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외로움이 우거진 그 숲에는 자줏빛 비가 내린대 [영화]

영화 <자우림, 더 원더랜드>와 폭풍우 치는 청춘
글 입력 2023.05.0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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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스타 아이디에는 17171771이라는 자우림의 곡명이 박혀 있다.

 

과거의 나는 자우림의 팬이 아니었음에도 17171771을 포함한 자우림의 노래를 좋아해서 만든, 큰 의미 없는 아이디다. (개인적으로 17171771과 카니발 아무르 두 곡을 돌려 듣는 걸 좋아한다) 노래 몇 곡을 좋아할 뿐이지, 사실 자우림이라는 밴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솔직히 더 깊게 알아볼 의지도 없었다. 몇몇 노래들과 또 몇 개의 무대 영상을 가끔 재생하는, 아주 가벼운 ‘좋아’였으니까. 좋은 노래를 만드는 밴드, 그게 자우림을 향한 나의 인식이었다. 그런 밴드의 음악 다큐멘터리가 나왔다니, 약간의 흥미가 생겨 충동적으로 예매했다. 그렇게 깃털보다 가벼운 기대를 안고 영화 <자우림, 더 원더랜드>를 보러 갔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나는, 분명 알고 있었지만 어딘가 낯선, 동시에 나와 아주 가까운 무언가를 노래하는 자우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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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SBS뉴스, "자우림, 데뷔 25주년 다큐멘터리<자우림, 더 원더랜드>전주국제영화제 개봉"

 

 

 

밴드 <자우림>을 소개합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자우림? 궁금하긴 한데, 내가 나서서 찾아보긴 귀찮기도 하고 찾기도 힘들잖아?’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이 영화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자우림, 더 원더랜드>는 자우림과 여러 사람의 입을 빌려 자우림이라는 밴드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들이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청자는 누구인지 전한다.

 

기타 이선규가 밴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 이선규와 베이스 김진만이 만난 일, 김진만이 우연히 보컬 김윤아를 만나게 된 일과 같은 자잘한 에피소드들 덕분에 팬이 아니었던 나 같은 관객이 이 밴드의 시작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자우림은 나에게 클래식과 같은 이미지였기 때문에, 마치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은 생경함과 호기심을 느꼈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자우림이 추구하는 화자와 그들이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청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음속에 폭풍우가 치는 청춘.’ 누구나 마음속에 폭풍우가 치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자우림은 바로 그 순간 자신들이 우리의 곁에 있고 싶다고 말한다. 모두가 흔들리니 괜찮다고, 언제나 그렇게 말해주겠다고 선언한다. 거센 태풍처럼 나에게 달려오던 자우림의 노래마저 누군가의 가슴 속 폭풍우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우리가 너에게 치달아 위로가 되어주겠노라 전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 순간 가슴이 찡하게 뭉클해져 눈물이 찔끔 나왔다. 누군가에게 “내가 너에게 위로가 되겠다.”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너무 오래되어서일까? 은유와 비유가 아닌, 직접 귀로 전해지는 ‘위로’라는 단어가 낯설게 다정해서 오히려 슬펐다.

 

 

 

푸르른 봄과 폭풍우 치는 가슴


 

영화를 보는 내내 ‘청춘’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푸를 청에 봄 춘. 청춘(靑春). 사람의 젊은 시기를 통칭하는 이 단어의 색깔에 관해 생각했다. 푸르다(靑)는 건 우리말에서 보통 화창하게 맑은 하늘과 이제 막 돋아난 새순을 수식할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러나 동시에 진하게 든 멍을 묘사할 때 붙이는 표현이기도 하다. 영어로 ‘blue’는 우울을 뜻한다. 푸르다는 색은 이중적이다. 봄(春)은 또 어떤가. 주로 초록빛 위에 가지각색의 꽃이 피어난 정원과 같은 이미지로 대표되지만, 실은 찌뿌드드한 황사의 계절임과 동시에 큰 폭의 일교차가 몰아치고, 계절의 길이마저 심히 들쭉날쭉한 계절이 아닌가? 그러므로 청춘의 색이란 사실 흔히 떠올리는 것처럼 파릇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젊은 세대를 상당히 잘 묘사하는 단어다.


자우림은 이 틈을 날카롭게 포착한 청년들이다. 모두의 마음속에 폭풍우 치는 시기가 바로 청춘이라는 것을 느끼고 청춘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악평론가는 IMF의 시기,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몰려 있던 시기의 청춘에게 자우림의 일탈성 짙은 노래가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 분석한다. 실제로 나 또한 힘들 때 <일탈>, <샤이닝>, <이카루스> 등 자우림의 우울하고 자조적인 노래들을 연거푸 재생한 적이 있어 공감이 갔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노래들이 아직도 사랑받고 있음이 씁쓸했다. 지금 내가 겪는 불안과 흔들림을 세대라는 집단과 동시에 느꼈을 나의 선배들이 생각났고, 그 선배들이 듣던 노래가 우리 세대까지 위로가 된다는 것이 서글펐다.


