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래서 전 어디서 살 수 있는데요. [공간]

두꺼바 두꺼바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글 입력 2023.03.25 12:5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여기를 둘러봐도 저기를 둘러봐도 집 밖에 보이지 않았다. 왼쪽은 오래전부터 봐오던 집, 오른쪽은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하는 집, 뒤로는 아는 사람이 사는 집, 앞으로는 내가 사는 집. 온통 집뿐이었다. 이건 티브이를 봐도 변하지 않는 진리였다.

 

그런데 왜! 이 많고 많은 집 중에서 내가 살 수 있는 곳은 없냐는 말이다. 이제 막 자취에 입문하는 한 사람의 외침은 결국 화살이 되어 돌아왔고 끝내 하소연을 불렀다.

 


kindle-g99595e33c_1920.jpg

 

 

27년 인생, 드디어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 방도 못 구했지만) 예전부터 꿈에 그리던 독립이라 설렘과 기대, 두려움과 무서움의 공존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더군다나 집에서 처음으로 자취를 하는 사람인지라 부모님의 걱정은 두 배가 되었고, 또 하필이면 그 장소가 코 베어 간다는 서울이라서 걱정과 불안은 세 배가 되었다.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꽤 오래전부터 나는 상경의 꿈이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위로 올라가서 더 큰 세상에서 더 큰 꿈을 펼쳐야지, 하는 포부와 함께 말이다. 나에게 있어 ‘서울’은 꿈의 도시였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꿈에 불과하지만, 야속하게도 나의 꿈을 독차지하여 어떻게든 가야만 하는 그런 곳이었다.

 

오랜 꿈이었던 상경과 독립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괜스레 로망이란 아름다운 단어가 내 마음속에 피어나곤 했다. 인테리어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생기는 것은 없던 관심도 만들기에 충분했다. 바이닐을 수집하기 위한 선반도 필요했고, 바이닐을 듣기 위한 턴테이블도 필요했다.

 

아, 작업을 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책상과 의자도 필요했고, 많은 옷을 전부 담기 위한 수납공간도 필요했다. 그리고 가끔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오면 함께 잘 수 있는 여유 공간도 필요했고, 가능하다면 집에서 요가 매트로 스트레칭도 할 수 있는, 소위 말해 <오늘의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원했다.

 

그러나 서울은 코끝이 시릴 만큼 냉정한 곳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기에 원하는 것을 전부 담을 수 있는 집을 가질 수 없으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최소한의 선택지만 남겨야 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인테리어는 무슨, 돈/위치/치안 이 세 가지만 합격해도 감지덕지다’는 말이 의지와 상관없이 입 밖으로 나오던 순간이었다.

 

 

2001086172_Ey90W13q_apartments-g300f995f0_1920.jpg


 

사실 이번 자취는 나에게 단순한 상경, 꿈, 이직 따위의 단어 그 이상이었다. 비교적 보수적인 집안에서 조심성 없는 막내 포지션을 차지했던 터라 혼자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잘 없었다.

 

20대 후반을 달려가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허락이 일상이 된 모습은 내가 주체적이지 못한 수동적인 인간임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고, 이제는 알을 깨고 나갈 차례라는 걸 인지하게 했다. 그렇기에 나의 첫 자취는 내 인생의 두 번째 챕터라는 웅장한 표현으로 덧칠할 이유가 충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의 온전한 나만의 공간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은 부풀었다. 난 개인 공간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언니와 한방에서 공부하고, 또 다른 방에선 잠을 자며 집 안의 작은 방 2개를 특이한 구조로 지내왔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야 온전한 내 방이 생겼고, 그때부터 작지만, 나만의 것으로 가득 찬 그 공간이 그렇게도 좋았다. 문을 닫으면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잔잔함과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함. 뒤늦게 알게 된 ‘온전한 내 공간’의 맛은 무척이나 달콤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지만, 누군가는 맛보지 못할 그 달콤함을 이제는 조금 더 크고 더 달게 맛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이 욕구는 반대할수록 커졌고, 말릴수록 더 달아졌다. 어쩌면 지금의 개인 공간보다 더 열악한 환경일지도 모르겠지만, 열악함 따위는 가뿐히 집어삼키는 달콤함을 하루빨리 맛보고 싶다.

 

유통기한의 길이 따위는 내게 더는 중요치 않다.

 

 

[지은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