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네가 있기에 끝이 두렵지 않아 [영화]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4.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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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주인공 스즈메가 소타와 함께 일상에서 벗어나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을 떠나며 시작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옴으로써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 주인공이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서사를 지진과 그로 인한 희생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 않게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고통을 마주하기


 

스즈메는 어릴 적 지진으로 인해 어머니를 잃었다. 당시 어린 스즈메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혼자 폐허를 돌아다니며 엄마를 찾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스토리의 마지막 문단속 장면에서 문 너머 '저세상'에서 본 여인이 어머니가 아닌 스즈메 자신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어린 스즈메가 죽음을 인지하였음에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임이 드러난다.

 

현재의 스즈메는 어린 스즈메와 달랐다. 소녀는 어린아이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똑똑히 알리면서도 앞으로 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이는 소타와 함께 여정을 겪어온 스즈메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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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속'하는 과정에서도 문을 닫기 위한 의식 중 필수적인 요소는 폐허가 되기 전 그 장소에서 볼 수 있던 풍경들, 특히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행위였다. 공간에 얽힌 사람들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폐허가 되어버린 아픔과 고통을 떠나보내는 것, 그것이 '문단속'이며 현실을 잘 살아가기 위해 고통을 승화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으로서 살아가는 삶



이렇게 스즈메가 고통을 대면하고 떠나보내는 여정으로 내딛게 한 원동력은 사랑이었다. 처음에 스즈메는 소타에 대한 관심과 신비한 사건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행을 시작하였으나, 함께 일본의 이곳저곳을 다니는 동안 마음은 점차 깊어지고 종반엔 저세상에 묶여버린 소타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죽음을 무릅쓰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또한, 소타는 다이진에 의해 스즈메와 그녀 어머니의 추억이 담긴 유아용 의자에 영혼이 묶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는 단순히 재난을 막는 토지시라는 역할 이상으로 스즈메라는 개인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나타난다.

 

'무나카타 소타(宗像草太)'라는 이름의 뜻이 문 너머 아름다운 하늘 아래 푸른 언덕이 펼쳐졌던 저세상의 모습을 가리키는 듯한 느낌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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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은 스즈메라는 한 소녀가 죽음과 사랑의 존재에 대해 알아감으로써 한 층 성장하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죽음과 사랑은 인간에게 있어 근원적 질문 중 하나인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이다. 사람은 언젠가, 결국엔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허무한 끝이 기다리고 있는 삶에 무엇이 의미가 있는가 되돌아볼 때, 우리는 사랑을 가리킨다. 부모와 자식, 연인, 친구 간의 사랑 더 나아가 인류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삶이 유한함에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만들어 주며 삶을 지속할 힘이 되어준다.

 

때론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로부터 앗아가기도 하며, 그로 인해 크나큰 상실감과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슬픔에 발을 묶이지 않고 우리의 삶을 계속 이어 나아가야 한다.

 

죽음이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인지하고, 떠난 이와의 추억을 마음 한편에 간직한 채 보이지 않는 좋은 세상으로 떠났길 바라며 보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을 익히는 과정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며 스즈메가 겪은 시간은 그녀가 한 뼘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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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미미즈와 다이진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신에 대한 관점이 녹아있다. 지진이라는 재난을 일으키는 근원인 미미즈와, 자신의 자유를 위해 소타를 요석으로 사용하려는 다이진으로부터 어떠한 악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소타는 미미즈가 그저 자유롭게 흔드는 것뿐이라고 말하며, 스즈메에게 다이진에 대해 설명할 때도 신의 변덕스러움을 언급하였다.

 

지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봄에도 영화 내에서 제거해야 하는 ‘악당’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문을 막음으로써 그들의 힘으로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었다.

 

신과 자연, 세계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선, 악이 따로 구분되지 않았다. 차라리 악한 의도를 품고 인간을 해치려 했다면, 제거할 명분이 생기고 없애면 그만이었을 테지만 특정한 방향성이 없는 움직임과 그 거대한 규모는 인간에게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계속해서 문을 막는 노력을 보이는 것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삶의 의지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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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의 특징으로서 지진과 다양한 신화와 설화를 혼용하여 주인공의 성장 과정과 재난으로 희생된 자들과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들어낸 작품이다. 내용적 측면 외에도, 영화의 OST나 연출 역시 줄거리에 몰입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자국의 문화 원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엮어내면서 감동을 끌어내는 감독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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