영화는 자우림 또한 변하지 않는 청춘의 불안을,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씁쓸한 현실을 느끼고 있다고 전한다. 김진만은 <샤이닝>의 식지 않는 인기에 관해 이야기하며 ‘10년 전에 만들어진 노래들이 아직도 세태에 어울린다. 아니, 갈수록 이 노래가 청년들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라고 눈물지었다. 이쯤에서는 눈물이 마스크 안까지 들어왔다. 쭉 청춘의 곁에 서 있었을 자우림을 생각했다. 누구보다 오래 태풍의 눈을 따라 걸어왔을 그의 인터뷰에 감동했다. 청자의 불안을 직시하는 통찰과 이에 공감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다정함이 자우림이라는 밴드의 가장 큰 힘임을, 그게 바로 ‘롱런’의 비결임을 그렇게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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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100 Films 100 Posters 공식 사이트

 

 

 

단언컨대 가장 성공적인 조별 과제


 

자우림의 ‘롱런’ 비결은 통찰력에만 있지 않다. 아무리 대중에게 공감되는 노래를 만들더라도, 밴드 자체가 오래 가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자우림은 끈끈하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각자에게 익숙해진 것과 그 어떤 힘겨운 일이 닥치더라도 서로를 믿고 나아갔던 일화들이 그 끈끈함을 증명한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나누지 않을지 구분하는 김윤아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뇌 신경 마비로 투병할 때 했던 ‘이게 나의 마지막 앨범이겠구나’라는 생각을 그가 주변인과 나눌 수 없었다고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나누지 않기로 했다고 생각하자 신기해졌다. 자신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언제든지 뽑아내어 쓸 수 있는 소재’로 생각한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무언가를 딛고 일어난 사람이 아름다웠고, 이를 타인과 나누는 용기를 가진 그의 강인함이 존경스러웠다.


자우림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인터뷰 또한 흥미롭게 보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인터뷰는 ‘이선규는 자우림이 아니었더라도 어느 밴드의 프론트맨으로서 밴드를 이끌 힘이 충분하고도 남는 사람’이라는 누군가의 평이었다. 조별 과제에서는 힘을 주고 빼는 부분을 제대로 연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두가 중요해 보이는 역을 맡을 수도, 모두가 덜 힘든 부분을 맡을 수도 없다. 김윤아라는 빛나는 프론트우먼을 위해 김진만과 이선규가 기울인 노력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자니, 과거 가까이 마주쳤던 그들의 얼굴에 왜 내가 잠시 압도되었었는지, 내가 왜 자우림을 궁금해했는지 그제야 설명이 되는 기분이었다.

 

밴드라는 평생의 조별 과제에서 그들은 그 누구보다 단단한 기둥이었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를 접하고 난 지금, 나는 이들의 팀워크를 가슴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미래의 조별 과제들을 생각하자니 참 가지고 싶기도 했다. 닮고 싶은 인물 목록에 자우림을 올린 순간이었다. 엄마, 저는 자우림 같은 사람이 될게요!


 

 

자줏빛 비를 넘어, 자주색의 우림


 

영화의 상영이 끝나고 난 뒤, GV를 듣고 나오는 길에 미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감독이 말했던 ‘이 영화를 봐줬으면 하는 관객’이 바로 나였다. 자우림의 노래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세히 모르는 ‘팬’이 아닌 사람. 내 얘기잖아? 어쩌다 보니 감독이 바랐던 관객이 되어 그들의 의도대로 자우림의 팬이 되어 나왔다. 그것도 “자우림 위인전처럼 만들지 말라”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자우림을 '닮고 싶은 사람'으로 삼은 팬이. 영화를 감상한 자우림 자신들의 감상도 “우리 생각보다 대단한 밴드구나”였다고 하니 괜찮지 않을까?


제목 <자우림, 더 원더랜드>가 영화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음악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는 영화는 자우림의 25년을 찬찬히 담아냈다. 음향의 믹싱 또한 자우림이 맡아 관객에게 그들의 음악이 제대로 전해졌고, 인터뷰 또한 자극적으로 연출되지 않아 자우림을 안정적으로 비추었다. 그 덕분에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자우림을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해석은 ‘자주색의 우림’으로 바뀌었다. 자우림은, 자우림의 노래들은 왔다가 그치는 비를 넘어 하나의 우림과 같은 견고한 영역이다. 탄탄히 쌓아 올린 한 밴드의 영역을 엿보게 되어 영광이었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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