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예술 경험 [도서/문학]

도서 <큐레이팅 팬데믹: 비장소·비물질 시대의 예술 경험>
글 입력 2023.05.08 20:4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 동시대를 설명하는 많은 키워드들이 있겠지만 최근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은 아마 팬데믹일 것이다. 지금 이 시점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정의된다. 2020년 3월을 되새겨보자. 코로나-19가 출현하자 모든 것이 취소되고 멈추었지만 이내 우리는 대안을 찾았다. 사람들이 직접 대면하지 않고 전처럼 업무를 이어가고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만들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키오스크를 이용해 식사를 주문하고, 상점에서 무인 계산대를 이용한다. 면접이나 학회, 강의 등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이다. 심지어는 콘서트나 전시회까지도 온라인에서 즐길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봉쇄령이 해제된 지금은 이런 조치들이 더 이상 의무가 아님에도,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해 생겨난 이 기술들은 이미 우리의 삶 속 깊숙이 자리 잡았다.

 


onesix-Uq6SoEnPdQ0-unsplash.jpg

 

 

예술을 감상하는 방법은 어떨까? 이미 1935년에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측했듯, 몇십 년 전부터 우리는 기술 발전 덕분에 아주 손쉽게 예술작품의 복제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관에 가지 않고도 영화를 볼 수 있고, 공연장에 가지 않고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미술관에 가지 않고도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괜찮은 음향 기기와 함께라면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 영상을 서라운드로 감상하기도 하고, 구글 아트 앤 컬처를 이용해 그림을 아주 크게 확대해서 표면의 질감까지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영화관과 공연장, 그리고 미술관에 간다. 인기 있는 공연이나 전시회의 티켓을 구하는 것은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언제 어디서든 예술의 복제품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해졌기에 오히려 원본을 감상하는 경험의 가치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모든 대면 문화 예술 행사가 중단되면서 예술 작품의 원본을 직접 감상할 수가 없게 되자 문화 예술 관계자들은 원본을 감상하는 것과 비슷한 현장감을 집 안에서 구현할 방법을 모색했다. 가수들은 객석이 빈 공연장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출했고, 예술가들은 VR 전시관을 만들어 화면 속에서 미술관 안을 걸어 다니는 경험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렇게 화면 안에서 예술을 경험하는 것을 진정한 감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본디 하나의 전시회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란 작가와 큐레이터의 섬세한 감독 아래 계획된 조명과 동선, 작품이 설치된 간격이나 높이, 때로는 냄새까지, 이 모든 것이다. 기존의 전시 경험이란 물질적인 부분이 아주 중요했던 것이다.

 

팬데믹 이후 미술 전시회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가며 비물질화되었다. 이런 경험에 대해 네 명의 국제적인 큐레이터와 연구자가 인터뷰 형식으로 참여한 책, <큐레이팅 팬데믹: 비장소·비물질 시대의 예술 경험>을 읽어보았다.

 

 

131.jpg


 

큐레이터이자 건축가인 마리나 오테로 베르지에, 예술감독이자 독립 큐레이터인 가엘 샤흐보, 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요헨 베커, (사)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인 김상민의 인터뷰와 독립 큐레이터 심소미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전시회의 비물질화


 

마리나 오테로 베르지에는 전시가 디스플레이를 위한 공간이 아닌, 어느 연구 프로젝트의 출발점, 공동의 공적 조사 현장으로 이해한다고 한다. 전시회란 특정 공간에 예술가가 만든 작품을 걸고 대중에게 선보이는 행사가 아니라, 어떠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토론의 장인 것이다.

 

앞서 서술했듯 우리가 전시회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작품만이 아니다. 공간 안에서 느끼는 감각을 비롯하여 신체의 움직임, 전시 공간 안에 있는 물건들의 역사와 기원, 전시 공간과 전시 내용 사이의 긴장 관계 등 경험적이고 학문적이거나 정치적인 모든 요소들이 한 전시회에서의 담론을 형성한다. 슬프지만 비물질 전시회에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제거된다.

