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른이 된다는 게 어려운 어른의 이야기 - 어쩌다 어른 [도서]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게 뭔가요?
글 입력 2023.04.0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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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혹은 알고 싶은 누군가의 삶과 생각이 궁금할 때 에세이를 읽는다. 고등학교 때는 아무런 이유 없이 에세이에 빠져 있던 적이 있는데, 배우, 가수, 의사, 시인 등 직업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별의별 에세이를 다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읽은 에세이의 작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때때로 작가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올 때가 있는데, 책에서 작가가 털어놓은 경험과 비슷한 생황에 처했을 때다.

 

이영희의 <어쩌다 어른>은 작가의 삶이 궁금해 읽게 된 책은 아니다. 오직 <어쩌다 어른>이라는 제목에 꽂혀서 읽게 되었다. 나도 내가 어쩌다 어른이 된, 되어 가는, 또 어쩌면 영영 되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그 자체를 제목부터 발설해 놓은 것에서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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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은 에세이라 그런지, 읽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어느 인물의 토크 콘서트를 듣고 있는 기분이기도 했고, 문득 “이런 생각은 왜 하게 되신 거죠?”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공감하게 되는 것도, 내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켜 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것을 몇 가지 나누어 볼까 한다.

 

  
결코 사소하지 않았을지 모르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그때 그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지 않을까. 다시 찾아온 그 애를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알콩달콩 행복한 가정을 꾸린 아낙네가 되어 있지 않을까. 큰 결심을 하고 떠났던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네이티브 수준으로 일본어를 구사했을 텐데. 뒤돌아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떨쳐 버리는 게 낫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또 달래 봐도,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는 후회막급의 순간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내가 조금은 더 만족스럽게 바뀌어 있지 않을까, 미련으로 버무려진 기억들이다.
 


후회는 우리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벽에 배가 고프다고 먹은 라면에도, 친구에게 무심코 뱉어 버린 말에도, 큰 마음 먹어 사 버린 물건에도 우리는 후회를 하니 말이다. 나는 내가 후회를 남들에 비해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하루를 돌아 보며 드는 후회만 해도 몇 가지이다.

 

그런 나에게 위의 이야기는 공감이 많이 되었다. 과거의 일에 미련이 남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기에. 작가는 영화 <어바웃 타임>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주어진 순간들을 유쾌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작가의 이야기는 매우 좋지만, 솔직히 말해서 유쾌하게 보낼 수 있다면 후회 같은 것은 애초에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게 넘기지 못해서 남은 감정들이 후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나에게 드는 미안함을 생각하며 후회를 애써 하지 않으려 노력하곤 한다.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후회를 만드는 것은 단연 선택의 상황일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A와 B가 있고, 나는 고민 끝에 A를 선택한다. 그 선택의 결과에 후회를 하고 ‘B를 선택할 걸 그랬다!’라고 생각한다. B를 선택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나는 그렇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 매달려서 이미 충분히 고민하고 어떠한 선택을 한 나를 미워했다. 처음에는 한없이 자책이 이어졌는데, 언젠가부터는 ‘충분히 고민했을’ 나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나는 그 미안함을 생각하며 후회를 덜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이다.

 

나는 아직 작가처럼 조금 더 후회에 의연해지고 당당해지지는 못하나 보다. 그럼에도 이번에 후회를 대하는 누군가의 방식 한 가지를 배운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후회와도 친해질 수 있기를 바라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의 나를 꿈꾸는 이들에게, “네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은 없어. 정신 바짝 차리고 여기서 견뎌.”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희망 한 조각 없이 버텨 내기에 현실은 종종 너무 버거우니까. 하지만 당신이 정말 진지하게 다른 나라에, 다른 회사에, 다른 학교에 가면, 새로운 나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말해 줄 수 있다. ‘새로운 나’ 같은 건 없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이런 나를 어딘가에 옮겨 놓는다 해도 삶이 극적으로 바뀌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위의 글은 읽으면서 마음에 오래 남은 부분이기도 하다. 때때로 우리는 지나치게 ‘더 나은 나’에 붙들려 지금의 나를 부정하곤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나’를 인정하면 되는 것인데, 그게 쉽지가 않은 듯하다.

 

지금보다 돈이 많았으면, 환경이 좋았으면 훨씬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런데 사실 그건 지금보다 돈이 많은 나, 환경이 다른 나였을 뿐, 완전히 다른 나는 아니었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위 이야기는 그런 내 모습을 조금 거리를 두어 짚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라는 사람을 인정하고 대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읽어 보았으면 하는 구절이다.


작가 이영희는 기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 나도 현재 학생 기자 일을 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겁을 먹게 된다는 부분이나 인터뷰를 부탁할 때 쉽지 않다는 이야기는 공감이 크게 되어 소소하게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작가는 나와 매우 다른 삶을 산, 매우 다른 사람인데도 제법 닮은 모습들이 이따금 보여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작가 특유의 오타쿠스러움이 드러나는 부분이 종종 나오는데, ‘그 오타쿠스러움이 이 책을 더 매력 있게 만들어 주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잠깐 만나 본 ‘작가 이영희’의 모습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이 책 전체를 압축시켜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내가 가장 기록해두고 싶은 부분을 남기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사실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는 것은 과연 어떤 건지,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어 버렸고, 몸은 조금씩 노화의 징후를 보이는데, 마음은 여전히 말랑해서 작은 스침에도 쉽게 상처가 난다. 이적의 노래처럼 아직은 내 앞에 놓여 있는 삶의 짐이 버겁고 두려울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스무 살의 나와 지금의 나, 분명 지금의 나는 스무 살의 나보단 나 자신을 덜 아프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갖지 못한, 잘하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고 담담히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씩, 나 자신과, 세상과 화해하며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라고. 마흔이 되어도 쉰이 되어도 여전히 성장통은 있을 테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덜 쓰라리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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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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