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유리별 프로젝트 - 사소한 행복은 큰 행복의 근원 [공연]

연극 <유리별 프로젝트>를 관람한 후
글 입력 2023.05.0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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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빈 유리병을 하나 주며 행복한 순간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 속에 어떤 순간을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당신은 그 유리병을 항상 소지하고 다닐 것인가? 이 물음에 “네”라고 대답한다면,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해서 유리병에 꽉꽉 눌러 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으므로. 그러나 이 물음에 조금이라도 망설이고 있다면 지금부터 한 인물의 삶으로 들어가 행복의 의미를 함께 모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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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유리별 프로젝트>는 과밀화된 도시 속에서 심리에 금 간 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요한’은 약과 술에 찌든 채 하루하루를 불행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항상 약과 술로 하루를 버티고 이것들이 없으면 심하게 불안해한다. 마치 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는 듯한 그에게는 정신 지체장애인 동생 ‘바울’이가 있다. 과거 요한은 ‘바울’에게 행복을 저장하라고 말한다. 무심코 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유리병 안에 행복을 저장해오며 그 병을 ‘유리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과연 바울이 유리병 안에 담은 행복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동생에게 받은 ‘유리별’에는 행복한 순간이 들어있지만, 행복을 느끼기 위해 마주해야 한 시간은 과거 요한의 불행한 순간이었다. 바울이가 유리병 안에 담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요한에게는 가장 불행했던 순간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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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5년 전, 중학생 요한의 학교 앞에 엄마가 서 있다. 놀란 아들 앞에서 엄마는 발랄한 표정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여행의 비용은 요한의 돼지 저금통을 깨서 나온 돈으로. 이전 엄마가 새아빠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당하는 모습을 본 요한에게 태연한 엄마의 모습은 그의 안도감을 자아내기 충분했을 터. 신난 요한은 바로 엄마의 제안을 승낙한다.


엄마, 동생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그들이 본 건 푸른 바다와 저금통의 돈만으로는 결코 먹을 수 없던 해물 라면 그리고 호텔이었다. 좋은 곳에서 숙박하며 설렘을 느끼던 요한이 그날 밤 경험한 건 자신을 옥죄는 엄마의 손끝, 희미하게 보이는 전선, 흐려지는 시야 속 엄마의 얼굴이었다. 


행복한 순간만 가득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그 여행은 엄마가 계획한 세 모자의 자살 여행. 그 뒤로 충격을 받은 요한은 집을 나가 엄마와 연락을 끊은 채 동생 바울이하고만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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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바울에게 걸려온 전화, 수화기 속 너머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15년 전의 사건 이후로 엄마를 증오해 장례식에도 가지 않은 그에게 불행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약물에 중독된 요한과 함께 정신병원에 다니며 오랜 시간을 같이한 여자친구 ‘주미’마저 뇌종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요한은 주미에게 수술을 할 것을 권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그녀는 남은 시간을 요한과 함께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의자를 밟고 책상 위에 올라간 요한. 그의 손에는 긴 전깃줄이 있다. 끝을 매듭지어 자신의 목에 건다. 불행한 인생이다. ‘왜 나의 삶은 이런 것일까?’, ‘내가 무얼 잘못한 걸까?’ 떨리는 손끝에서 동생 바울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행동을 하고자 한다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얼 하고 있냐고 묻자 형광등을 교체하다가 잠시 쉬고 있다고 얼버무리는 요한에게 바울이 한 말이다.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자조하는 요한에게 바울이는 자신이 ‘유리별’ 안에 담은 행복의 순간을 나열한다. 


‘빗소리를 맞이하며 잠들 때, 카페에 갔는데 창가 자리가 있을 때,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때, 달걀을 삶은 게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반숙이 됐을 때, 무심코 구운 고구마가 꿀고구마였을 때.’


바울이가 느낀 행복은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사소함과 동시에 일상에서 누구나 겪어볼 만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행복으로 인식해 유리별 안에 담느냐 마느냐는 생각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행복의 의미를 거창하고 대단한 것으로만 간주한다면 이런 순간들은 평범하게 지나치게 되는 것이지만, 그 의미가 조금만 축소된다면 우리가 매일 만끽하며 몸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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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별 프로젝트>는 일종의 열린 결말이다. 동생의 말을 들은 요한이 눈물을 떨어뜨리며 목에 건 전깃줄을 푸는 것에서 연극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요한과 주변 인물의 삶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은 요한이 조금은 행복에 다가설 것임을,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목에 걸린 줄을 푼 건 동생이 말한 행복의 의미가 거창한 것만은 아님에 동의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행복이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얼마나 많이 느끼는지에 관한 마음의 상태이다. 이 단어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행복이 생각보다 사소하고 쉽게 다가온다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더불어 우리가 이 사실을 알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행복을 놓치며 살았는지 자각하게 된다. 일단 나부터 말이다. 큰 시험에 합격해야, 대단한 무언가가 돼야, 거대한 일들이 일어나야 진짜 행복할 것이라고 느끼며 작은 것들을 소홀히 했던 나에게 행복은 '과정을 즐기는 것'으로 다가왔다.


큰 결과만을 바라보고 하루를 견디며 사는 것이 아닌,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결과에서 얻는 만족과 기쁨은 잠시뿐이고 그 순간의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기나긴 시간을 인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인생은 끊임없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긴 과정의 나날들이 항상 고통스럽거나 하루를 견디듯이 보내는 것이라면, 행복의 순간 역시 찰나에 불과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순간의 사소한 행복을 찾고 그것을 놓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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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관객과 배우 사이가 매우 가깝다는 것이다. 일단 입장 티켓부터가 그렇다. 다른 연극 관람과는 달리, 이 연극은 종이 티켓 대신 작은 병을 하나 준다. 연극이 끝남과 동시에 관객은 이 유리병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집에 가져간 유리병에 이제부터 각자가 느끼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잘 담아보라는 것.

 

이는 공연 중 요한이 자신의 분을 주체하지 못해 던진 물건들이 관객의 발끝 바로 앞에 떨어진 것, 정신과 진료를 받고 사회에 회의감을 느낀 요한이 관객석에 앉아서 소리 지르는 것, 그리고 그런 그를 여자친구 주미가 데리러 오며 관객에게 사과하는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관객과의 거리를 가깝게 설정해 한 인물의 삶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그의 감정을 함께 느끼며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숙고해볼 기회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관객으로서도 요한의 삶은 겉으로는 표출되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을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


연극이 끝난 후에는 약간의 피폐해진 마음과 사소한 희망을 얻었다. 약물로 이루어진 한 인물의 삶이 눈물로 얼룩지고 완전히 추락할 듯했으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고자 한 것. 더욱 분명한 건 바울이의 손에 있는 유리병이 극장을 나가는 우리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저마다 하나씩 받은 유리병을 채우는 일만 남았다.

어떤가, 지금 당신의 유리별은 어느 정도 채워졌는가? 앞으로 더 많이 채워져서 꽉꽉 눌러 담아야 하는가?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도 중요하다고 느낀 사람이라면 이제 이 물음에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물음에 '네'라고 답했는가?


그렇다면 축하한다. 앞으로 펼쳐질 당신의 나날들에는 여러 종류의 행복이 가득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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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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