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식물은 우리를 도울 수 있다” - 식물, 국가를 선언하다

“식물이 쓴 지구의 생명체를 위한 최초의 권리장전”
글 입력 2023.03.2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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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로 구성된 이 국가는

다른 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가 의존하는 국가다."

- 프롤로그 중에서

 

 

『식물, 국가를 선언하다』

_스테파노 만쿠소

 

 

[더숲] 식물, 국가를 선언하다_평면 표지.jpg

 

 

[PRESS]

“식물은 우리를 도울 수 있다”

 

 

되뇔수록 왠지 새삼스러운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고 싶다. “식물은 우리와 같은 생물, 생명체’다.” 광활한 우주 속 지구라는 행성에는 독특하게도 다채로운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다. 진귀하고 아직까진 우주에서 유일한 풍경이라 할 수 있을 테다. 식물과 동물, 그리고 마찬가지로 같은 동물이지만 괜히 따로 불러야 할 것 같은 인간이 여기에 공존한다.

 

그런데 말이다. 인간은 정말 다른 생명체들과 공존하고 있는 걸까? 역시 새삼스러운 질문이지만 이번 건 왠지 더 날카롭게 느껴진다. 솔직한 표현을 쓰자면 ‘찔리는’ 느낌이다.

 

이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당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근래 피부로 와닿는 여러 환경 문제와 기후 변화를 떠올리노라면 긍정적인 대답은 어려울 듯 싶다. 인간이 형성한 사회 속에서 그들만의 생존 방식을 아무렇지 않게 추구하다가 자연에 가한 피해의 역사는 꽤 유구하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단 이런 이야긴 여기까지. 본글에서 필자가 중심에 두고 싶은 건 인간이 아니고 식물이기 때문이다. 이번 도서 리뷰에서 우리는 식물학자 스테파노 만쿠소와 함께 식물국가에 들어선다. 이 지구라는 터전을 이해하는 관점을 인간에게서 식물로 옮기는 순간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의 생각이 아닌 식물의 생각으로. 인간의 생존 방식이 아닌 식물의 생존 방식으로. 식물이 진정한 주인공인 식물국가에서 우린 어떤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을까.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온 힘으로 이 행성의 환경을 유지해온 식물이 다시 쓰는 공존에 대한 이야기. 식물의 관점으로 서술된 최초의 권리 장전. 『식물, 국가를 선언하다』 리뷰를 시작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고 가장 영향력이 있으며 다른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가 의존하는 식물, 그리고 그들이 세운 식물국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식물 덕분에 존재하며 저자가 개념화한 식물국가 안에서만 생존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분명한 명제 아래, 이 책은 ‘지구의 진정한 주인인 식물이 쓴 헌법’이라는 유쾌한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 보도자료

 

 

책은 식물국가가 선언한 8가지 헌법으로 구성된다. 식물국가를 대변해 인간의 언어로 그들의 헌법을 전달하는 듯한 저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식물 덕분에 존재한다.” 광합성으로 내리쬐는 태양빛을 생물에게 필요한 화학 에너지로 전환시키고, 생명체가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정화 작업을 수행해온 식물. 어느 정도 익숙한 사실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주장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명제는 지구의 진정한 주인은 식물이라는 선언으로 이어진다.

 

 

내가 볼 때 식물을 피라미드의 최하위에 배치하는 것은 잘못이며, 그다지 관대해 보이지 않는다. 화학 에너지를 소비하는 유기체가 아닌, 화학 에너지를 생산하는 유기체를 상위에 표시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 자동차는 엔진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가? 나머지는 필수품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식물은 자동차의 필수 부품인 생명체의 엔진이며 나머지는 차체에 불과하다.

 

- 97p.

 

 

식물국가에선 ‘자연의 범위 밖에서’ ‘자신들이 가장 우월한 종인 것처럼’ 지구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의문을 표한다. 가령 이 ‘우월하다’라는 개념부터 성찰하는 것이다. 우선 ‘우월하다’란 개념에는 반드시 목표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답은 꽤 간단명료하다. 바로 생존이다. 그리고 식물은 지구에서 인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생존해왔다.

 

물론 식물이 인간보다 지구에 출현한 시기가 빠르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수도 있다. 그렇담 반대로. 인간은 앞으로 10만 년은 더 생존할 수 있을까? 특히 최근에 절감한 자연재해와 기후 이상 현상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고 있는 피해들을 곱씹어 보자. 인간을 ‘우월하게’ 만들어준 두뇌가 판단한 결론과 행동으로 자신들이 살아야 할 지구에 가한 인간의 행위들을 생각하노라면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다. 멀리서 바라보면 인간은 결국 자신이 사는 환경을 파괴하며 스스로 생존 가능성을 낮춘 생명체가 된 셈이다.

 


큰 두뇌가 이점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론적 약점임이 드러나면서 조기에 멸종될 수 있는 이 오만한 개체의 멸종을 막으려고, 인간국가보다 수억 년 전에 태어난 매우 현명한 식물국가가 지구상 모든 생물에게 주권을 부여한 것이다.

- 43p.

 

 

필자 개인적으론 동물과 식물 각각의 생존 방식이 그들의 사회구조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간단히 말하자면 동물은 생존에 필요한 신체의 기능이 각 기관에 집중적으로 부여될 때(눈으로는 보고, 귀로는 듣고, 폐로는 호흡한다 - 집중화), 식물은 그 기능을 몸 전체로 분산시킨다는 것이다(온몸으로 보고, 듣고, 호흡한다 - 분산화).

