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을 버리고 삶을 얻다 - 영화 '오늘 출가합니다'

글 입력 2023.04.09 19:13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03.JPG

 

 

 

1. 일상을 버리고 삶을 얻다


 

세상에 단 한 번이라도 일상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인간의 마음에는 수많은 충동과 욕망이 있고,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그것들의 좌절을 통해 성격을 형성해왔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아예 죽이는 길, 세속과 일상을 떠나는 일은 욕망도 없지만, 절망도 없다는 점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아마 어떤 곳을 떠나고 싶다는 욕구는 기본적으로 이런 마음을 닮았다.

 

영화 <오늘 출가합니다>는 출가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40대 후반 정도 되는 남자 둘이다. 진우는 영화감독이다. 몇년째 모텔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제작하고 있는 영화가 있지만, 투자사가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라는 터무니 없는 강요 때문에 잘 진행되고 있지 않다. 출가를 결심한 성민은 10년 정도 출가 준비를 했다.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고물로 팔아도 할 말이 없는 차를 끌고 다니는 것을 보면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랜만에 만난 진우와 성민은 술김에 옛날에 자주 가던 영화관 앞에 선다. 영화관은 오래되었지만, 아직 운영 중이다. 들어가서 어린 시절을 회고한 후, 성민은 진우에게 차를 줄 테니 출가를 도와달라고 한다. 하지만 첫 번째 출가는 나이 때문에, 두 번째 출가는 짧은 이혼 경력 때문에 거절당한다. 두 번째 출가 거부 이후로 진우는 직장에서 잘리고 성민은 갈 곳을 잃는다. 이들은 대신 바다 앞에서 가게를 하면서 예술생활을 즐기는 친구 집에 놀러간 다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성민이 출가하는 이유가 밝혀진다. 그는 예전에 친구가 학교폭력으로 얻어맞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친구는 다음날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고, 그 이후로 그의 환영을 본다. 또한, 그에게는 딸이 있는데, 딸은 성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는 중이다. 그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을 선택한다. 그런 성민이 돌아온 집, 성민의 아내는 그를 말없이 맞이하고 홀로 술을 들이켠다. 딸은 그에게 언제 출가하는지 묻고, 자신이 출가한 아버지를 주제로 랩을 쓰고 있다고 밝힌다.

 

그들이 출가한 차는 결국 폐차되고, 성민은 새로운 절로, 진우는 집으로 돌아간다. 성민은 비로소 중이 되는 데 성공하고, 진우는 영화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진우의 영화는 여전히 다 떨어져 가는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성민은 자신을 찾아온 딸과 친구들을 위해 축원을 올린다.

 
 

10.jpg

 

 

 

2. 물과 자연


 

영화 <오늘, 출가합니다>에서 반복되는 상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물이다. 영화의 시작에서 진우는 모텔의 물속에서 잠수한다. 잠수하는 그의 표정은 담담하고 눈을 꽉 감았다. 그래서 그의 잠수는 침잠한다는 표현이 가까울듯하다. 영화 중반부에서는 물 속에 돈이 빠져있는 장면, 진우가 현실적인 고난 때문에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냇가에서 얼굴만 내놓고 있는 장면이 반복된다.

 

물에 돈이 빠져있는 장면은 여러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종이 돈이 물에 빠진 장면과 모텔에서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진우의 모습은 묘하게 비슷한 느낌으로 이어진다. 눈을 감은 진우는 시체 같기도, 물건 같기도 하다.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진우의 모습은 돈으로 교환될 수 있는 가치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는 영화감독이라는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하찮은 물건이 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는 모텔 사장으로부터 하대를 받고, 아내의 가족들에게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

 

그런 그가 쇠락해가는 영화관을 보면서 "이런 곳은 남겨놓아야 한다"라고 한 부분은 하찮은 물건으로 쇠락해가는 자신의 삶에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어떤 저항이나 지향점이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물에 빠진 돈으로 취급하는 세계, 즉 모텔로 돌아가지 않고 성민과 함께 출가한다. 두 번째 출가 이후, 연극을 하는 친구의 가게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인간으로서 입수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물 속에서 서핑하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온몸을 허우적거린다.

 

서핑보드 옆에서 떠다니는 그의 모습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물건'에서 '인간'으로 전환되고 나서야 그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인간이 되고 나서야 진우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장모 옆에서 눈치 없게 감자전을 먹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영화도 계속해서 만들어 간다.

 

두 번째, 자연물이다. 영화 내내 산, 오래된 고목, 거대한 바위가 반복해서 출연한다. 나무 사이를 기어가는 벌레와 성민의 어머니가 서 있었던 미륵불 모양의 바위는 이러한 상징을 직접 사용한 부분이다. 물이 진우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코드였다면, 자연은 성민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코드다. 진우가 흐르는 물에서 온몸을 담그고 있을 때 성민이 찾아온다면, 성민이 오래된 고목을 보고 있을 때 진우가 찾아온다. 가출을 통해 진우가 '물건'에서 '인간'이 되어 갔다면, 출가를 통해 성민은 현실을 초월한 자연의 영원성을 발견한다.

 

성민이 두 번째 출가에서 실패한 후, 바다에서 새로 맞는 태양은 늘 그렇듯이 고고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이처럼 영화에서 사용되는 자연물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그 자태를 유지한다. 이런 부분은 시간성과 공간성을 초월한 불교적 사상과 공유되는 면이 있다. 성민이 몇 차례의 출가 시도 이후에 자연의 흐름은 사계절의 흐름을 빠르게 돌리는 것으로 표현된다. 성민은 그대로인 모습으로 다른 사람의 만족스러운 미래를 축원한다.

 

성민은 비로소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야 어머니가 있던 자리에서 미륵의 얼굴을 찾는다. 어머니와 자신 사이에 흐르는 시간, 인간사에서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을 벗어던진 중의 입장이 되어서야 해탈한 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학교폭력으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했던 친구의 소원도 그제야 빌어줄 수 있었다.

 

 

12.jpg

 

 

 

3. 나가며


 

사실 성민의 이야기에는 여러 불교적 메시지가 담겨있어 종교인이 아닌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석가모니 역시 자신의 가족을 버리고서야 출가할 수 있었다지만, 역시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딸을 버리고 가는 모습은 참 보기 어렵다.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이들 가족의 역사를 고려할 때 딸이 겪는 혼란이 정말 순전히 퀴어적인 관점에서만 봐야 하는지도 의문이 든다. 이들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지만, 그것의 기원이 어디에 있건 그 딸에게는 바라보는 아버지, 축원하는 아버지로만은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영화에서는 예쁘게 꾸민 차를 폐차장에 보내는 모습을 통해 이들의 가출과 가출이 끝났음을 암시한다. 삶의 만족과 애욕이 공허하다는 것을 알고 동정할 수 있는 삶이 정말 행복한 삶인가에는 역시 여러 가지 생각이 따라붙는다. 최소한 나는 쇼펜하우어 보다는 니체의 삶을 긍정하기 때문에 그 장면이 좀 아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시간을 벗어나 어머니와 같은 자리에서 선 자신을 발견하는 삶도 이 복잡한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으리라. 최소한 그는 모두를 위해 축언을 보낼 수 있는 승려가 되지 않았는가. 그 모습만큼은 사계절 내내 같은 자리에서 남아있을 것이다.

 

 

20230407125203_vlxtagho.jpeg

 

 

[이승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정용문
    • 삶을 벗어나야 삶을 얻는 것은 아니다
      삶은 정답이 없다
      진정한 승려는 속세에 더 많을 수도 있다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