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말 저질러버릴까? [문학]

다시 혼자가 되었고, 살길이 막막해졌다.
글 입력 2023.04.2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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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늙으면 같이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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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각이라고는 없는 나의 오랜 친구들과 만나서 놀다 보면 으레 나오는 말이다. 애인을 만들어 결혼하는 것 보다 우리끼리 노는 게 즐겁다며 빌라같이 층별로 집을 구해서 같이 지내는게 재밌지 않을까. 다들 좋은 생각이라며 꺄르륵 웃곤 했다.

 

결혼하면 각자 가정이 생겨서 만나기 쉽지 않은데 독신으로 살면 기댈 가족도 적을 텐데 우리끼리 도우면서 늙어 가자고. 반찬도 만들어서 나눠 먹거나 외식하고 같이 산책하거나 취미를 공유하고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주자고. 여기에 그걸 이룬 할머니들이 있다. '도모'와 '기리코'의 우정을 들여다보자.


독신 할머니 '기리코'에게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친한 '도모'라는 친구가 있다. '도모'는 결혼을 했지만, 썩 행복하지 않았다. 입도 험하고 행동도 거칠었던 남편을 견디다 결국 남편을 먼저 보낸 도모가 기리코에게 제안을 한다. 같이 살자고. 오랜 독신 생활로 고독했던 기리코는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이며 행복한 시간이 시작된다.

 

아들들에게로 가지 않은 도모는 기리코와 함께 집을 빌린다. 연금으로 집세를 내고 서로 소소하게 일을 하면서 생활한다. 단 걸 좋아하는 도모를 위해 한 번씩 호텔 디저트 뷔페를 가서 디저트를 즐기고 함께 취미생활을 위해 모임을 나가기도 하고 집안일을 나눠서 하고 그냥 가게에서 간단한 음식을 사 와 대충 때우는 등 기리코는 도모와의 생활이 모처럼 즐거웠다.

 

 

"같이 살자"라는 말을 들은 그날부터 인생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 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 中

 

 

 

도모가 죽었다.


  

행복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도모의 건강이 악화 되었고 두 사람의 행복한 일상은 도모의 죽음으로 빠르게 막을 내렸다.

 

도모의 죽음은 기리코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두 사람이 살던 집의 집세를 감당할 수 없어 집을 잃어야 했고, 도모의 물건들도 아들들이 다 가져가 버려서 그를 기억할 유품도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은 생을 같이 살아갈 동반자를 잃어버렸다. 그의 마지막을 함께 했지만, 가족으로서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었기에 기리코는 말라갔다.

 

반짝이는 생활이 사라졌고 새 집을 찾을 때까지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던 기리코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도모의 조문객이라며 도모와 기리코의 찾아온 사람을 집에 들인 기리코는 다음 날 아침 가지고 있던 현금이 사라진 걸 알게 된다.

 

모임에서 받은 부의금도, 집에 있던 저금통도 지갑의 현금도 모두 사라졌다. 도둑과 대면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과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에 분했고 슬펐다. 신고받은 경찰은 그런 기리코를 다독였다.

 

기리코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들은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어 경 중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며 기리코를 안심시켜 돌려보냈다. 그 말을 들은 기리코는 생각했다. 교도소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교도소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주니까요.


- 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 中

 


 

딸기찹쌀떡


  

집주인의 도움으로 작은 공동주택으로 이사한 기리코는 어찌어찌 생활하지만 고달프다. 특이한 이웃, 아슬아슬한 통장잔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 그런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던 기리코의 앞에 딸기찹쌀떡이 보인다. 도모와 함께한 이후로 단 음식을 먹지 않았던 기리코에게 그 찹쌀떡이 아른거린다.

 

귓가에 경찰이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교도소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주니까요.' 결심이 선 기리코는 떨리는 손으로 떡을 집어 가방에 넣어버린다. 장바구니가 아닌 가방에 말이다. 그대로 계산하고 나가려던 기리코는 아쉽게도(?) 직원에게 범행을 걸리고 만다.

 

초행이었고 반성하는 기리코의 모습을 본 직원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자기 선에서 이번 일을 정리하고 보내준다. 결국 딸기찹쌀떡은 계산했지만 석연치 않다. 기리코는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죄책감과 실패했다는 절망감, 약간의 안도감에 빠진다. 이대로 경찰에  보내져 교도소에 갔다면.

 

이후 기리코는 일상을 보내는 한편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궁리를 한다.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오래 교도소에 머물 수 있는 범죄를 찾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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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다 히카 작가와는 낮술 시리즈(어느새 3권까지 발매되었더라.) 이후로 오랜만에 만났다. 일상과 비일상을 적절히 섞은 소재와 신선한 전개에 책을 집을 수밖에 없었다. 하라다 히카의 주인공들은 어디선가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흔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범상치 않은 사연이 있는 인물 설정이 항상 매력적이다.

 

평범한 이혼녀 같지만 들여다보면 평범하지는 않은 사연과 직업을 가진 쇼코와 시간제 일을 하는 할머니지만 속으로는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행을 원하는 기 리코가 그렇다. 어딘가 불안정하고 어려운 현실에 부딪혔지만 선하고 단단한 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 책의 주인공인 기리코는 비록 혼자 견디기 힘든 세상 속에서 자신을 맡길 곳을 교도소로 정해 범죄를 저지르려 하지만 주변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민폐가 끼치지 않는 선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은 범죄자가 되려는 기리코와 목표와 정반대여서 역설적이기 까지하다.

 

그런 기리코의 선함을 알아본 것일까? 기리코가 휘청거릴 때마다 주변의 인물들이 그의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말동무가 되어주거나 일거리를 찾아주거나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 주는 등 도모가 떠나고 흔들리는 그녀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바르게 사는 사람에겐 좋은 사람들이 붙는다는 말을 보는 것 같았다.


뉴스에서도 종종 보이는 노인 범죄를 주제로 하고 있기에 씁쓸했다. 살아남기 힘들어 교도소를 택하는 노인들이 책 속이 아니라도 현실에서도 많아지고 있다. 노인 범죄의 피해자가 비슷한 나이대의 노인인 것과 노인들을 상대로 가르치는 사기 수업, 노인을 이용한 사채업 알선 등을 보며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는 듯해 갑갑해졌다. 주변에서 그런 분들을 만난다면 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보탬이 되고 싶다. 그들이 오랜 시간 지켜온 선함을 지킬 수 있게 남은 삶이 조금이라도 따뜻할 수 있게 말이다.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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