 

둘 중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몸의 일부가 파괴되었을 때 더 치명적인 건 전자다. 동물은 신체 일부분이 손상되면 그 부분에 집중된 기능이 전혀 역할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기능이 분산된 식물은 일부분이 파괴되어도 다른 일부가 그 역할을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이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피라미드식 구조. 위계 조직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사회는 ‘피터의 원리*’에 빠지게 된다.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능력이 되지 않는 단계까지 지위가 치솟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건강 문제(지위증후군**)와 최악의 권한 위임 관계를 상세하게 서술한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점유해야 할 중심 없이 각각의 기관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식물은 자유와 견고성을 허용하는 조직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부여된 지위가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역할하는 분권화된 조직이 확산되는 오늘날의 분위기를 떠올리노라면 납득이 되는 이야기다.

 

*위계 조직 안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무능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 - 옮긴이(책에서 발췌)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 - 옮긴이(책에서 발췌)

 

 

근계(root system)을 포함한 식물은 모듈로 구성되어있다. 개별 모듈은 항상 더 넓고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고자 무한 반복하지만 근본적인 중심이 없다. (…) 우리 뇌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고 뇌 안에는 필수 기능 수행에 특화된 다양한 영역이 있는 것과 달리, 근계에서는 기능이 사방으로 퍼져 있다. 따라서 필수 기능에 특화된 영역이 없는 뿌리들은 전체 뿌리 네트워크 대부분에 영향을 미칠 광범위하고 심한 손상에도 조용히 살아남을 수 있다.

 

- 90p.

 

 

중요한 건 이 헌법이 인간과 식물을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식물 국가의 목표, 그들 헌법의 지향점은 경쟁을 통한 약육강식의 생존이 아닌 협력하는 공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성찰하는 것이 아닌, 어엿한 주체로 인정된 식물의 관점에서 서술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인간을 성찰하는 새로운 거울이 되어준다. 식물국가를 통해 인간과 식물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의도했든, 인식의 버블에 갇혀 의도하지 않았든 저자는 우리가 흘겨보았던 세계가 이토록 거대하게 우리 환경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일러준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만큼 『식물, 국가를 선언하다』는 식물과 인간을 새롭게 그리고 더 분명하게 이해하는 시간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식물국가.jpg

 

 

모든 생명체의 기본 목표가 생존이라면, 우리가 생존 중인 환경을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 공동의 목표가 된다. 일단 인간의 상황을 고려하자면, 환경 파괴를 막고자 뒤늦게 고안한 방법들이 아직 크게 의미 있는 변화를 불러오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란 게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꽤 어려워 보이는 이 질문에 저자는 명백하게 대답한다."확실한 대안은, 식물에게 다시 맡기는 것이다!” 

 

필자는 이 한 마디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식물은 우리와 같은 생명체”란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문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못하는 일은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생명체에게 맡기면 된다. 즉 긴 시간 지구 환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유지해온 식물이야말로 지구의 환경을 다시 회복하는 일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종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공생으로 협력한 덕분에 생명체는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달성할 수 없었을 결실 맺는 법을 배웠다. 식물의 세계에서는 함께 살아가는 이러한 예술이 가장 눈부신 완성을 이룰 수 있었다.

 

-167p.

 

 

책의 마지막 장. 식물 헌법 제8조는 상호부조, 즉 공생을 인정하고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필자는 제8조 이전의 7가지 헌법 - 생명체의 주권, 생물 간의 관계, 탈중심화, 권리의 존중, 환경 보존, 자원의 보호, 이주의 중요성 - 을 거쳐온 궁극의 이유이자 목표가 바로 이 ‘공존’이라 생각했다. 이는 뿌리 내린 자리에 머물며 오고 가는 모든 생명체들과 함께하는 환경을 구축해야 했던 식물이 비로소 말할 수 밖에 없던 가치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은 식물과 같은 생명체다. 식물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고 인간도 그들과 다른 생명체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우월함을 따지지 않고 같은 선상 위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할 수 있다면. 이 세계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과 함께하는 여정 동안 식물과 인간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필자가 감히 판단하고 확언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그럴 자격도 없는 듯하고). 다만 지금의 시점에선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필요한 순간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그려볼 뿐이다.

 


우리가 비록 눈치채지 못했지만 식물은 인간과도 오래 전에 협력 관계를 시작했다. 인간이 작품을 재배하면서부터다. 우리 집, 공원, 채소밭, 들판 등에서 우리를 둘러싼 식물들은 작물화와 함께 우리와 공생으로 정의되는 특별한 협력 관계를 시작한 종이다. 두 종족이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둘 다 이득을 보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관계다.

-172p.

 

인간국가 안에서의 식물. 식물국가 안에서의 인간. 구태여 이런 구분을 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생명체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때가 오기는 할까. 이 의문이 현실 속의 것인지 환상 속의 것인지 잘 모르겠다. 과연 시간이 흘러 이 명제는 어디에 위치하게 될까. 이 책과의 여정의 끝에선 그런 호기심이 내 곁을 맴돈다.

 

 

 

오예찬_PRESS.jpg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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