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국 팝아트 거장들을 한 번에 만나는,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展

글 입력 2023.04.0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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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 포스터_세로형.jpg



예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전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전시를 보러 가야지 생각을 해놓고 이런저런 일들로 결국 미루고 미루다 가지 못했다. 그 때에는 그냥 어쩔 수 없게 됐다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좀 아쉬워졌다. 그 이후로 나는 호크니의 작품을 직접 대면할 일이 없었다. 어쩜 이렇게 인연이 닿을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독 다른 작가에 비해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만나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DDP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이 열린다는 걸 봤을 때, 이번에는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을 놓치고 나면, 언제 다시 또 호크니의 작품을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이번 전시는 호크니 단독 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을 비롯해 영국 팝아트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두루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팝아트하면 미국을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미국에서 팝아트가 성공적으로 자리잡기에 앞서 그 발원지는 영국이기 때문이다.


 



< 전시 구성 >


섹션 1/ 1960s Swinging London

섹션 2/ 인디펜던트 그룹 

섹션 3/ 팝 아트의 창시자 리차드 해밀턴 

섹션 4/ 대중문화와 팝 아트  

섹션 5/ 브리티시 팝 아티스트 I 

섹션 6/ Swimming Pool

섹션 7/ 데이비드 호크니와 물 

섹션 8/ 팝아트가 사랑한 인쇄술

섹션 9/ 브리티시 팝 아티스트 II

섹션 10/ 이 시대 가장 사랑받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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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 소식을 알게 되고 난 후, 어떻게 이번에 데이비드 호크니를 포함하여 영국 팝아트 화가들의 작품을 대거 전시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영국 팝아트를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가? 아니면 호크니와 관련해서 뭔가 관련된 게 있는 건가? 그런데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이번 전시는 한영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특별 전시회였던 것이다. 물론 한영수교가 140주년을 기념한다고 하면 최초의 시점은 구한말을 일컫는 것인데, 그 때의 영국은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리던 제국주의 열강 중 하나였다. 비록 시작은 그렇게 되었던 수교였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무엇보다 현 시점에 영국과의 관계가 온건하기에 이렇게 기념전이 열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은 주한영국문화원이 후원하기도 한 전시다. 그런데 왜 여러가지 테마를 놓고, 1960년대 스윙잉 런던을 전시의 주 테마로 잡은 것일까? 이 시기의 런던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급변하던 시기였고, 전후의 경제특수를 누리면서 아주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했다. 경제적인 부유함만이 부각되었던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문화예술도 부흥했다. 예술가들은 대중문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전통적인 가치에 도전하는 대범한 활동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팝아트의 시작이었다.


이 화려하고 역동적인 느낌의 영국을, 이번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을 통해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 대중문화에 있어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한국에도 그 느낌을 환기시키고자 이번 전시를 호크니를 비롯해 팝아트를 위주로 기획한 게 아닐까? 혼자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전시장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흥겨운 음악소리와 화려한 색감이 가득해,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이 보여주고자 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관람객들이 예측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중심으로 이번 전시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2. 에두아르도 파올로치.jpg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Turing



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본격적인 전시 공간에 들어서기에 앞서 팝아트가 무엇인지에 대해 리차드 해밀턴이 정의한 내용이 벽면에 붙어있다. 우리 모두가 팝아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느낌은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이것을 마치 학술적인 정의를 단편적으로 내리기는 쉽지 않다. 예술이지만 대중문화 및 대량생산과 아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이것은, 누군가의 눈에는 예술이지만 또 누군가의 눈에는 순수예술이 아니기에 예술이 아닐 수도 있는 영역이다. 이를 두고 정의한 리차드 해밀턴은 우리가 팝아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 느낌적인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제외하고도 열네 명의 영국 팝아트 화가들이 소개된다. 앨런 앨드리치, 피터 블레이크, 데렉 보쉬어, 패트릭 콜필드, 마이클 잉글리시, 리차드 해밀턴, 앨런 존스, R.B.키타이, 제럴드 랭, 피터 필립스, 브리짓 라일리, 콜린 셀프, 조 틸슨 그리고 에두아르도 파올로치다. 이들 중에는 1950년대부터 영국에서 전위적인 예술활동을 했던 인디펜던트 그룹의 일원들이 있다. 영국에서 팝아트가 태동할 수 있었던 근원은 바로 이 인디펜던트 그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리차드 해밀턴과 에두아르도 파올로치가 이 인디펜던트 그룹의 일원이다.


