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힘 - 소다미술관 경선화 큐레이터

글 입력 2023.05.0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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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TTE 포스터.png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SNS와 커뮤니티 속에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만나는 누군가의 삶은 삶에 우열을 매기고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보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질 때가 많다.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기 쉬워진 시대지만, 그 삶을 이해하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진 것이다. 하나의 세상을 공유하면서도 각자 자기만의 삶에 갇혀 있는 셈이다. 내 세상에서는 당연한 무언가가 다른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상상하는 힘이 필요하다.


소다미술관의 기획 전시 [PALETTE: 우리가 사는 세상 2023]은 우리가 좀 더 다양한 삶을 상상해보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가 10명이 선보이는 작품은 각각의 예술가가 보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잘 보여준다. 시각장애가 있는 예술가가 보는 세상과, 청각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둔 예술가가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장애 예술’로만 명명될 수 없는 다양한 세계가 거기 있다.


버려진 찜질방에서 미술관을 상상한 덕에 지금의 소다미술관이 있는 것처럼, 상상은 없는 것에서 시작해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 전시에서 시작된 상상은 누구에게 어떤 모습으로 실현될지 궁금해하며, 전시 기획자 중 한 명인 경선화 큐레이터를 만났다.

 


소다미술관 공간 (7).jpg

소다미술관

 

 

“단순히 ‘장애 예술’이라는 틀 안에 갇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바랐어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일단 소다미술관은 어떤 공간인지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소다미술관은 2016년 방치된 대형 찜질방을 디자인·건축 테마 전시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곳이에요. ‘소다(SoDA)’는 Space of Design and Architecture’의 줄임말입니다.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소개하고 있어요. 


미술관이 위치한 곳이 원도심과 신도시의 딱 중간 지점인데요, 당시 이 지역을 어떻게 활성화할지 고민하다가 미술관을 떠올렸다고 해요. 찜질방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잖아요. 비어 있는 방들을 예술로 채우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리모델링할 때도 찜질방의 기존 구조를 살렸어요. 

 

 

소다미술관에서는 여러 기획전시를 볼 수 있는데, 인터뷰를 하는 지금은 [PALETTE: 우리가 사는 세상 2023]이 진행 중입니다. 간단한 설명 부탁드려요. 제목인 ‘PALETTE’는 어떻게 정해졌는지도 궁금합니다. 

 

[PALETTE: 우리가 사는 세상 2023]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포용력 있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취지로 기획된 전시로, 비장애 예술가와 장애 예술가 10명이 참여합니다. 작년에 이어 같은 제목으로 두 번째 전시를 열게 되었어요. 


전시 제목을 두고 고민하던 중 다양한 색이 공존해야 아름다워지는 팔레트가 떠올랐어요. 팔레트의 여러 색을 섞어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잖아요. 그것처럼 이 전시 작품 역시 단순히 ‘장애 예술’이라는 틀 안에 갇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팔레트’를 제목에 넣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같은 제목으로 두 번째 전시를 하게 되어서 더욱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기획자들은 전시 주제를 놓고 매번 회의를 하는데, 그때마다 장애는 꾸준히 나왔던 주제였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보류하던 중, ‘꿈고래놀이터’라는 단체와 작년에 연이 닿아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님 여섯 분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첫 번째 전시를 열었습니다. 작년에 관심을 보여준 화성시가 올해 후원처가 되어줘서 두 번째 전시도 기획할 수 있었어요.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다른 지역이나 기관에서도 [PALETTE: 우리가 사는 세상] 전시를 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년에는 세종시립도서관에서도 전시를 선보였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는 같은 전시를 장소만 바꿔서 했던 거지만, 나중에는 더 나아가 해당 지역의 예술가들을 소개할 수 있으면 좋을 듯해요.

 

 

작년 작품과 올해 작품을 비교했을 때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나 변화가 있을까요?


참여하는 예술가도, 작품 종류도 다양해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어요. 작년 전시는 발달장애가 있는 6명의 예술가가 참여했다면, 올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가 10명이 참여했죠. 또 회화 작품만 있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영상 작품도 볼 수 있습니다. 

 

 

소다미술관_전시 이미지 (2) ⓒ양이언.jpg

[PALETTE: 우리가 사는 세상 2023] 전시 모습

 

 

“우리가 더 많은 삶과 다양한 면을 경험할수록

타자에 대한 포용력도 늘어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술이 그 지점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시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주의를 기울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전시를 봤을 때 장애 예술가의 작품이라고만 생각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여기는 순간 이건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일로 여겨지고, 장애 자체가 타자화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전시된 작품을 ‘장애 예술’로 명명하기보다 각 작가가 본인의 고유한 시선으로 포착한 세계임이 드러나도록 열심히 노력했어요. 


장애 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를 함께 초청한 것도 그런 이유예요. ‘장애’라는 것을 특별히 크게 내세우지는 않으려 했어요. 그보다는 전시 제목처럼 작가 각자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루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죠. 관람객이 장애를 생각하기 이전에 열린 마음을 갖고 다정한 시선으로 작품들을 봐주기를 바랐어요.

