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슬기로운 사생활 침해 - 조선 미술관

책 <조선 미술관>을 향유하며...
글 입력 2023.03.21 11: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조선미술관_표1.jpg

 

 

"세상에 없던 전시회,

조선 미술관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 슬기로운 사생활 침해 속으로


 

누군가의 삶을 엿본다는 것은 참 재미있다. 아 물론 내가 누군가의 삶을 엿보았다는 것은 아니다. 에디터 임주은으로서의 삶 말고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가 무엇을 누리며 사는지 난 항상 궁금했다. 만일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호기심은 배가 된다.

 

<조선 미술관>,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작은 욕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세상에 없던 전시회에 초대받은 나는 저자의 큐레이션을 따라 “슬기로운 사생활 침해”를 누릴 수 있었다. 책을 향유하며 조선의 은밀하고도 거대한 사생활이 한 폭의 그림을 통해 펼쳐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 웅장한 역사를 나만 보기가 너무 아쉬워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에게도 슬며시 노출해 보고자 한다.

 

이 전시회는 <궁궐 밖의 사사로운 날들><궁궐에서 열린 성대한 잔치> 이렇게 두 관으로 나뉘어 관객들을 인도한다. <궁궐 밖의 사사로운 날들>은 조영석, 김홍도, 정선, 그리고 신윤복 등 풍속화의 거장들이 그린 그림들을 바탕으로 그 당시 평민들과 양반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음을 알려준다.

 

 

[크기변환]20098_김득신_긍재전신첩_투전.jpg
김득신의 <밀희투전 密戱投錢>_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김득신의 <밀희투전 密戱投錢>을 살펴보자. 각각 등장인물들은 노름을 즐기고 있다. 과거나 현대나 금지된 놀이에 대한 욕망은 변하지 않는 역사인 것 같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포인트는 각각의 인물들이 아전이라는 점이다. 양반이 아닌 아전들은 봉급을 받지 못하기에 비교적 노름의 유혹에 빠지기 쉬웠다. 김득신이 그들의 옷차림과 외모를 사실적으로 묘사했기에 지금 우리가 이들이 노름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

 

조선판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실제로 김득신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도박장에 숨어들었다. 조선의 화가들이 우리나라에 살아 돌아온다면 그들 중 몇몇은 우리나라의 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매일 밤 발을 벗고 뛰어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크기변환]20413_신윤복_혜원 전신첩_노중상봉.jpg
신윤복의 <노중상봉 路中相逢>_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한 작품을 더 살펴볼까. 신윤복의 <노중상봉 路中相逢>을 들여다보자. 조선판 드라마 작가라고 불리는 작가 신윤복. 그 명성에 버금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두 명의 양반과 두 명의 양반가 여인이 등장한다. 두 쌍의 부부가 길을 가다가 마주쳐 인사하는 장면을 신윤복이 화폭으로 가져와 그린 것이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여인들의 투기와 남자들의 기싸움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영상이 아닌데도 한 여인의 표정과 몸짓을 보고 자신의 외모를 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녀의 남편은 상대에게 자신의 아내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음을 포착할 수 있다. 세상이 정하는 미의 기준에 따라 사람들의 희비가 갈리는 현상은 어쩜 과거에도 현재에도 변함이 없는지 신기하고 씁쓸하다.

 

 

 

# 함부로 보기 어려워 더 궁금한 사생활


 

다음은 2관으로 걸어 들어간다. <궁궐에서 열린 성대한 잔치>에서는 조선 궁중기록화의 백미인 숙종 기사첩을 살펴보며 이 그림들이 무엇에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본다. ‘기사첩’이란 임금이 들어가는 궁중기록화 가운데 임금이 기로소에 들어간 사건을 그리는 그림을 말한다. 관료사회에서 가장 영예로운 모임인 기로소들을 포함하여 악공들, 무예가들, 문예가들, 그리고 내시 등 다양한 인물들은 한 폭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크기변환]기사계첩_(국보_제325호)_02.jpg
<기사사연도 耆社私宴圖>_ 문화재청 (공공누리 제1유형) CC BY-SA 4.0,

 

 

대표적으로 기로신들이 기로소에서 잔치를 여는 모습을 담은 <기사사연도 耆社私宴圖>를 보면 재미있는 사생활 하나를 더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부장님이 떠난 회식자리 같은 <기사사연도>. 잔치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마당 좌우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오른쪽에 저고리와 바지만 입은 백발의 두 노인이다. 왼쪽 노인은 어깨춤을 추며 오른쪽 노인을 바라보고 오른쪽 노인은 신발도 안 신고 지팡이에 의지해 꾸부정하게 몸을 흔드는데 두 노인 얼굴에는 흥겨움이 가득하다. 두 노인의 춤은 당 위의 무동춤과 기막히게 어우러지며 숙종 치세 45년도가 대단한 태평성대였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왕과 고위 관료들의 배치, 그들이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잔치를 즐겼는지도 분명히 그려내고 있지만 이 땅의 백성들의 흥과 즐거움을 몸소 느끼며 단순히 왕실만을 위한, 왕실을 위한, 왕실에 의한 그림이 아님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 만약 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흥겨운 춤꾼이었다면, 나를 못살게 구는 고위 관료들의 잔치 근처에는 단 한 발자국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계속해서 바라보아야 보이는 것


 

슬기로운 사생활 침해를 슬슬 마쳐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전시회를 거닐면서 온전히 느꼈던 편안함과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는 나와 같은 독자에게 이 책은 오아시스 같다.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더 나아가 그렇게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한 칸 한 칸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충격에 휩싸여 그림 한 쪽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림을 감상하는 중에 그림을 전체적으로 감상하기 어려웠다. 도서의 특성상 중간에 접히는 부분에 주요한 인물들이 보이지 않거나, 인물들의 표정이 가려져 저자가 말하는 인물들의 심리가 바로 와닿지 않아 여러 번 그림을 감상해야 했다. 물론 뒷장에서 클로즈업하여 인물들의 표정을 자세하게 보여주지만 그림의 전체적인 조화를 감상하고 싶던 나 같은 독자에게는 살짝 불편했다.


책의 뒷장까지 읽은 후, 지금 현대사회를 고발하는 나만의 풍속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훌륭한 그림 실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이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담고 싶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어디에 먼저 잠복해 볼까? 누구에게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예술을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아트 인사이트 태크.jpg

 

 

[임주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1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