 

봉쇄령 기간 동안 전시회뿐만 아니라 오프닝 행사, 언론 인터뷰, 작가와의 만남 등 전시회와 함께 이루어지던 모든 상호 교류가 멈춰버렸다. 대부분의 미술관에서는 온라인으로 가상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2020년 10월 개최된 전시회 <당신을 닮은 세계>에서는 기발한 시도가 있었다. 방문객들이 전화로 눈앞에 보이지 않는 작품에 대해 도슨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요헨 베커는 비물질화된 전시회에 ‘포스트-줌 피로’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줌을 통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안정감을 가질 수 없어 피로하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요헨 베커가 속한 연구기관인 '메트로존'에서는 다채널을 이용하고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거나 움직임을 만듦으로써 줌 안에 공간감을 구현하고자 했다.

 

 

 

기술의 한계와 불평등


 

온라인에서 전시 경험을 제공하려는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는 전통적 감상 방식을 뛰어넘는 방식은 나타나지 않았다. 메타버스를 예로 들자면, 스마트폰을 가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대중적 가능성이 있지만 현실에서 체험할 수 있는 감각만큼 섬세하지는 못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본질적인 문제점이 있는데, 바로 기술적 불평등이다. 최근 꽤 많이 등장하고 있는 증강현실(AR) 전시의 경우 실제 전시관에 가서 스마트폰으로 공간을 촬영하면 증강현실 이미지가 나타난다. 전시장에서 종이 인쇄물이 사라지고 QR코드를 스캔해야 전시회에 관련된 자료들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은 예술 감상을 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proxyclick-visitor-management-system-ZlxVynP-4bQ-unsplash.jpg

 

 

2021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독일관은 이러한 트렌드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빈 전시장 안에 QR코드만 두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전시 경험의 변화를 급진적으로 실험”이라거나 “트렌드로의 무비판적 이행,” “무책임한 오프라인 전시”라는 대립적 관점을 보였다.

 

QR코드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팬데믹 이후 그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대다수의 국가에서 백신 패스를 QR코드로 발급했다. 우리가 전자 문서를 볼 때는 하이퍼링크를 클릭해 다른 문서나 웹페이지에 접근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손으로 하이퍼링크를 클릭할 수 없기에 이 상황을 QR코드로 해결한 것인데, 이것은 사람들이 눈으로 들여다보아서 해독할 수 없는 이미지이다. 기계를 위한 이미지와 영상이 즐비한 세상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뜻이다.

 

 

 

현실과 가상의 동기화 시대


 

봉쇄령과 사회적 거리 두기가 모두 해제된 지금, 우리는 여전히 팬데믹 당시 등장한 비대면 비접촉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김상민에 따르면 이는 '본격적으로 심화될 현실-가상 혹은 오프라인-온라인 사이의 동기화의 서막'이다.

 

우리는 이미 현실과 가상 세계가 연결된 세상에 익숙하다. 오프라인으로 전시회를 관람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하면 인스타그램 계정을 검색하고, 미술관의 유튜브에서 관련된 영상들을 시청하는 등 온라인으로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한다. 인쇄하여 물질적으로 구현하지 않을 사진을 찍어 가상 공간에 게시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온·오프라인의 결합 욕구가 커지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넘어 현실과 가상의 이분법적 경계가 희미해질 것이다.

 

지금의 가상현실 기술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경험하던 것들을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앞으로는 현실의 공간을 가상 세계 안에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전시 형태가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달리 생각해 보면, 많은 것을 비대면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해진 세상에서 예술만큼은 실제 공간에서 물질적으로 경험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팬데믹이라는 위기는 예술 감상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 보고 다가올 세상을 예측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온라인 플랫폼은 위기 속에서 문화 예술이 지속 가능한 환경을 이끌어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큰 과제가 남겨져 있다. '오프라인-온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시공간의 재편 속에서 예술은 어떠한 방식으로 물리적 현존을 지속할 수 있을까?' 더불어, '물리적 공공영역의 역할과 기능이 점차 축소되어가는 상황에서, 예술의 고유한 물리적 경험이 지속 가능한 방식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과제이다.

 

<큐레이팅 팬데믹: 비장소·비물질 시대의 예술 경험>, 11p

  

 

[김지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