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황야의 자유와 열정으로 충만해지고 싶다면
글 입력 2023.03.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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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가고 브론테 왔다.”


작년 9-11월 네버엔딩플레이가 올린 뮤지컬 <브론테>가 막을 내리자 연극열전이 올리는 락 다큐멘터리 뮤지컬 <웨이스티드>가 베일을 벗었다. 두 뮤지컬 모두 브론테가에 대한 이야기였으니, 말 그대로 “브론테 가고 브론테 온” 셈이다.

 

‘샬럿, 에밀리, 앤’을 연기하는 세 여성 배우로만 이루어진 뮤지컬 <브론테>가 매 공연 매진 신화를 이어가며 여성 주연과 여성 서사의 티켓 파워를 보여준 것도 브론테 자매 이야기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브론테의 바통을 넘겨받은 <웨이스티드> 또한 호평받으며 단단한 관객층을 형성했다.

 

특히, 흔하지 않은 ‘락 다큐멘터리 뮤지컬’이라는 장르 특성상 초반에는 넘버들이 생소하고 구성이 감기지 않는다는 혹평도 있었으나 차차 관객들을 스며들게 한 <웨이스티드>는 세 자매의 첫 시집이 외면당한 것과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이 비난에 가까운 평가를 받은 후 인정받은 모습과 겹친다.

 

이렇듯, 2022년은 가히 ‘브론테가(家)’의 귀환이라 보아도 큰 무리가 아닌 해였다. 이렇게 가깝게 만나왔던 브론테가의 이야기를 그들의 내밀한 편지들로 재구성해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여주는 책이, 바로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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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데 잘 배우고, 잘 배워서 큰 꿈을 꾸는 애매한 애들”  – 뮤지컬 <웨이스티드>


 

황야가 펼쳐진 구석진 동네 하워스에서 가난한 목사 아버지 아래 자란 샬럿, 브랜웰, 에밀리, 앤 브론테. 첫째인 마리아와 둘째인 엘리자베스는 기숙학교에서 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나 네 남매의 이야기가 주로 전해진다.

 

이들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가 아일랜드의 자연을 경외하고 갈망하던 정서를 어린 브론테가 아이들이 흡수해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지형도로 사용한 것이다. 덧붙여 네 남매는 책이나 정기 간행물, 정치 소식 등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접하며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에 접목했다.

 

“우리는 현실에서 조언을 구할 뿐 명령을 받지는 않아.”

 

샬럿과 에밀리, 앤은 평생 글로써 ‘더 많은 일’을 하며 수많은 편지와 습작, 일기, 개인적인 기록, 시를 남겼고, 일곱 편의 소설을 책으로 발간했다. 글을 쓰고 읽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하워스에 고립되어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썼다. 그러나 글은 생계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같은 젠트리 계급과 어울리기에는 너무 가난했으며, 그렇다고 인근 농가와 허물없이 지내기에는 교육 수준이 너무 높은, 애매한 사람들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없는 물건을 만들어서 아랫도리에 달 순 없잖아!”   – 뮤지컬 <브론테> 


 

그녀는 가정 형편 탓에 취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경제적 대책이 자신의 욕구 및 능력과 일치하지 않는 데서 좌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좌절감은 ‘문학은 여성에게 필생의 사업일 수 없다’는 사우디의 조언에 대한 그녀의 모순적인 반응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샬럿에게 – 그리고 에밀리와 앤에게도 – 문학은 삶의 중심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샬럿, 에밀리, 앤은 학교 교사로도 일해보고 가정 교사로도 일하지만, 실패를 맛보고 돌아온다. 게다가 가정 내에서 신동으로 떠받들어지던 브랜웰이 가족을 책임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물 건너간다.

 

그러나 샬럿, 에밀리, 앤은 전환점을 만든다. 각자 필명을 써서 ‘벨’의 이름으로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을 출간한 것. 비록 이 시집은 달랑 2권이 팔렸지만, 그들이 다음 소설을 준비하고 출판하는 기반이 되었다. 셋은 함께 소설집을 출간하려 하지만 샬럿의 <교수>는 출판사에서 거부당한다. 이에 샬럿은 ‘작고 평범한’, 그러나 흥미롭고 비범한 ‘제인’을 주인공으로 한 <제인 에어>를 집필해 출간하고, ‘커러 벨’에게 천재라는 타이틀을 달아준다.

 

한편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는 함께 출판돼 비교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지금은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 <폭풍의 언덕>이지만, 출간 당시에는 야만적이고 악마의 글이라는 혹평이 자자했다. 황야를 사랑하고 자유로 호흡하는 에밀리의 글이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이후 에밀리가 쓴 두 번째 소설을 출판사가 ‘커러 벨’의 소설이라 속이려 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샬럿과 앤은 런던으로 가서 공식석상에 자신들의 정체를 밝힌다. ‘벨 형제’가 아니라 ‘브론테 자매’로 인정받은 것이다.

 

 

 

브론테가의 전지적 서술자, 샬럿 브론테


 

“그들은 언제나 자연스러운 충동과 직관의 명령으로 글을 썼고, 제한된 경험 안에서 관찰한 바를 축적하여 그 창고에서 글감을 가져왔다.”

 

브랜웰과 에밀리, 앤이 모두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브론테가에 관한 기록은 샬럿의 작품과 그녀의 기록을 토대로 구축돼왔다. 샬럿이 엘런을 비롯해 자신의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샬럿의 삶과 브론테가에 있었던 일들을 알 수 있다. 동생들의 생전에도 샬럿은 안과 밖을 잇는 서술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에밀리는 밖에 나가기를 거부하며 “뭐 하러 그래? 집에 있으면 샬럿 언니가 바깥세상을 가져다줄 텐데”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샬럿은 가족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들을 향한 비판에 반박하기도 했다.

 

일찍 잃은 언니들의 빈자리를 든든하게 채워온 그녀의 책임감과 성실함 덕에 우리는 소설과 서문, 편지 등의 다양한 글들로 브론테 남매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고립을 갈아내 자유롭고 치열하게 글을 써서 자신들의 고독을 완성한 브론테 자매들의 내밀한 세계가 연한 필체와 친밀한 편지들로 재구성된 책이다. ‘헛되고 헛된 삶 wasted’(뮤지컬 <웨이스티드>)이었을 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들의 이름으로 내내 치열했고 존재했으므로 이미 충분했다.’(뮤지컬 <브론테>)

 

그들의 삶을 편지와 그림으로 읽으며 황야의 자유와 열정으로 충만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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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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