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어로 경이를 표현하는 사람, SF 작가 - 미래과거시제

글 입력 2023.04.0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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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TvN 예능 <알쓸인잡>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알쓸인잡>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흥미롭긴 하다). ‘미래를 바꿀 인간’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가 화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100년 후 화성에 사람이 살 수 있게 된다면 그때 지구와 화성 국제사회의 관계는 어떠할까?’라는 질문이었다.

 

 

 

 

현재는 어떤 개인이나 국가도 우주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미래에 정말 화성 정착촌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다른 형태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으며, 화성에 거주하는 집단이 자치권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화성이 정치의 대상이 되면서 외교부가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외교부에서 고용한 전문가가 바로 배명훈 작가였다. 외교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까지 취득할 만큼 국제 정치에 대한 이해가 높고, SF 소설가로서 화성의 환경도 잘 알고 있으니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단순히 기발한 상상력의 글만 쓸 거라 생각했던 SF 작가가 화성 연구의 전문가가 된다니. 방송을 보고 ‘SF 작가’라는 직업 자체에 흥미가 생겼다. 방송에서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미래를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거나 이야기하지 않은 모든 미래의 가능성을 글로 쓰는’ SF 작가의 시선을 통해 다가올 미래는 물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주인공 배명훈 작가가 얼마 안 있어 신작을 발표했다.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미래과거시제>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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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면서도 익숙한 세상



보통 나는 어떤 이야기를 접할 때 상상력의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피로감을 느끼고 바로 포기하는 편이다. 이해해야 하는 설정이 많아지면 몰입하기는커녕 줄거리 따라가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주로 현실적인 이야기만 소비하던 나에게 SF 장르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 생각이 깨진 건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난 후였다. 짧은 분량에 걸맞게 세계관이 장대하지 않고,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더하는 능력이 감탄스러웠다. 꽤 만족스러웠던 독서 경험은 SF 장르 자체의 진입장벽을 낮추었고, 조금 더 관대한 마음으로 낯선 세상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배명훈 작가의 <미래과거시제>를 읽으면서 몇 년 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낯선 이야기에 신기해하다가 나와 전혀 무관하다고 믿었던 소설 속 세상이 실은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현실에 대한 은유라는 것을 인식할 때의 전율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렇다고 두 권의 책이 내게 모두 같은 감상을 남긴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타자에 대한 이해’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면, <미래과거시제>는 ‘삶의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언어’를 생각하게 했다.

 

책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소설 중 가장 인상적인 소설은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였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2020년 그때를 기점으로 사회의 질서가 뒤바뀌면서 감염의 불안을 줄이다 비말이 나오기 쉬운 파열음 자체가 없어진 가상의 미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대학원 과정의 필수 코스로 도서관에 갇혀 역사를 연구하던 ‘나’가 파열음이 있던 과거 영상을 공부하던 배우 ‘서한지’를 만나는 일을 다뤘다.

 

처음엔 이상한 줄 모르고 술술 읽었다. 그러다 ‘아가이브’라는 단어를 마주하고 당혹감을 느꼈다. ‘설마 오탄가?’ 싶었지만, 한번 의식하고 나니 모든 문장이 어딘가 이상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던 문장들도 다시 살펴보았다. ‘복잡아게 이야기했지만, 격리 실습실이란 사실 도서관저럼 생긴 문서고다.’ 이 기이한 문장들은 분명 작가의 의도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라는 궁금증을 품고 한 장 한 장 넘기다 코로나19로 촉발한 서로에 대한 불안이 그 기준이라는 점에 감탄했다.

 

모든 작가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지만, SF 작가가 창조한 세계는 조금 다르다. 일반 작가가 만든 세계의 단위가 인물이라면, SF 작가가 만든 세계는 그 단위가 사회다. 완전히 새로운 사회 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 파열음이 부재한 가상 사회에 어색해하던 나는 점점 그 사회의 기반이 이미 내가 경험한 시대라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그렇다. 이미 나는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사회를 경험했다. 공상과 현실의 경계는 그렇게 선명하지 않았다.

 

익숙함과 낯섦이 한 끗 차이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SF가 그려내는 세계에 더욱 흥미가 생겼다. ‘미래가 궁금하다면 SF를 읽어라’라는 조언은 정말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SF도 우리가 실제로 경험한 현실을 외면한 채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경이


  

책을 다 읽고 아트인사이트에 올라온 배명훈 작가의 인터뷰를 보다 반가운 단어를 발견했다.

 

 

책에 수록된 아홉 편의 단편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신 건지 궁금해요.

 

그동안 썼던 것들을 돌아봤을 때 SF에서 ‘경이감’이라고 하는 느낌을 잘 담고 있는 작품, 작가로서 어떤 확신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을 뽑았어요. 적절한 작품을 잘 고른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Interview] 우리를 환대하는 낯선 세계로 - '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작가

 

 

배명훈 작가의 그 대답은 작년에 내가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라는 책의 리뷰에서 남긴 문장을 떠올리게 했다.

 

 

경이: 놀랍고 신기하게 여김. 또는 그럴 만한 일.

 

‘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동안 특별히 그 단어를 좋아한다고 인식하진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글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경이로운’이라는 단어를 자주 활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들이 나의 평범한 일상 속 경이로운 순간일지도 모른다.

 

[Review] 무심해서 더 경이로운 자연 –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내가 ‘경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된 데는 뚜렷한 계기가 있다. 음악가로서 실패하고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 앨범을 발표한 지 30년 가까이 흐른 후에야 자신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대스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물 식스토 로드리게스의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을 보고 나서였다. 30년 만에 자신이 유명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로드리게스의 상황도, 30년 동안이나 죽은 줄 알았던 뮤지션을 잊지 않고 그의 흔적을 찾았던 팬들의 열정도 ‘기적’ 그 자체였다. 영화에는 내가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갈 대사가 나온다.

 

“이 시대에도 경이는 존재했죠.”

 

경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가 아니다. 21세기 현재에도,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금 이 땅에도 경이는 존재한다. 내가 책에서 경이감을 느꼈던 순간은 완전히 새로운 상상력을 발견할 때가 아니었다. 인류의 대변자가 수능에 응시하는 학생들을 대변할 때(‘인류의 대변자’),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나와 똑같이 ‘혼자’ 글을 쓰기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홈, 어웨이’), 미래의 일을 마치 과거에 직접 겪은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특이한 언어 방식이 현재 내 삶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미래과거시제’) 나는 경이를 느꼈다. 실제 나의 일상이 소설 속 가상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오로지 언어로 표현해낸 작가에게 경이감을 느꼈다.

 

예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고,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든다.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유유자적 넘나들 줄 아는 작가를 만난 덕에 나는 내 삶을 익숙하면서도 낯선, 조금 경이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직 SF 장르에 완전히 마음의 문을 허문 것은 아니다. 몇몇 작품을 섭렵해보긴 했지만, 역시 아직은 일상적인 이야기가 조금 더 편하다. 그래도 왠지 앞으로 더 많은 SF 소설을 읽을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미래과거시제>를 통해 느끼게 된 삶의 경이감이 기꺼웠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였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미래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궁금해하는 SF 작가들의 존재가 왠지 든든하게 느껴진다. 비록 나는 당장 내일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SF 작가들에게는 100년 뒤 인간이 화성에 정착하면 어떻게 될지와 같은 질문도 던져보고 싶다. 그들이 가진 언어의 힘으로 거뜬히 대답해줄 것만 같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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