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감각을 예찬하다: 감각의 박물학

글 입력 2023.03.1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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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_표지(띠지무).jpg



인간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런데 이를 가장 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마 대답은 '살아있음을 감각으로 인해 느낀다'가 아닐까 싶다. 내 심장박동이 뛰는 것을 촉각으로 느낄 수 있고, 이에 따라 내가 두 눈을 떠 세상을 바라보며 시각으로 인지할 수 있으며, 내 귀와 코로 들어오는 것들을 청각과 후각으로 파악할 수 있기에 인간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과학적으로 확언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는 오감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한 것이다. 이 감각들이 깨어 있고, 이 감각들을 활용할 수 있기에 우리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삶을 더욱 다양하게 느끼고 인지하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바로 이런 감각의 놀라움에 경이를 표하며, 감각에 대한 과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모든 지식과 감탄을 총동원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저자는 바로 다이앤 애커먼이며 그가 쓴 책은 '감각의 박물학(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이다.


원문 제목의 Natural History는 그 자체로 동물, 식물, 광물의 종류나 성질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를 행하는 '박물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자연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있어서 자연사라는 표현보다 박물학이라는 표현이 독자들에게 좀 더 단어만으로도 의미 파악이 명확하기에 협의의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감각의 박물학'을 읽어본다면, 비단 과학적인 탐구를 수행하는 박물학의 차원이 아니라 보다 철학적인 사색까지 담겨있어 오히려 자연사적으로 감각에 접근하는 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과학과 인문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우리의 감각 전반을 아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책 소개 >


감각은 우리의 진화 이전, 바다에 살던 때의 유물이라고 한다. 다이앤 애커먼에 따르면 우리의 정맥은 조류와 비슷하며 우리의 피 역시 농도가 소금물과 엇비슷하다. 우리의 몸과 감각은 태고의 모습에서 거의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그리고 언어화되지 않은 기억과 인상을 표현하는 공감각까지, 우리 감각의 모든 것을 풀어놓는다.

 

'냄새'는 우리를 순식간에 과거의 시간으로 옮겨놓는다. 그렇다면 '소리'는 어떤가, 귀에 익은 노래 역시 우리 머릿속의 기억들을 헤집는다. '촉각'은 생물학의 커다란 수수께끼 중 하나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신체 접촉을 필요로 하지만, 때로 육체를 극한의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미각'은 쾌락의 근원이다. 인간은 맛의 향연을 즐기기 위해 매일같이 다른 생명을 취한다. 인체 감각수용기의 70%는 '눈'에 모여 있으므로, 우리는 세계를 봄으로써 그것을 평가하고 이해한다. 감각의 뒤섞임인 '공감각'은, 환각을 일으키는 신생아의 세계이면서 예술가들에게는 강력한 창조성을 부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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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다이앤 애커먼은 오감 중에서 가장 먼저 후각으로 '감각의 박물학'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의아했다. 오감 중에서 왜 하필 후각이지? 오감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감각들이지만 그 중에서 그나마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게 있다면 후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시작을 후각으로 한 게 다소 신기하게 느껴졌다. 시작을 후각으로 했다는 건, 그만큼 저자가 후각을 중요한 감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각 챕터를 읽어가면서 보니, 후각을 경홀히 여겨선 안된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후각에 대하여, 다이앤 애커먼은 누군가의 작품들을 인용하기도 하고, 과학적인 설명으로 논지를 보충하기도 하며 자신의 주장을 폈다. 그의 주장은 일관되게, 후각은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생각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후각은 어쩌면 인류가 진화해온 과정에서도 결코 완벽하게 퇴화시킬 수는 없었던 본능의 마지노선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설명들이 굉장히 신기했다. 오감 중에서 후각을 가장 후순위로 생각했던 개인적인 이유는, 나 스스로가 그만큼 후각이 발달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후각에 대해 가장 쉽게 표현하자면, 나는 사람의 고유한 체취가 무엇인지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가족의 냄새, 친구의 냄새, 애인의 냄새를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부모님의 냄새조차 모르니까. 더군다나 집냄새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누군가의 집에 들어갔을 때 환기가 덜 되면 이전에 해먹었던 음식의 잔향이 나는 것은 느껴지는데, 특정하게 그 집을 상기시키는 냄새라는 건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우리집 냄새조차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집냄새를 구분하겠는가.


