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달과 인사하고 별을 마주한 작가, 김환기 [미술/전시]

전시 <환기 미술관 – 뮤지엄 가이드>를 향유하며
글 입력 2023.04.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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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미술관은 김환기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며 「2023 박물관‧미술관 주간 - 함께 만드는 뮤지엄」을 통해 세대-계층-장애에 대한 사회적 갈등 해소와 인식개선의 계기, 관람객의 문화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민참여형 배리어프리 전시 《뮤지엄 가이드》를 진행한다.

 

소리와 향을 비롯한 다양한 감각과 매체, 언어로 안내할 이번 전시는 김환기 예술세계에 입장한 모든 이들과 동행하여 소외되거나 길을 잃은 이가 없도록 할 것이다.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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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빈낙도, 유유자적 이런 말들과 잘 어울리기란 현대인에게 과제 같은 것이다. 앞을 보고 달려가기도 바쁜데 어찌 뒤를 돌아보랴. 더불어 자연 속에 가고 싶어도 갈 돈과 시간이 없는 것이 현대인이다. 그러나 그런 바쁜 현대인들을 뒤돌아보게 할 작품들이 바로 이곳에 있다. 그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화백 김환기. 한국의 근대 추상 미술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그가 캔버스 위에 부리는 마법에 나도 모르게 자연과 물아일체하는 꿈을 꾸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더불어 아름다움을 담은 그 작품 자체도 아름다워 눈을 떼기가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그의 작품을 이야기하며 물아일체의 방법에 대해 같이 탐구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크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본관 중앙 홀에 정중앙에 위치한 작품인데, 이 작품을 보고 홀린 듯이 앞으로 다가가는 관객들도 여럿 보았다.

 

내가 이 작품에서 몰아일체를 느낀 순간은 바로 자원봉사자로 일을 하면서부터이다. 나는 <뮤지엄 가이드> 동행 서포터즈로 몸이 불편하거나 언어가 다른 이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전시장 지킴이로서의 역할도 같이 하는데, 우연히 중앙홀에서 근무하다가 그 그림을 15분 넘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정도면 뚫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심하게, 그리고 깊게 쳐다보았다. 나의 3배 정도 되는 크기의 캔버스에 푸른색 계열의 점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점들은 한두 개가 아니고, 정말 하루 동안 셀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다. 김환기 화백의 이 화풍을 바로 “전면점화”라고 한다. 쇠라의 ‘점묘화’와는 명확히 다르다. 쇠라의 점묘화는 그림의 전면을 점으로 칠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점으로 채색한다. 그러나 김환기의 작품은 그 점들을 일정하게 찍어가며 움직임을 표현하기도 웅장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작품의 제목과 어떤 부분이 일맥상통하는 것일까. 김환기는 ‘고국산천에 대한 그리움과 일생을 통해 맺어졌던 인연’ 등 예술가로서 살아온 삶의 시간을 ‘점’으로 환원하여 서정적 추상 세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미술관에서는 알려주고 있다. 그는 고국을 떠나 뉴욕과 파리에서 오랫동안 작품 생활을 했다. 그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마치 흐르는 눈물처럼 파란색 점으로 표현된 것이다. 나는 그 작품이 유독 슬프게 느껴졌는데 김환기의 그리움이 담겨서일까.

 

하지만 나는 그 그리움이 단순히 고국산천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그가 살았던 곳에서 같이 살아냈던 그 사람들의 따스운 사랑이 그리웠던 것 아닐까. 다른 점면점화는 방향이 존재해 움직임이 살아있는데, 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고 잔잔하다. 이 또한 김환기가 관객들에게 자신의 슬픔과 외로움을 담담히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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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참 한국적인 것을 사랑했다. 항아리와 별 그리고 달을 그리기를 좋아했다. 위 작품처럼 그의 그림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것이 바로 저 세 가지이다. 왜 그렇게 세 가지를 좋아했던 것일까. 항아리와 별 그리고 달은 구전동화 그리고 예전부터 한국의 정서를 포근히 담고 있는 오브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그린 그림에는 다정함이 묻어있다.

 

작가가 사랑하는 것을 그릴 때, 작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 그리고 걸작이 탄생하는 순간이 아닐까. 그 걸작을 여기서 바로 마주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단순히 사물을 그려놓은 것이 아닌 우리의 것 그대로 아름답게 표현한 그의 화풍은 커다란 점면점화보다 그가 더 큰 사람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 것일까. 근데 우리는 왜 아직도 급하게 누군가를 찾으며 또는 어떤 것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김환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위와 같았다. 이 전시회를 보며 느꼈던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마주치고 만났던 것을 찾으려고 그토록 헤매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미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 알고 있다. 그 행복했던 것을 되찾으려고 그렇게 자연을 훔치고, 사람의 마음을 훔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자연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았던 김환기처럼 우리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마음속으로만 감상하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가만히 멈춤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다시 깨달아야만 한다. 자연은 꼭 꺾어서 감상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김환기의 이번 <뮤지엄 가이드>는 다양한 소리와 향으로 이루어진다. 음악감독 조용욱이 제작한 김환기의 일생을 담은 배경 음악부터 시민들이 각각 만든 향까지 어디 하나 사람의 섬세한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이곳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되찾길 바란다. 인간이 만들어냈다는 것에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건드린 자연 자체가 아름답기에 아름다움이 퍼진다는 것을 말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자연도 발칵 화내는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존중받지 못하면 울컥하는 우리의 모습처럼, 자연도 그럴 수 있다는 걸 깨닫는 밤이었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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