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라이팬을 긁어서 먹는 외로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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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냄새와 맛이 있다는 점에서 기억의 틈새를 아주 교묘하게 파고든다. 생일날 먹던 미역국, 힘들 때 먹던 아이스크림, 소풍 갈 때 들고 갔던 도시락처럼 감정으로 기억되는 사건의 옆에는 항상 음식이 있다. 그렇지만 가끔 음식 그 자체가 기억이 될 때도 있는 법이다. 나에게 빨간 고기가 외로움의 음식인 것처럼.
빨간 고기는 내가 삼겹김치볶음을 부르는 말이다. 냉동삼겹살과 김치를 넣고 익히면 완성되는 이 좋은 반찬은 늦은 아침에 일어나 집에는 아무도 없을 때, 뭔가를 먹어야 하긴 하는데 새로 요리하기는 싫을 때 기가 막히게 화구 위에 올려져 있는 식은 반찬이었다. 반찬을 만들어준 사람은 일을 나간 엄마였고 나는 그런 엄마를 거의 언제나 좋아했지만 빨간 고기는 유독 싫었다. 엄마에게는 아직 비밀이다.
아침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시간에 일어나면 대개 아무도 없었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아젠 정말 뭘 좀 먹어야지 싶은 의무감에 부엌으로 가면 깊은 프라이팬-웍이 정확한 설명이겠지만-안에는 엄마가 아침에 해놓고 간 것이 분명한 빨간 고기가 가득이었다.
그러면 나는 프라이팬에 하얗게 눌어붙은 기름을 지우기 위해 가스불을 중불로 올리고 뚜껑을 닫는다. 냉동실에서 소분된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릴 때쯤이면 지글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싱크대에서 나무 주걱을 꺼내 뚜껑을 열면 푹 익은 김치와 고기가 프라이팬을 빨갛게 물들인 걸 볼 수 있다.
주걱으로 한번 잘 섞어주고 불을 끈다. 나중이 되면 잊어버릴 것이 분명하므로 가스도 같이 끈다. 전자레인지의 밥을 식탁에 옮기고 젓가락만 가져다 놓는다. 설거지는 하기 귀찮고 밥은 젓가락으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팬의 뚜껑을 열고 고춧가루와 기름의 쩐내를 맡아가며 주걱으로 고기 반 김치 반을 퍼담는다. 그러면 늦은 점심의 밥이 완성된다. 가끔은 저녁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빨간 고기의 맛은 외로움의 맛이다. 먹을 건 많은데 먹을 게 없고, 할 건 많은데 하기는 싫고 혼자 있는 게 좋은데 혼자 있는 게 싫은 맛이다. 오돌뼈가 있는 얇은 삼겹살은 이미 질겨져 고기 비린내가 명치까지 스며들고 기름을 먹은 김치는 흰밥 위에 보기 싫은 자국을 남겼다.
나는 뜨거운 밥 위에 빠르게 식어가는 김치와 고기를 올리고 잘 하지도 못하는 젓가락질로 입에 그것들을 우겨넣곤 했다. 그러면 목구멍이 막혔고, 괜히 눈물이 났고, 그렇지만 울기에는 어쩐지 너무 처량한 것 같아서 눈물을 쓱쓱 닦고는 입에 가득 찬 것을 괜히 조금 더 씹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라도 누군가 나를 위해 해준 음식이 먹고 싶다. 밥에 미친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타지 생활에 지쳐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엄마가 보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그런 식으로 밥을 먹는다면 외로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의 외로운 맛과 지금의 외로운 맛이 다른 건 왜일까. 그때는 집에 있어야 할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은 집에 있어야 할 사람이 나 뿐이라는 사실 때문일까. 내가 나를 먹여야 하는 사람이라는 건 외로움의 출처가 나 혼자뿐이라는 걸 뜻하는 걸지도 모른다.
[김지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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