 

 

전시 작품은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10명의 예술가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방향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잖아요.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이 경험한 세계에 대해서 말하는데, 공통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 사회 공동체로 나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우리’에게 대화를 거는 거죠. 


예를 들어 이겨레 작가는 본인이 시각 장애로 경험한 한계를 다루다가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가진 한계를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죠. 지후트리 작가도 본인 가족에 대한 경험을 수화를 매개로 풀어내면서 나중에는 사회 전체에 "우리가 좀 만났으면 좋겠다"며 대화를 걸어요. 

 

 

결국 공동체의 이야기로 나아간다는 말씀에 공감하며, 2023년의 한국에서 다양한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궁금해집니다. 관련해 큐레이터님의 자유로운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는데요. (웃음)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나의 의견을 쉽게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환경은 정말 필요한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도 좋지만 쉽게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혐오하게 만들기도 해요. 저 또한 그와 완전히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게 돼요. 관련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제 경우를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삶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다고 보는데, 인터넷에서는 그 모호함을 ‘옳은 것’ 아니면 ‘틀린 것’으로 쉽게 구분해버리곤 해요. 개인적으로는 그 모호한 상태, 어떤 판단을 보류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다양한 관점과 시선을 알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시위가 있었다면, 그 시위를 비난하는 사람과 그 시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 각각의 입장을 다 들어보자는 거죠. 

 

 

예술이 그 지점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도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어떤 삶을 쉽게 엿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기사나 다큐멘터리로 봤을 때는 불편하거나 보고 싶지 않았던 순간도 예술을 통해서 만날 때는 의외로 다정하게 바라보게 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예술이 다양성을 접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 다양성을 만날 때 우리는 쉽게 판단하는 걸 보류하고 누군가를 덜 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예술이 어떤 사안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완충지대가 된다는 생각도 들고요. 


최근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서 봤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이 있었을 때 본인이 유대인이 아닌데도 목숨을 걸면서까지 그들을 감춰줬던 사람은 이전에 유대인과 조금이라도 접점이 있었던 사람들이래요. 그걸 보고 우리가 더 많은 삶과 다양한 면을 경험할수록 타자에 대한 포용력도 늘어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술이 그 지점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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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미술관>의 일환으로 우음도에서 볼 수 있는 파빌리온 전시

 


"우리는 빠르게 발전하고 새로운 건물을 많이 세우는 것에만
급급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정말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다른 전시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큐레이터님이 큐레이터로서 관심 가지는 분야는 무엇이며, 앞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전시가 있다면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해보고 싶은 전시는 너무 많은데요, 주로 제 삶과 맞닿은 부분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저는 강원도에서 나고 자라 시각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문화예술 인프라의 상당수가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막상 큐레이터가 되어서 경기도에서 전시를 하다 보니 수도권 안에서도 지역 격차가 크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어요. 소다미술관이 있는 화성시만 봐도 원도심과 신도시 차이가 크거든요. 그래서 도시와 정주, 삶에 관심이 많고 관련된 전시를 기획해보고 싶어요.


우리가 어떤 도시에서 살아가며 소속감과 만족감을 느끼려면 정주 여건뿐만이 아니라 내가 이 도시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도 중요해요. 그런데 우리는 빠르게 발전하고 새로운 건물을 많이 세우는 것에만 급급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정말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 소다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공공예술 프로젝트 <도시는 미술관>도 말씀하신 주제와 연관되어 있는 거 같아요.


맞아요. <도시는 미술관>은 화성시의 이야기가 담겼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건축과 디자인, 예술 등의 가치를 각 분야 전문가와의 협업을 거쳐 지역 여행 콘텐츠로 소개하는 프로젝트예요.


화성시는 가로로 긴 모양인데 동탄 쪽은 엄청 발전해서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그 외 70퍼센트가량의 지역은 개발이 정말 안 되어 있거든요. 서로 이동도 없고요. <도시는 미술관>을 통해 신도시와 원도심 사이 불균형을 완화하고 서로 이동이 활발해져 공동체가 연결되기를 바라요.

 

 

<도시는 미술관>은 2020년에 시작해 어느덧 4년째인데요, 올해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궁금합니다.


올해 <도시는 미술관>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5월 2일부터 7월 9일까지 우음도에서 열려요. 우음도는 갈대와 오래된 돌이 많은 곳으로, 바람 소리가 나서 우음도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BTS의 뮤비 촬영지이기도 해요. 하지만 기반시설이 없고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직 사람들이 방문을 많이 하진 않아요. 이곳을 알리기 위해 건축가 '다이아거날 써츠'가 참여해 광활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파빌리온(건축가설물)과 소리를 모아주는 집음기를 설치했어요.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찾아와주셔도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다미술관에서 앞으로 예정된 전시가 있다면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5월 말에 실내 전시 <불편한 미술관>을 준비 중이에요. 부제는 '우리는 그들에게'가 될 것 같아요. 매해 소다미술관의 메인이 되는 전시는 시의성을 중요시해서 지금 우리 공동체에서 해봄직한 이야기를 다뤄요. 이번 전시 역시 10명 정도의 예술가가 참여해 사회, 집단에서 지워지거나 삭제된 개인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전시가 될 예정입니다.

 

 

*사진제공: 소다미술관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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