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실리카겔 붐은 온다 [음악]

글 입력 2023.05.0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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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을 들으면 도리어 마음이 평안해지는 사람 혹시 있나요? 있다면 조용히 손을 들어주세요, 여기 시끄럽게 떠들어 볼 제가 있습니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이면 일부러 록을 꺼내 듣는데, 듣다 보면 이상하게도 어지러웠던 마음이 쫙 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록을 이루는 악기와 보컬, 신시가 내 전두엽을 정신 차리라는 듯이 강타하는 건지는 몰라도 이들에 집중하다 보면 잔뜩 꼬여 있던 생각의 매듭도 간단히 풀리는 느낌을 받는다. 들을 만한 해외, 국내 록밴드들은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요즘엔 실리카겔의 음악을 자주 듣는다.


좋은 곡들이 참 많지만 다 소개해 줄 수도 없고, 다 찾아주면 재미가 없으니 해당 글에서는 타이틀곡의 연보로 보는 실리카겔 요약집을 작성해 보려 한다.

 

 

 

SILICA GEL


 

실리카겔이라는 단어는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음식에 들어 있는 그 방부제도 맞고 습기 제거제도 맞다. 밴드 '실리카겔'이라는 이름이 지어졌을 때의 일화가 있는데, 이름을 정하다 이야기가 자꾸 삼천포로 흐르니, "당장 안 정하면 우리 다 죽는 거야!!" 하고 맨날 들고 다니던 껌 통을 던졌다고 한다. 그들의 눈앞에 방부제(실리카겔)가 떨어졌고, 그것 그대로 밴드명이 발탁되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쉽사리 잿빛으로 흐려지는 우리 마음은 마치 비 오는 날 같이 눅눅해질 때가 있는데, 이름처럼 인체에 무해하게 인생의 눅눅함을 방지해 주는 그런 밴드가 실리카겔이 아닐까 한다.


명심할 것, 무해하더라도 괜한 욕심에 털어먹는 순간부터는 우리 몸에 해로워지기 십상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호기심에 우울함 털어버리려 한 번 틀었다가 이 곡들에, 실리카겔에 중독된 나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Realize


 

 

 

눈물을 참게 돼

기억을 잃게 돼

부끄러운 모습들만

 :

이렇게 이렇게

지금 널 잊어줄게

혼자 무섭지만 이런 것쯤 견뎌볼게

 

 

해당 곡은 실리카겔의 가장 최근 앨범 타이틀 곡이다.


[“글자 하나하나를 해체하고 해독할 필요도 없다. 그저 이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만나는 그곳에서 자유롭게 노닐어 보자. 마음대로 상상하기도, 때론 ‘머신보이’와 닮아 있는 나의 결핍을 발견하기도, 그리고 결국엔 따뜻한 해결책을 손에 쥐고 나오면 좋겠다. 자신하건대, 듣고 나면 전과 같지 않은 자신을 자각(realize)하게 될 것이다.”] - 실리카겔 Machine Boy EP 앨범 설명 중


난 역시 마찬가지로, 실리카겔의 노래는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예상컨대 아마 해석한대도 다 제각각일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그저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무대 밖의 팬들처럼 음악을 나의 상황에 빚대어 상상하고, 그것에 몸을 맡긴 채 춤추는 것이면 된다. 음악을 들으며 울고 싶으면 울고, 달리고 싶음 달리고, 점프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해당 타이틀곡 말고도 9분짜리의 Machine boy, 1분의 T라는 곡을 연달아 들어보길 추천한다. 획기적인 러닝타임을 가진 두 곡은 마치 하나의 곡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 느낌을 주며, 실리카겔의 도전적인 면모와 세계관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이다.

 

 

 

No Pain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우리만의 따뜻한 불, 영원한 꿈, 영혼과 삶

:

No Pain, No Fail. 음악 없는 세상

Nowhere, No Fear. 바다 같은 색깔

No Cap, No Cry. 이미 죽은 사람 아냐, 사실

 

 

해당 곡은 실리카겔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가장 대중성 있는 음악이다. 이전까지는 실리카겔을 몰랐던 주변인들도 이 노래는 다들 안다. 또한 동시에 가장 희망적인 곡이기도 하다.


실리카겔의 정신적 지주라고 볼 수 있는 김한주의 'NO PAIN' 인터뷰를 보면, 자신은 시간에 종속된 나약한 인간 중 한 명임을 자각했고 이를 곡을 통해 고백하고 싶었으며, 자신과 같이 저마다 복종하고 있는 무언가에 의해 살게 되는 나약한 인간들이 다 같이 '내가 만든 집'에서 노래하며 위로받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곡을 꾸렸음을 알 수 있다.


실리카겔은 굉장히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로 '실리카겔만의 어법'을 구성하며 곡과 앨범을 꾸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어쩌면 그런 분위기와 함께 흐르는 그들만의 철학과 마치 진흙 속의 꽃과 같은 희망적인 가사가 사람들에게 해방을 가져다주고 있을 수도 있겠다.


과연 음악이 없는 세상을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선율이 흐려진 인생 속에는 공사장의 소음이나 사람들의 대화 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밖에 남지 않을텐데 그런 삶을 살기는 싫다.

 

 

 

I'mmortal


 

 

 

저는 그 아무도 미워하고 싶지 않아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입 맞춰주소서

 

사랑해 주소서

축복해 주소서

꼭 안아주소서

 

 

이전부터 실리카겔의 노래를 들어왔고 존재를 자각해왔지만, 제대로 빠지게 된 건 해당 앨범의 이 곡 때문이었다. 제목 I'mmortal은 'I'm mortal (죽는 자)'과 'Immortal (불멸)'이라는 중의적 표현을 담고 있다.

