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 좋은 죽음에 관하여

글 입력 2023.05.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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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유도라 할머니! 아직 살아 있어요?" 가족들이 모두 먼저 떠난 뒤 홀로 사는 85세 유도라 허니셋. 인생을 바꿀 엄청난 계시가 그녀를 찾아온다. 병원에서 또래 할머니한테 안락사 안내물을 전해 받은 것. 좋아, 바로 이거다! 그런데 유도라의 기상천외한 이웃 꼬마 로즈, 장난스러운 또래 할아버지 스탠리까지 그녀의 가슴 두근거리는 희망을 가로막는다. 내 삶을 어떻게 살지 선택해왔듯이 어떻게 죽을지도 선택하겠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나는 멀쩡하고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내 맘대로 죽게 해 줘요!] -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애니 라이언스, 줄거리로부터.

 

사실 '좋은 죽음'에 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우선은 내가 경험한 죽음이 많지 않았고, 나의 죽음을 준비해 본 적도, 타인의 죽음을 준비해 본 적도 없었다. 또 나는 어떻게 죽는 게 좋을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내릴 만큼의 경험치도 부족하며 그럴듯한 판단을 내릴 만한 현명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해 보게 해 준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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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 유도라 허니셋


 

그녀는 멋지게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산책하며 여유를 즐기고, 85세의 몸을 이끌고 수영도 열심히 다니는 건강한 할머니다. 생활하다 맞닥뜨리게 되는 난처하고 곤란한 상황에서는 매우 단단한 언어로, 그렇지만 또 여유로운 태도로 대처한다.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유도라의 내면은 정말 굳세구나. 지금 이러한 유도라가 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겪었을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꼿꼿하게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도라를 한껏 부러워하면서 책장을 넘겼던 것 같다.


유도라의 몸은 갈수록 노쇄해짐에 따라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벌써 85세라니 그럴 만도 했다. 숱하게 병원을 드나들던 유도라도 어느 순간 타인의 죽음을 목도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우연히 병원에서 받은 안락사 단체의 안내물을 본 뒤 생각은 더욱 깊어진다. 오래 고통받으며 병원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삶은 그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유도라도 그랬다.

 

실제로 나도 외할머니가 연명치료 거부를 신청하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적잖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할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누구도 병상에서 쓸쓸히 그리고 힘겹게 죽어 가는 외로운 죽음을 원하지는 않을 테니까. 유도라 역시 병원에서 받은 안락사 안내물을 기점으로 안락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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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여든다섯이에요. 나는 늙었고 피곤하고 외로워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보고 싶은 사람도 없어요. 우울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단지 삶이 끝났을 뿐이에요. 요양원에서 시끄러운 텔레비전 앞에 앉아 기저귀에 오줌이나 지리면서 죽고 싶지는 않다고요. 나는 품위를 갖추고 조용하게 세상을 뜨고 싶어요. 그래서 날 도와줄 거요, 말 거요?"] - 40쪽.

 

["죽음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동안만이라도, 삶을 선택해주시겠어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 167쪽.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연명치료 중단 명목의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는 2018년도부터 시행되어 왔다. 스위스의 안락사처럼 조력자살과 같은 의미의 안락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반면에 다른 나라들에서는 소극적 안락사, 조력자살, 적극적 안락사까지 여러 형태의 안락사가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는 네덜란드에서는 별다른 고통 입증 없이 조력자살이 가능한 법안을 고려 중이라는 글을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팽팽하게 대립되어 다루어지는 윤리적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좋으니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들에게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길 바라고 있기는 하다.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주선하는 스위스 비영리기관의 가입 조건에는 '어떠한 도움을 더 줄 수 없는 말기 환자'라는 기준이 명확히 세워져 있다. 다만 유도라에게는 ㅡ물론 소설이라 가능한 전제이겠지만ㅡ 그렇다고 할 만한 큰 정신적·육체적 병이 없었다. 심근경색과 관절염 정도를 앓고 있었던 것 같으나 이마저도 생명을 위협할 만큼의 위중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라는 제목과 걸맞게 유도라는 정말 잘 지내고 있었다. 여유가 된다면 수영도 가고, 쇼핑도 가고, 파티도 가고, 가끔씩 근사한 식사도 즐긴다.

 

책을 읽으면서 세 가지 궁금증이 생겼는데, 과연 그런 그녀의 안락사 신청이 허가될지 아닐지가 첫 번째로 궁금했던 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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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가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


 

죽음을 준비하고 있던 유도라가 로즈와 스탠리와 인연을 맺으며 새로운 우정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꽤 흥미로웠다. 소설은 유도라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지금 현재, 85세 노인이 되어서야 결성된 이 희한한 친구 관계는 그녀의 과거를 되짚어 보았을 때, 유도라의 내막을 하나둘씩 알게 되었을 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로즈는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웠고, 스탠리는 애처롭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꽤 따뜻한 존재였다.

 

이들의 오묘한 우정에 매료되어 그런지, 과연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가 책을 읽으며 두 번째로 궁금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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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유도라의 처절한 과거를 볼 때마다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왜 이렇게까지 덤덤하고 무던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지 더욱 잘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뒤틀린 가족 관계에서 유도라는 어떻게 모든 걸 잘 해결하게 될지, 그 결말은 무엇인지, 그렇게까지 끔찍하게 여기던 동생과는 어떻게 되었길래 지금은 가족도 없이 혼자 지내고 있는지 등 유도라가 가지고 있는 상처에 대해 더욱 알고 싶었다. 이것이 책을 읽으며 내가 세 번째로 궁금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모든 연결고리들을 맞춰가고, 앞에 있었던 복선들과 유도라의 모든 선택과 결정들을 연결 짓는 과정이 매우 재미있었다. 책이 500장 가량이 넘어갈 만큼 꽤 두꺼운 분량이라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으나, 생각보다 금방 읽힐 만큼 재미있고 쉬운, 그리고 따뜻하고 포근한 책이었다.

 

["여러분이 해야 하는 일은, 말하는 거예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그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거죠. 유서에 적으셔도 되고, 가족들에게 쪽지를 남기셔도 돼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뭘 원하는지 말을 하는 겁니다." 유도라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죽음은 탄생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탄생은 기뻐하지만 죽음은 두려워하죠.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이런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많이 만나봤고 그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죽음의 순간이 사랑, 웃음, 눈물, 희망, 기쁨으로 가득 찬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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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맺으며


 

원래의 제목은 'Eudora Honeysett is Quite Well'이던데, quite well이라면, '잘 지내고 있답니다'보다는 '꽤 잘 지내고 있답니다'가 더 맞은 번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마 번역의 과정에 있어 '꽤'라는 군더더기가 거슬리기도 했을 테고, 또 유도라가 꽤가 아니라 정말 잘 지내는 바람에 있어 그렇게 제목을 결정했을 것 같기도 했다. 있습니다가 아니라 있답니다로 번역된 것도 그런 것이겠지?

 

나에게 있어 죽음을 고민한다는 것은 곧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더욱 잘 살아갈 것인가와 같은 의미였다. 유도라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죽음을 인식하고, 죽음을 준비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삶을 더욱 잘 설계해 나갈 수 있었다.

 

유도라가 죽기 위해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역설적으로 유도라에게 생기를 더불어 넣어주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도서, 아마존 킨들 베스트셀러, USA 투데이 베스트셀러, RNA "올해 최고의 현대 로맨틱 소설" 최종후보작이었던 만큼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책 속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끝맺고 싶다.

 

["그녀는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그녀를 사랑한다. 모든 게 다 괜찮다."] - 503쪽.

 

 

[신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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