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회가 서로 어떻게 얽힐 수 있을까. 다른 예술가들도 그렇지만 특히 리차드 해밀턴과 에두아르도 파올로치의 작품에서는 이 점이 부각되는 듯했다. 물론 해밀턴과 파올로치의 작품에서도 팝아트의 느낌이 딱 나는, 전형적으로 만화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파올로치가 앨런 튜링을 기억하며 남긴 작품 이나, 리처드 해밀턴이 글자를 배열하여 만든 같은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기술과 기계에서 시작하여 예술과 사회까지 확장할 수 있는 이 문제의식은 참 깊게 와닿았다. 팝아트의 상업주의 이면에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고민에 이런 것도 있었다는 게 느껴지는 게 생경했다.



3. 리차드 해밀턴.jpg

리차드 해밀턴, Testament



인디펜던트 그룹의 전위적인 활동으로 탄생한 영국의 팝아트는 대중문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광고나 만화책, 일반적인 소비재로 사용되는 것에도 예술가들은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예술가들이 유명 음악가들의 앨범 표지를 장식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음악을 잘 몰랐던 나로서는, 만일 이번 전시에서 본 앨범 표지들을 그냥 외부에서 접했더라면 팝아트 예술가가 작업한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 같다.


이번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에서 팝아트가 상상 이상으로 대중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 아마 팝아트 예술가들이 어떻게 대중문화와 협업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이 구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는 몰랐다 하더라도 다른 관객들이 알아볼 수 있는 요소들이 포진하고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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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를 제외하고도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보았으니 정말 두루 살펴본 셈인데,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가를 잠깐 꼽아보자면 먼저 조 틸슨을 언급하고 싶다. 틸슨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색상이 밝은 편이었고 여러가지 오브제를 활용해 작품이 구성되는 경향이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전쟁이나 정치, 생태계 등과 같이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자신의 작품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로 손꼽힌다.


그런 그의 작품 중에서 바로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는 Secret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캔버스에 담겨 있지만, 이 작품은 목재 조각이다. 그림과 목재가 콜라주되면서 작품에 입체감이 살아나는 동시에 훨씬 더 시각적으로 주목하는 효과가 있다. 틸슨의 이 작품도 마치 루치오 폰타나와 같은 회화와 조각의 결합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미니멀리즘과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폰타나의 2차원과 3차원의 결합이라는 개념이 상기되었다.



5. 조 틸슨.jpg

조 틸슨, Secret



이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브리짓 라일리도 좋았다. 그가 남긴 포스터 작품들도 좋았지만 유독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Movement in Squares'였다. 나는 브리짓 라일리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이 작품이 나에게 오래도록 남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정사각형 안의 움직임이라는 이 작품을 통해 나는 나도 모르게 이승조 화백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브리짓 라일리가 그린 것은 이승조 화백의 화풍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승조 화백의 기하학적인 추상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은 음영이 져 3차원적인 느낌이 드는 파이프 같은 형상들이다. 어떤 의미에선 큰 네모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형상들의 반복과 운동감은 브리짓 라일리의 'Movement in Squares'에서도 느껴졌다. 물론 라일리는 사각형을 완전히 2차원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완전히 이승조 화백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국 예술가가 나에게 한국 미술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나에겐 브리짓 라일리가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6. 브리짓 라일리.jpg

브리짓 라일리, Movement in Squares



그리고 마이클 잉글리시도 언급하고 싶다. 그의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팝아트가 인쇄술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에 배치되어 있었다. 팝아트의 특징인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고도의 인쇄술이 수반되어야만 했다. 평면적이고 그래픽적으로 인쇄되면서도 쉽고 빠르게 대량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인쇄물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다양하고 과감한 색채까지 수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아래에 위치한 작품인 마이클 잉글리시의 'Love Festival'도 팝아트의 전형적인 느낌을 잘 담아낸 것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스크린 프린팅이 된 작품인데, 이는 금속에 구멍을 뚫고 이것으로 표면에 잉크를 바르는 인쇄기법이라고 한다. 앤디 워홀이 스크린 프린팅으로 유명인들의 초상화나 소비재들을 제작했다고 한다. 팝아트와 인쇄술 간의 관계를 잘 살펴볼 수 있는 단적인 예여서 그의 작품이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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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잉글리시, Love Festival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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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존스, Islands, The Tree



하지만 이 즈음에서, 주제를 한 번 전환해보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앨런 존스의 작품을 한 번 보자. 'Islands, The Tree'라는 너무 단순한제목과 다르게 작품 속에서 담고 있는 이미지는 다소 선정적이다. 선정적이라는 말이 옳지 않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한다면, 나는 성 고정관념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앨런 존스는 에로틱하고 페티시즘적인 요소를 작품 속에 가미하여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는 작가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그런 요소가 보인다.


