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거울 속 끝장토론 - 소녀,N

소녀,N <Boy nor Girl>을 들으며...
글 입력 2023.04.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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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소개


 

소년과 소녀 그 사이 어딘가

  

Narr.i(나리)의 첫 EP [소녀,N]은 ‘거울’을 모티브로 언어적·음악적으로 정교하게 기획된 앨범이다.

 

앨범명 [소녀,N]은 눈으로만 보면 ‘소녀, Narr.i’를 의미하는 듯하지만, 실제로 발음해보면 ‘소년’이다. 이에 따라 본 앨범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윽박지르듯 거칠게 발화하는 ‘소년’의 목소리와 부드럽고 가녀리게 노래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각각의 목소리는 솔직함으로 인해 상처를 감수해야 했던 과거의 자아와 솔직함을 희생하고 현실과 타협하고자 하는 현재의 자아를 상징한다.

 

앨범명에서 시작된 언어유희는 앨범 구성과 각 트랙별 가사 속에도 스며들어 감상의 재미를 더해 준다. 전체 5개 트랙은 ‘Mirror(거울)’라는 제목을 가진 한 그림책의 국제표준도서번호(ISBN)을 차용한 3번 트랙을 기점으로 발음상 대칭을 이룬다. 또한 각 트랙에는 중의적으로 해석될 법한 미묘한 띄어쓰기와 단락 나누기, “거울속의 나(너)”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등의 문장을 변용한 가사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앨범의 완성도를 한층 더 높인다.

 

[소녀,N]이 그려낸 거울 속에는 과거의 기억에 묻혀 있던 소년의 울부짖음(아이)으로 시작해 서로를 극한으로 떠미는 소년과 소녀 사이의 갈등(밀어)을 거쳐, 거울 속 대화(ISBN 9781406309140)를 통해 서로 사랑에 빠지고(蜜語) 결국 하나의 자아로 융합되기까지(I)의 과정이 응축된 ‘이야기’가 순서대로 담겨 있다. 타인이 단 1%도 섞이지 않은, Narr.i만의 순도 100% 자화상인 셈이다.

 

*


거울 속 나의 모습은 진짜 나의 모습일까?

 

가끔씩 나는 의심이 든다. 만약 진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거울은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동의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나도 날 잘 모르기 때문이다.

 

<소녀, N>에서는 소녀와 소년 사이를 거울로 구분하며 그 둘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다르기에 어떻게 하나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보통 거울을 소재로 한 음악에서는 본인에 대한 자기애, 혹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매개체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 앨범과 가수 나리는 경계와 융합, 반대되는 두 가지의 개념을 음악을 통해 현대인들이 이해하길 원했다.

 

해당 앨범은 총 5곡으로 나누어진다. 아이, 밀어, ISBN 9781406309140 (skit), 蜜語, I (Feat. 김호랑). 이 5곡 중 거울 속 나의 진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곡 2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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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아이’이다. 이 앨범의 타이틀인 곡 ‘아이’에서 나리는아무도 찾지 않는 기억 속, 동굴 깊숙이 웅크린 소년.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느라 솔직해지지 못하는 소녀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타인의 시선에 따라 솔직해지지 못했던 경험은 누구나 소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도 매번 남들의 시선에 따라 우울해지다가, 혹은 갑자기 기뻐지는 마법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외치는 말이 있다.

 

“네가 내 인생을 살아봤니?”

 

나의 인생에 필요 없는 시선과 불필요한 충고들을 단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곡을 듣다 보면 나에게 그렇게 조언하는 대상이 상대방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에게 스스로 참견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 나 스스로에게 “너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지금 그게 최선이야?”라고 강요하고 재촉하는 말을 거울 속 건너편 소녀에게 질문했다. 거울 속 너머 나의 모습은 그런 모습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일그러져 갔고 그런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도 저절로 우울해져 갔다.

 

가사를 한 번 들여다보자.

 

 

난 또 뱉어대 그래

Yes I am happy

좋은 말 다 갖다 붙여놔도

다 계산 회피

 

 

아무리 좋은 말로 스스로를 포장한다고 해도 스스로를 거울 속 너머 상처 주는 건 나 자신이기에 우리는 그 사실을 회피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깊게 고민하게 되는 곡이자 가사였다. 그러나 만약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나 스스로까지도 우울의 구렁텅이에 넣을 필요가 있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대로 솔직하게 마주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어떠한 방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떻게 아는가. 행복하다고 외치다 보면 정말 나에게 행복한 일이 생길지 아닐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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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곡은 바로 ISBN 9781406309140 (skit)이다. 벌써 이름부터 독특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이 곡은 가사에 멜로디가 없다. 즉 나리의 내레이션으로 이루어지는 곡이다. 이 곡에서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서로를 직시한 소년과 소녀. 다른 그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았던 생각들에 대하여 서로가 공명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처음 이 곡을 감상할 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훨씬 더 많이 있었다. 그러나 가사를 들여다보면 그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여러분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가사의 한 구절, 즉 나리의 한 마디를 들어보도록 하자.

 

 
맞지. 물귀신 되는 것보단 그냥 잠겨버리는 게 나을걸?
 

 

사람들이 우울에 대해 생각하고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사람이 독백을 하는 것 같지만 형식은 대화문이다. 이것은 분명히 거울 속 나와 밖의 나 사이의 대화인 것이다.

 

남에게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나를 지키는 것, 이것이 맞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을 다 공감할 수 없지만, 나는 공감되는 부분이 컸다. 우울과 어두움은 전염병과도 같아서 남에게 옮길 바에는 그냥 나 혼자 껴안고 가라앉는 것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는 힘들게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아간다면 내가 삶을 온전히 솔직하게 살아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울을 잠시 미룰 뿐이지 해결할 수 없다. 우울을 잠기게 한다고 해서 우울은 없어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자 한강에 쓰레기를 버렸다고 해서 한강이 더러워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여러 명이라고 생각 해보면 그 혼탁함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렇기에 난 거울 속 나의 모습에 흔들리지도 동요되지도 않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거울 속 나의 모습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맞서서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너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러니 사고를 강요하지 말라고 말이다. 더불어서 변증법적으로 거울 속 나와의 대화로 내가 더 성장한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존재한다. 여러분도 이러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나리의 곡들을 마음껏 향유하길 바란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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