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의 최종 관문, '만족스러운' 죽음에 대하여 -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글 입력 2023.05.0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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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인구의 급증과 웰다잉


 

2022년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인구가 9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오는 2025년 한국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대한민국은 2000년도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후, 전세계에서 전례없는 속도로 노인층이 증가한 국가라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20세기 중반부터 노인인구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이에 각국에서는 노인과 관련된 제도를 마련하고 또 사회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세대에 맞는 맞춤형 제도를 꾸준히 제공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노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여, 더 활발히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살아있는 동안에 겪을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하고 경감하기 위한 대책 마련도 중요하지만, '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는 다름 아닌 '좋은 죽음'이다. 긴 레이스의 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죽음을 '소생할 수 없는 삶의 영원한 종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죽음이다. 생물학적으로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한 마디로 생명력을 잃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죽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영원한 종말을 향해가는 것이자, 생존능력이 퇴화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죽어가는 존재로,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짧은 문장은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좋은 죽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설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를 함께 살펴 보며 이야기 나눠 보고자 한다. 

 

 

 

전직 사회복지사의 눈으로 바라본 소설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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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는 죽음을 원하는 어느 할머니, 유도라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여느 노인들과 같이 따분하기 그지 없는 삶을 살고 있던 유도라. 그런 그녀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안락사를 선택한 것이다. 선택 이후, 천천히 죽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녀의 삶에 새로운 이벤트들이 찾아 오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소설에서는 유머러스하고도 담백하게 풀어낸다.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중심 주제는 바로 인간의 안락사와 존엄사이다. 중심 문장을 뽑아 내자면 다음과 같다.


 

마지막 순간에 나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마지막을 종종 그려보는 사람으로서 많은 감정을 떠올렸던 문장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열심히 노력하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데, 그래서 삶을 끝맺는 순간만큼은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생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책 속에 나오는 '루스'를 보고 퍽 반가웠다. 필자 또한 루스와 마찬가지로, 사회복지사로 근무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모든 생명과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한 길고 긴 레이스를 하게 된다. 태어나는 건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필자 또한 변함이 없다. 그것이 인간을 존중하는 길이라는 점 또한 같은 생각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 또는 그녀의 선택이 과연 최선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살면서 최선보다 차선을 더 자주 선택하며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만큼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 선택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마지막 선택인 만큼, 자신의 손에 달려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누군가 죽음을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다고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인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보편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따른 죽음은 결과적으로 평온하고 존엄한 끝맺음을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나 관계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노인 복지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노인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안락사 선택을 지지해주는 것은 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함으로써 인격적인 가치를 보존해주는 것이다. 또한 삶의 질 측면에서도, 죽음을 택하는 것이 덜 고통스럽고 존엄을 유지하는 길이라면 죽음을 존중해줘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존엄사와 관련한 판례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김할머니 사건'이 있다. 의식이 있을 때 지속적으로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힌 노인의 가족이 인공 호흡기 제거를 요청한 일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존엄한 죽음'은 그리 간단하게 정의될 것은 아니다. 환자 자신의 의지가 아닌, 상황에 따라 이른 죽음을 택하거나 환경적으로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도라처럼 삶의 끝자락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회유하게 되는 사람의 비율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안락사와 존엄사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인간이 마지막 순간에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선택이자, 가장 슬픈 선택. 그래서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사회에서 늙고 싶은지를 말이다. 유도라가 그랬던 것처럼, 다정함과 따스함이 사실은 사람을 살게 만드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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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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