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직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날씨의 아이’ [영화]

영화 '날씨의 아이' (2019)
글 입력 2023.03.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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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는 아이의 시점에서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에 대한 어른들의 무관심을 보여준다. 영화를 본 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음은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날씨의 아이’가 다른 영화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세상을 구할 기회가 있음에도 그 기회를 버리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닌, 단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을 택함으로써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해준다.

 

 

 

아이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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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호다카’는 원래 살던 곳에서 가출하여 도쿄로 떠나온 소년이다. 그러나 영화는 호다카가 왜 가출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호다카가 왜 가출했는지 조금의 힌트를 주는 장면이 ‘히나’가 호다카에게 왜 가출했는지 질문했을 때이다. 호다카는 자신이 살던 마을과 부모님이 답답해서 가출했다고 답했으나, 왜 답답했는지, 얼마나 답답했으면 가출이나 할 정도였는지, 그렇다면 호다카는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해주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 같은 경우 이러한 인물의 서사를 이야기해주는데, 이 영화는 해주지 않아 의아했다. 그러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니 등장인물인 호다카와 시점, 즉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어른들은 호다카가 왜 가출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른들은 그가 왜, 어떻게 가출했는지보다 현재 그가 가출소년이라는 것, 불량소년이라는 것에 초점을 둔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가 가출했다는 결과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다.


히나와 남동생이 단둘이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것에 적응하고 호다카와의 동업도 안정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을 때, 경찰은 아무런 보호자 없이 히나와 남동생 둘만이 사는 것에 대해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히나는 남동생과 둘이 잘살고 있고, 그동안 둘이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 왜 도움을 주려 하냐고 말하며 오히려 그들의 도움을 경계한다.


히나의 엄마가 죽은 후 히나가 남동생과 단둘이 살게 된 처음부터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않아도 둘이 잘 살 수 있다고 다짐하였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히나와 같은 상황이었더라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어른들의 도움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수업을 들어야 하는 14살의 소녀에서 하루아침에 자신과 남동생의 의식주를 챙겨야 하는 소녀 가장의 처지가 되는 것은 그 누구라도 원하지 않는다.


히나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한 경찰의 말은 정말 도움이 필요로 할 때에는 아무런 관심도, 도움도 주지 않고 더 이상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때 도움을 주겠다고 손을 뻗는 행위이다. 영화 속 경찰은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낼 때는 못 듣거나, 못 들은 척한 어른이었다.


이렇듯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듣는다고 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이는 영화 속 히나와 호다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나온 장면이지만, 한 어린아이가 창밖의 빗방울이 물고기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에게 “엄마, 여기 물고기가 있어”라고 말하지만, 엄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그것참 멋진 일이구나”라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정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 어른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그들은 크게 받아들인다. 히나는 맑음소녀로 활동하며 자기 몸이 투명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을 위해 계속해서 날씨가 맑아지도록 기도한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계속 기도하던 이유는 자신의 기도로 날씨가 맑아진 후 사람들이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한 마디가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다.


내가 사범대에 재학하면서 교수님들께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학생들은 교사의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기억한다”이다. 학생들은 교사가 저번 주에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제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교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기억한다고 한다.


소설 ‘페인트’에서 “우리가 원하는 어른은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고 믿고, 자신들이 모르는 것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었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애초에 궁금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어른들도 자신의 행동, 말의 무게를 생각해야 한다. <날씨의 아이>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우리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소설 ‘페인트’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닌, 단 한 사람을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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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가 기존 영화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세상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 혹은 어떤 것의 포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날씨의 아이’에서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 희생되는 결말이 아닌, 단 ‘한 사람’을 구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영화 속 호다카의 직장 상사 ‘스가’가 “제물 한 명 바쳐서 날씨가 돌아온다면 난 환영이야. 다들 마찬가지일걸”이라고 말할 때 솔직히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맑은 하늘 아래에서 생활할 수 있다면 제물 한 명의 희생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호다카는 다르다. 세상이 아닌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고, 한 명으로 인해 날씨가 계속 좋지 않다고 해도 “날씨 따위 미쳐버려도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호다카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걸까?

 

호다카는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만난 히나에게 “날씨는 원래 미쳐있었어”라고도 말한다. 호다카는 많은 사람이 마음속 한구석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순수함’을 보여주기에 우리는 ‘날씨의 아이’에 빠져드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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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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