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메마른 세상에 꽃씨를 심는다는 것 - 보이체크 인 더 다크

글 입력 2023.03.1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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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사랑과 행복한 현실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걸까.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는 가난한 군인 보이체크와 카바레 가수 마리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놉시스

 

전쟁 중에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는 이유로 군인이 된 가난한 남자, 보이체크.

 

하지만 그는 사람을 죽일 용기가 없다는 이유로 늘 고된 훈련을 받으며 상관인 대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그런 그의 유일한 위안은 고된 훈련이 끝나고 들으러 가는 마리의 노래뿐. 하지만 마리 역시 자신을 멋대로 판단하고 취급하는 사람들로 인해 몹시 지쳐 있는 상태.

 

그런 마리에게 꽃 한 송이 선물할 돈도 없어 괴로워하던 보이체크는 대신 그녀가 자주 오는 강가에 꽃을 심기 시작하고, 오히려 그의 이런 모습이 마리를 사로잡는다. 각자의 삶에 지쳐가던 중 서로에게 위안을 느낀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의 손을 잡고 영원을 약속하지만, 그들의 아이 한젤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

 

보이체크는 어떻게 해서든 한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마리 몰래 군에서 진행되는 불법 실험에 참여하게 되고, 그 사실을 몰랐던 마리는 보이체크에게 비밀로 하고 다시 노래하러 나간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애써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결국 한젤은 죽고 만다.

 

한젤의 죽음, 마리의 불신으로 완전히 한계에 몰린 보이체크는 결국 정신을 놓아버리고,

 

두 사람의 관계 역시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다양한 상징적 요소들


 

<보이체크 인 더 다크>에서 “눈目”은 핵심적인 환유로 작동하며 그만큼 배우들의 대사 속에서나 넘버, 연출에서 ‘눈’이 자주 등장한다. 극의 초반에서 보이체크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싶어질 때도 당신의 노랫소리가 들리면 다시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아”라며 마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앞이 보이질 않는 자신의 미래를 마리와의 사랑으로 이겨내고자 한 대목이다. 이후 결혼에 성공하고 아이 한젤이 태어나는 등 행복한 생활이 지속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젤의 병과 함께 생활고가 극심해지자 보이체크는 비윤리적인 실험에 동참하고 마리가 다시 카바레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마리가 이상한 꿈을 꾸고 나서 “이젠 내가 두 눈을 감고 당신을 위해 노래를 할게”라고 외치는 부분은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며 결국 헬렌의 죽음과 아기의 눈을 검은 손수건으로 가리는 행위는 어두운 세상에서 눈을 뜨고 살아가는 삶이 좌절됨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카를이 건네는 “다들 여전히 눈을 감고 있군”이라는 대사는 작품 내에서만 머물렀던 눈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로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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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우리가 대상을 볼 때 눈으로 느끼는 감각인 색채 또한 연출과 맞물려 다양한 상징적 요소로 사용되었다. 특히, 작품 전반에 있어 붉은색은 가장 많이 사용된 색으로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붉은색은 사랑, 정열과 같은, 삶의 활력이 되어주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선혈, 폭력과 같은 고통을 상기시키는 부정적 이미지 또한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붉은색이 가진 아이러니는 작품 내에서 넘버와 시각적인 연출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붉은색 옷과 손수건은 각각 마리가 카바레 가수로 활동할 때 입는 복장과 공연 후 사람들이 건네는 꽃으로, 카바레 가수라는 사회적 역할을 암시하고 있다. 이 점은 보이체크가 마리와 점차 멀어지는 상황에서 그가 마리에게 다시 다가가고자 할 때, 손수건을 통해 막는 연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리에게 손수건이 있다면, 보이체크에게는 칼이 있다. 가난한 보이체크는 한젤의 병을 고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어떤 명령에도 복종하는 소위 ‘완벽한 군인’을 만드는 비윤리적인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처음엔 당나귀를 찌르는 것조차 주저하던 보이체크는 결국 연구를 진행하던 군의관까지 찌르며 손을 붉게 물들인다.

 

전쟁이라는 환경 속에서 폭력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며 ‘눈먼 시대가 되어버린 세상’과 순수했던 보이체크의 부닥침은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물리적, 정신적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비극적 결말



일반적인 로맨스 작품에서 서사를 진행하게 하는 갈등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인해 발생한다. 하나는 두 남녀 사이의 내부적 요인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 체계의 개입으로서 외부적 요인이다. 작품의 스토리라인 내에서 이 두 요인의 비중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변화한다고 볼 수 있다.

 

<보이체크 인 더 다크>는 외부적 요인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문제는, 내부 요인이 강한 경우 두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에 대한 확인을 확고히 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국면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외부 요인은 해결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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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폭력과 가난이라는 결핍은 보이체크에겐 칼을, 마리에겐 마이크를 잡도록 하였다. 하지만 스스로가 무너지는 가혹할 정도의 노력을 쏟아부었음에도, 한젤은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런 한젤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리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고야 만다.

 

가늠할 수 없는 노력과 정성으로 현재 상황을 극복해나간다는 희망찬 이야기들은 한젤의 죽음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다. 오이디푸스가 비극적 상황에서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눈먼 장님이 되었지만, 마리는 “눈먼 시대에 눈먼 장님”-뮤지컬 넘버 어느 오월의 노래 중-이 되는 것보다 죽음이라는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

 

박윤혜 작가가 말했듯이, <보이체크 인 더 다크>는 “최대한 원작이 가진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동시대에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든” 작품이다. 작품 속 군의관은 자신이 만든 약을 보며 세상에 가장 가까운, 완벽한 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한다. 돈과 권력이 모든 것을 위치시키는 세상에서 보이체크와 마리는 모난 대상이었다. 둥근 세상은 그들을 둥글게 깎아내려 하였고, 그 과정은 두 개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하였으며 둘은 끝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파국을 맞이하였다.

 

 

 

“꽃씨를 심고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어서요”


  

<보이체크 인 더 다크>를 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다. 모든 일에 효율이 우선되고 모든 대상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 가능해진 세상에서 ‘꽃씨를 심는 행위’는 지극히 비효율적이며 무의미하다. 특히나, 보이체크의 경우처럼 언제 피어날지 모르는 꽃씨를 계속해서 심는 행위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보이체크가  꽃씨를 심고 가꾸는 순간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희망이 되어주었다. 설령 그 결과가 불확실할지라도, 그 과정 자체가 아름다우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꽃씨를 심어보는 것이 어떨까. 눈을 떠도 어두운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지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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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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