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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빨간 모자를 눌러쓴 난 항상 웃음 간직한 삐에로.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김완선의 노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의 가사는 마치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소설 『인간 실격』에 등장하는 요조를 주인공으로 하는 듯하다.

 

요조는 인간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광대라는 가면 속에 자기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드는 좋은 사람이라는 껍데기 속에는 꾸며낸 모습에 가려진 자신의 추악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진짜 요조가 자리하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 속의 화자가 읽고 있는 요조의 고백적인 수기 세 편을 통해 유년기를 지나 이십 대 후반의 청년이 되기까지 고통스러운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 요조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광대를 연기하다


 

인간에 대한 요조의 두려움은 일반적인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 자신이 언제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당하며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온다. 요조는 삶의 모든 국면을 낯설게 느낀다. 뭔가를 갖고 싶다는 느낌을 알지 못하는 요조에게 원하는 선물이 뭐냐는 아버지의 단순한 질문은 공포 그 자체이고, 인간이 생물로서 갖게 되는 근본적인 욕구인 배고픔을 느껴본 적 없는 요조에게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 마치 지옥 같다.

 

인간의 삶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요조는 자신은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세상에 뿌리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연기하기 시작한다. 이는 사람들에게 “소위 ‘삶’ 바깥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숨기기 위해서인데, 이때 요조는 단순히 평범한 인간인 척 행동하는 수준을 넘어서 우스꽝스러운 광대를 자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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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가 자신이 연기할 인물로 광대를 선택한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을 쉽게 의심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면서 동시에 광대의 본질적인 정체성에 대한 요조의 선망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광대는 사실 ‘극단적으로 이상화된 인간’이다.

 

광대는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인간의 본성을 모두 내려놓고 인간의 좋은 면만을 부각한 비현실적인 존재이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기분이 상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상처를 주는 인간과 달리 광대는 짜증, 경멸, 화,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지도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도 않는다. 단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며 그들을 웃게 할 뿐이다.

 

요조가 그런 기형적인 광대의 삶을 선망하는 이유는 인간이 지닌 양면성,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지닌 악한 본성에 대한 요조의 반감 때문이다. 요조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항상 선한 본성과 함께 악한 본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노’라는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평소에는 그 본성을 숨기고 있다가 (중략) 느닷없이 분노를 터뜨려 인간의 무시무시한 정체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저는 늘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벌벌 떨게 되고, 이 본성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자격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 자신한테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분노라는 인간의 본성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요조는 그러한 추악한 감정이 본인의 마음속에도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게 요조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인 희로애락 중에서 ‘희’와 ‘낙’만을 지닌 광대의 모습을 연기하며 그것이 자기 본연의 모습이라고 자기 최면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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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광대를 연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을수록 그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죄책감은 더욱 커져만 가고, 그로 인해 요조는 자기혐오에 빠져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불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본성을 초월한 ‘완전한 선’이라는 이상을 꿈꿨던 요조는 타고난 본성을 조절해가며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쁘게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서 어리석게 혼자만 심연으로 꺼져갔던 것이다.

 

 

 

유일한 희망을 상실하다


 

그런 요조의 인생에 어느 날 등장한 요시코는 그가 평생 꿈꿔왔던 온전한 순수함을 지닌 인물이었다. 의뭉스러운 인간들과 그들을 속이며 살아가는 자신의 깊은 음침함을 혐오했던 요조는 요시코의 "때 묻지 않은 신뢰감"을 동경했다.

 

하지만 그 밑도 끝도 없이 순수한 신뢰감은 요시코와 요조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누군가를 의심할 줄을 몰랐던 요시코는 외간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날 밤 이후 안절부절못하며 요조의 눈치를 살피는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티끌 하나 없이 맑고 투명해서 너무도 사랑했던 요시코에게서 경멸스러운 자기 자신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발견한 요조는 결국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게 했던 "유일한 희망"을 상실하고 만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요조가 별다른 저항 없이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모습은 그가 이 사건을 통해 본디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한 순수함을 가질 수 없는 나약하고 세속적인 존재임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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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제야 비로소 최소한의 인간의 자격을 얻게 된 요조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또다시 ‘인간 실격자’가 된다. 이전까지는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인간들로부터 분리했다면, 이제는 그 반대로 인간들에 의해 미치광이, 폐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순수는 없다


 

인간의 몸을 가졌으나 단 하루도 온전히 인간이었던 적이 없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닿을 수 없는 이상을 갈망했던 요조 자신일까, 아니면 인간이 타고나는 일말의 순수함마저 더럽히고 마는 이 세상일까.

 

자신이 인간임을 알면서도 인간 너머의 완벽한 존재가 되기를 끊임없이 갈구했던 요조의 방황의 시간은 우리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외면하지 않고 솔직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자격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요조의 처절한 몸짓은 그와 동시에 순수함을 꿈꾸는 인간이 더는 설 자리가 없는 비극적인 시대의 초상이기도 하다.

 

소설 『인간 실격』은 이렇게 너무 순수했기에 타락할 수밖에 없었던 요조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존재에 대해 성찰하며 우리 자신의 삶에 진실한 걸음을 내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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