존스는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서 여성혐오나 성차별주의를 표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했다. 특히 자신의 작품은 여성이 비인격화되고 성적 페티시와 하찮은 소비 대상으로 전락하는 병든 사회에 대한 비난을 담고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가 그런 의도를 담고자 했다면 나는 그 의도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한 순간, 그 이후에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평가를 감내해야만 한다. 그리고 관람객의 감상은 온전히 그만의 것이기에 자신의 의도대로 수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작가가 관람객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 존스의 작품을 보고 이런 문제점을 느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지 않은가. 그의 의도가 진정으로 그러했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스스로 그런 의도를 담아내지 못한 것을 인식하고 다음 작품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했어야만 한다.


하지만 과연 앨런 존스가 그랬는가. 내 눈엔 그다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이 문제는 비단 앨런 존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팝아트 예술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아주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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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에서는 팝아트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영역이 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확실히 이번 전시에 있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도 훨씬 더 직접적으로 섹슈얼리티를 다루고 있었다. 팝아트는 이런 성적인 이미지를 활용하여 전통적인 관념에 도전한 예술의 영역이기도 하니 이를 다루는 것도 예상가능한 범위이기는 하다.


그런데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성에 대해서 다루는데, 이 모든 성이 대상화된 것은 전부 여성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섹슈얼리티를 다룬 이 작은 공간 안에서 단 하나, 호크니의 작품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 대상화되어 있었다. 성적 이미지를 통해서 욕망과 친근감, 인간에 대해 다루었다고 하는데 거기서 다루는 압도적인 대상이 여성이라는 점은 다소 의문이다. 과연 이 욕망은 누구에게서 나온, 누구를 위한 욕망인가. 팝아트가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한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성적인 이미지를 활용한 것이 상당히 편향되어 있었다는 것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혹자는 순수예술에서도 여성의 누드가 다루어졌다는 점을 지적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말도 맞는 말이다. 그렇게 여성이 대상화된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과거의 예술에서 대상화되었던 여성들은 신화적인 존재거나 상상의 대상으로서 비현실을 상정한 것이었다면, 팝아트에서 대상화한 여성들은 당장 현실의 여성들을 대상화했다는 점에서 좀 더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일부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대중 전체를 위한 예술로서 이렇게 성적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수 있는 이미지가 대량으로 소비되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우리는 이미 그 영향 하에서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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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들



그래서인지 전시 말미에 이르러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들을 연이어 보게 되는 순간,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아마 앨런 존스의 작품 뒤에 만나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호크니라고 해서 이런 성적 대상화의 논란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그는 자신의 성향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면서 남성을 대상화한 작품들을 남겼다), 전시 후반부에 위치한 호크니의 작품들은 호크니의 화풍들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었다.


예컨대 포토 콜라주를 한 듯한 느낌의 작품들은 호크니가 가진 다양한 화풍 중에서도 트레이드 마크다. 그런 호크니만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들을 보는 것은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양한 시각이 결합된 유형의 화풍을 보는 건 호크니가 처음이 아닌데, 이렇게 호크니처럼 다양한 시선을 콜라주한 듯한 느낌은 또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호크니의 작품들 중에서 포스터 작품들은 참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좋았다. 무엇보다도 그가 그린 음악회 포스터들이 너무 좋았다. 예를 들어서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다룰 공연 포스터에서 딱 세 가지 얼굴 표정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 같은 경우 정말 위트있었다.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 포스터는 공연장에서 느껴지는 그 분위기를 생생하게 담아내기도 했다. 음악의 느낌을 잘 살려서 포스터를 그린 게 보기에 너무 좋았다.


남다르게 보고 남다르게 생각하라는 호크니의 말이 마지막 공간 벽면 한 쪽에 붙어 있었다. 그렇게 비범하게 살았기 때문에 호크니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무엇도 봄이 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했던 그의 말은, 전시관을 나가 다시금 현실로 돌아가기 직전인 관객의 입장에서 참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내 일상의 순간에 도사린 어려움들을 벗어나 잠시 전시를 보면서 심적인 안정을 취했던 내가 다시금 현실의 문제를 직면해야 하는 그 순간에, 데이비드 호크니는 기어코 봄은 온다는 말로 현실을 살아갈 우리를 독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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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은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두루 살펴볼 수 있어서 굉장히 다채로운 전시였다.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도 있고 다소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작품도 있었지만, 1960년대의 영국 분위기가 어땠을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전시여서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영국의 팝아트에 대해 이만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전시는 앞으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한 자리에서 이 모든 작가들의 작품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이번 전시의 말미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태양도 죽음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다. 순간일 뿐인 것에 너무 사로잡혀 얽매이지 말고, 그저 다가올 봄을 묵묵히 기다리며 일상을 살아나가는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은 스윙잉 런던의 이미지를 통해 2023년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예술과 대중문화의 관계, 사회와 예술의 관계 그리고 에너제틱한 생기까지 모두를 환기하는 전시였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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