 

화무십일홍, 근화일조몽. 모든 아름다운 것은 언젠가 쇠락하며, 인간의 부귀영화도 죽음으로써 사라진다. 모두가 죽음을 목도해 있다면, 모두를 사랑하고 축복하고 안아주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바라며 사는 게 맞지 않을까.

 

 

 

Desert Eagle


 

  

 

북극에서 떠오른 섬광

오 벼락치는 나라로

유아독존의 세계로

 

we love for the end desert

we march for the end desert

evolving to be safe you and I

dive into the time desert

 

 

Desert eagle을 치면 기타가 연관검색어로 나올 만큼, 일렉기타의 독주가 어마어마한 인상을 남긴다.

 

독주는 1분을 넘긴다. 록밴드와 다른 노래 장르를 구분하는 점은, 바로 기타나 드럼이 보컬을 넘어서는 하나의 역할에 상응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보컬은 물론 음악에서 가사가 곡의 세계관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악기들로도 충분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이 지금까지 밴드의 보컬에만 매력을 느껴왔다면, 해당 곡을 추천한다.

 

 

 

Kyo 181


 

 

 

Kyo야 무슨 생각이니

 

Kyo야 사랑을 해봤니

Kyo야 이혼은 해봤니

Kyo야 꿈을 꾸어봤니

Kyo야 날 만져보았니

 

 

해당 곡은 'Kyo'라는 아이를 가상 인물로 설정해 부르듯 노래하는 음악이다. 사실 'kyo 181'은 작사를 한 김한주의 키가 181cm라는 정보를 넣은 제목으로, 마치 다른 차원의 김한주, 혹은 그의 복제인간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며 김한주의 특징을 딴 위성의 이름 같기도 하다. 김한주는 "인생에서 공허함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 혼잣말하듯 외칠 대상으로 'Kyo'를 창조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곡과 뮤직비디오의 조화가 소설에서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뮤직비디오는 '멜트미러'라는 제작사가 만들었는데 자칫 과할 수 있는 분위기 세팅의 톤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세계관을 살려주며 디스토피아적 SF 소설 시리즈 같은 실리카겔의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더욱 증폭시켜 준다.

 

'Kyo야 무슨 생각이니' 가사 전까지는 kyo의 과거를 말하는 듯하다. 현재의 김한주, 혹은 Ky가 술래잡기했던 과거의 자신, 비밀을 지키지 못했던 자신, 지독한 사랑을 열망했던 자신에게 그렇게 했냐고 물어보는 느낌이 든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확실하지만, 그 이후부터 펼쳐지는 현재와 미래는 불확실하기에 미리 물어보는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팀워크(Teamwork) 보다는 팀플레이(Teamplay)


 

실리카겔은 김건재(드럼), 김한주(키보드, 보컬), 김춘추(기타, 보컬), 최웅희(베이스)로 이루어져 있는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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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김춘추는 놀이도감이라는 활동명으로 솔로 활동을 하고 있다.

 

 

 

 

아까 미친 듯이 기타 쳤던 그분이 맞다. 실리카겔 정신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김춘추는, 뮤직비디오 내에서 뛰는 폼을 보면 분명 아까 기타 친 그 분이 맞는데, 혼자 있을 땐 마치 곡 제목인 무지개를 조종할 마법사처럼 신비한 매력을 풍긴다. 놀이도감의 노래들은 실리카겔보다 비교적 순하고 맹맹한 맛이지만 묘하게 감성을 자극한다.


또한 놀이도감 말고도 실리카겔 정신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다른 멤버 중, 김한주는 실리카겔의 세계관과 초반 컨셉을 담당하면서 2017년 새소년 EP 앨범 [여름깃]의 프로듀서로 활동 외 무수히 많은 곡을 작업해 오고 있으며, 김건재는 또한 APNEA라는 팀에서  드럼을 담당하고 있고, 최웅희도 활발한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이렇듯 이들은 팀워크보다는 팀플레이를 지향하며, 실리카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실리카겔은 또한 I'mmortal 외 소금(Sogumm)이라는 아티스트와 협업한 노래를 내놓기도 했다.

 

 

 

 

아티스트 Sogumm과 함께한 '사랑해'라는 곡이다. 소금의 여리고 가녀린 목소리, 감성이 실리카겔과 꽤나 잘 어우러진다. ‘사랑해’라는 곡은 처음 들었을 때 좀 충격적이었는데, 남들 앞에서 감정 표현을 하거나 의견을 피력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나는, 불특정 다수가 들을 수 있는 노래에 자신의 울음소리를 리코딩했다는 자체를 굉장한 도전이라고 여겼고, 눈살 찌푸려지는 신음이 아닌 위로이자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실리카겔 붐은 온다. 이미 왔다.


 

실리카겔은 이번에 신보를 내놓으며 단독공연 [Machine Boy]를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여러 록 페스티벌 등, 활발한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밴드 일렉기타, 드럼 소리는 누군가 소음이라고 느낄 만큼 쨍하고 진하다. 하지만 나만 아는 인디밴드 세계관의 매력, 섬세하지만 강렬한 악기 연주, 록 음악에 몸을 맡겨버리는 경험을 하다 보면 조금 더 활기찬 인생을 경험해 볼 수 있다.


해당 밴드는 독보적인 세계관과 자신만의 음악으로 평론가, 대중에게 점점 알려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겼다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남들보다 빨리 들으러 가보자.

 

왜냐하면 실리카겔 붐은 오니까.

 

 

 

아트인사이트 김하영 에디터 태그.jpg

 

 

[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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