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계생명체와 우리의 작은방주 [전시]

글 입력 2023.05.0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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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기기



작년 가을부터 올해 2월까지 관람객들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졌던 국립현대미술관 <작은방주>, 비록 1월에 관람한 전시이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정리해보며, 최우람 작가가 전하고자했던 의미와 현시대의 질문들을 되새기고자 한다.

 

‘움직임과 서사를 가진 기계 생명체’ 최우람 작가의 작업물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핵심 가치이다. 그는 기계 생명체라고 부르는 자신의 작품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와 세계관을 덧붙여 관람자들에게 인간 실존과 공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최우람 작가의 근간을 표현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낸 전시가 ‘MMACA 현대차 시리즈 2022: 작은 방주’이다. 전시 작품의 핵심 구성은 <원탁>, <방주의 춤>, 작가의 작품 설계 드로잉을 보여주는 <항해의 설계>로 구성되어, 현재 우리 삶 속 존재하는 기후변화, 경쟁, 계급에 관한 작품을 제작함과 동시에 현재의 인류에게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한 관람객의 사유를 유도한다.

 

 

 

<원탁>, <하나>, <원탁>


 

해당 전시에서 많은 관람객과 대중의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서울 박스에 전시되었던 <원탁>이다. 머리가 없는 18개의 지푸라기 몸체,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 속 형벌처럼 둥근 테이블을 몸통에 받치고 있는 모양새를 하며, 중앙에 있는 공(머리의 상징적 표현)을 차지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인다.

 

<원탁>에는 동작인식 카메라, 기계, 전자 장치를 설치해 공(머리)이 떨어지지 않도록 제작했다. 또, 원탁 위 지푸라기 몸체들의 경쟁을 내려다보는 검은 새를 설치함으로써 경쟁에서 낙오된 자를 노리는 포식자, 혹은 또 다른 경쟁자로서 ‘무한 경쟁의 굴레와 계급’이라는 주제의식을 나타낸다.


<원탁> 다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하나>, <빨강>은 코로나의 등장으로 인한 혼란의 시기에 의료진의 방호복 재질인 타이벡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겹겹이 쌓인 꽃잎들의 화개 화사(花開花詞)를 통해 생명의 순환을 표현하고, 코로나와 같이 인류가 겪었던 위기, 의료진에 대한 헌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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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방주



5전시실의 메인 작품 <두 선장>과 <방주의 춤> 그리고 <등대>, <출구>, <무한공간>은 각각의 작품처럼 보이지만, 모든 작품이 하나의 방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에게 노아의 방주, 인류 역사 속 전쟁 혹은 피난처 용도의 배로 인식되어 있는 방주는 작가에 의해 기계, 로봇, 폐종이박스를 함께 결합한 기계-방주, 로봇-방주로 재탄생했다.

 

하나의 방주 위, 서로의 등을 맞대고 제임스 웹 망원경으로 현재의 목적지가 아닌 저 멀리 어딘가에 존재할 우주의 시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두 선장>을 통해 기존의 방주가 가지고 있던 인간 구원의 의미와 반대되는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는 <작은 방주> 전시에 대해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인간의 삶과 모습을 대변하는 ‘기계 생명체’와 기계문명 속에 나타난 인간의 욕망은 해당 전시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결부되었는가?, 해당 전시와 기계, 로봇 등 테크놀로지의 융합이 가져온 효과 및 특성은 무엇인가?. 두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기 위해 최우람 작가의 가치관과 <방주의 춤>을 조금 더 깊게 머금어보도록 하자.


 

 

기계생명체가 나타내는 인간의 욕망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와 산업혁명 이후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기술(기계술)이 등장하며 시작된 기계문명은 인간의 편의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구축되었다. 즉, 기계문명의 등장 배경 속에 끊임없이 편의를 추구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최우람 작가의 <쿠스토스 카붐>, <파빌리온>에서 볼 수 있듯 ‘일상적 소재에서 마주칠 수 있는 사회 권력과 인간 사회의 욕망을 테크놀로지의 문맥에서 풀어낸다. (중략)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는, 첨단과학기술이 제공하는 편의에 취해 인류가 그 위험성을 망각하고 지내는 동안 변모한 기계의 진화와 생태계의 변화를 관람객이 마주하도록 해준다.’

   

이렇듯 최우람 작가는 다양한 시청각적 장치를 통해 전시공간을 현실과 욕망이 중첩되는 상징적 공간으로 만듦으로써, 기계문명 속에 나타난 우리의 욕망, 현실과 미래를 결부시켜 그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관객들은 로봇을 의인화하고, 사회적 상황을 투영해 로봇을 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또한 로봇의 상황을 관객이 관심 가지는 삶과 사회적 처지와 연관해 생각하는 반응도 다수 관찰되었다.' 해당 연구 사례에서 활용된 로봇 표현 및 관객 접근 방식은 <작은 방주>와는 다르게 나타나지만, 지푸라기 몸체, 작은 방주 노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해 로봇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관객들의 사유 흐름은 두 전시 사례 모두 동일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기계와 로봇을 실제 사람의 형태로 제작한 <원탁>의 경우, 관람객의 사회적 상황과 삶에 대한 가치관을 투영하여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앞서 인용한 인간-로봇, 기계의 상호작용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인간의 실존 및 공존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해낸 것이 감각의 요소와 사회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테크놀로지 융합 전시의 특성 및 효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예술과 기술, 그리고 동시대의 질문


최근 VR, AR, 빅데이터, AI, 메타버스 등 다양한 예술 장르와 융합한 테크놀로지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과 <작은 방주>의 차별점이 있다면, 최우람 작가의 작품들은 예술창작의 도구로서 활용되는 것이 아닌 기계장치와 전자 장치, CPU 모터, 동작인식 카메라를 활용해 예술작품이 테크놀로지이고, 테크놀로지가 예술작품이 되는 경계 없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모든 작품의 근본이 되는 설계 드로잉을 선보인 <항해의 설계>에서 볼 수 있듯, <작은 방주>는 인간이 가진 본질적 욕망과 그로 인해 초래된 경쟁의 굴레를 탐색하고, 저마다의 방주를 어떠한 항로로 항해하여 공존을 이룰 것인가 성찰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최우람 작가의 <작은 방주>를 통해 우리는 예술과 기술 융합의 의미와 효과에는 무엇이 있을지, 인간과 기계에 대한 경계를 사유하는 동기를 얻을 수 있다.

 

 



 

<참고문헌>

- 이재은. (2021). 포스트휴먼의 꿈,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를 중심으로. 탈경계인문학Trans-Humanities, 14(2), 55-84.

- 김현주, 이준환.(2022).전시공간에서의 인간-로봇 상호작용에 대한 탐색적 연구.DBpia

 
 
[윤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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