 메리엔과 코널은 서로를 공전하며 삶의 정상 궤도를 찾아 나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별을 그저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영원을 기약하는 것만이 해피 엔딩은 아니다. 메리엔과 코널이 서로를 일으켜 세우던 시간은 결국 각자의 홀로서기로 끝이 나지만, 두 사람의 마지막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홀로 서는 힘을 기르기 위해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태그.jpg

 

 

[윤채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