그래서 내가 다른 감각에 비하면 후각이 조금 덜한 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이앤 애커먼은 이조차도 후각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 말한다. 후각으로 별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는 것처럼 현대 인류가 인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후각을 활용해서 무의식 중에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아마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후각을 잃는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그가 왜 이토록 후각의 중요성과 그 감각의 뛰어남을 예찬하는지 확실히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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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다이앤 애커먼이 언급하는 것은 바로 촉각이다. 촉각은 명백하게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감각이다. 보고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촉지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는 정보의 수집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정서적인 안정감의 차원에서도 그렇다. 영유아가 부모와의 신체적 접촉이 충분할 때 그의 정서가 안정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과학적 사실이다. 이렇게 촉각으로부터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는 것은 비단 영유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인들도 촉감을 통해 서로를 인지하고 또 의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친밀한 사이에서 스킨십이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촉각은 정말로 재미있는 감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오감 중에서 다른 감각들도 나라는 자의식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촉각은 그야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게 만드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문득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가? 목적지를 향해 길을 걸어가는 순간, 갑자기 내가 살아있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 말이다. 내가 두 눈으로 지금 길거리와 행인들을 보고 있지만, 내 귀에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소리가 들리지만 이것이 누군가의 감각을 내가 대신 보고 듣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마치 영상을 보듯이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남아있는 다른 감각 중에서 가장 빠르게 나의 자의식을 일깨워주는 감각이 바로 촉각이다. 후각과 미각이 사용되기 위해선 반드시 매개체가 필요하다. 향기가 있는 무언가가 근처에 있어야 하거나, 아니면 먹을 수 있으며 맛이 나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후각 또는 미각을 활용해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촉각은 그 무엇도 없어도 된다. 당장에 내 신체를 촉지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실존하고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촉각을 통해 내 자의식이 내 신체와 연결된 것은 확인할 수 있어도, 내 의식이 내 신체 속에 갇혀있는 것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내 의식과 내 신체의 실존을 가장 단순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촉각을 활용한 인지라는 점은 그만큼 촉각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감각인지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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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나오는 감각은 바로 미각이었다. 바야흐로 미각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미각에 대한 이야기는 즐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각 챕터를 읽으며 놀랐던 것은, 다이앤 애커먼이 미각을 좀 더 관능적인 영역과 직결시켜서 주로 설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각에 대한 과학적인 보충설명 역시 함께 제시되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이성에 대하여 먹을 것에 비유하는 점에 착안하여 이 부분을 위주로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게 다소 신기했다. 인류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먹는 것이 꾸준히 성적인 컨텍스트를 가졌다는 게 참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 미각에 대해, 다이앤 애커먼은 카니발리즘까지 언급하고 있었다. 미각에 대한 파트가 즐거울 것이라고 단순히 예상했던 것과 달리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왜 인간은 고도로 인간을 살상할 수 있는 기술들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으면서, 식인은 무의식 중에 피하고 있을까? 고대인들이 죄의식 없이 순수하게 인육을 먹었던 것과 다르게, 현대인들은 이에 대하여 분명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고대인들과 다르게, 사람들이 인간의 생을 존엄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식인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억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사실 논리적으로는 여기서 끝내면 안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인간의 생을 존엄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식인을 금기시하게 되었나? 적어도 서양에서는 기독교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컸을 것이다.


그 뒤에는 비로소 조금 한숨 돌릴 수 있는 주제들이 나온다. 우리가 좋아하는 식재료 중 하나인 초콜릿이나 바닐라, 송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누구나 좋아하는 이런 미각 경험에만 천착하지 않고, 죽음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식재료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예컨대 복어를 먹는 경우 같은 것 말이다. 이렇게 스릴을 느끼게 만드는 음식을 왜 굳이 먹는 걸까?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이앤 애커먼의 글을 보니, 조금 색다르게 이해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죽음을 지근거리에 두는 스릴 넘치는 미식 경험은, 먹이사슬의 포식자 자리에 위치한 현대 문명의 인간이 고대인들의 공포를 미약한 수준으로나마 겪어보는 순간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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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은 또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감각인가.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물론 우리의 신경을 거스르는 소음도 있다. 그러나 귓바퀴를 통해 달팽이관을 통과하여 우리 뇌에 정보를 전달하는 소리는 유용할 뿐만 아니라 재미를 주고 즐거움을 준다. 어느 언어에나 발음하기 편하고 행동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의성어들이 있어 듣기에 재미있는 면이 있고,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기제를 통해 청각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다이언 애커먼도 그래서 청각에서는 음악에 대해 할애한 지면이 꽤 많았다. 인간의 가청범위를 넘어선 동물들이 노래하는 소리도, 인간의 가청범위 내에 있는 악기들이 노래하는 소리도 모두 과학적으로 설명할 요소들이 있기에 저자가 다루기 딱 좋은 주제였다. 음악은 분명 감정에 어떤 파문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작곡가는 어떤 소리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어떻게 알까? 작곡가의 입장에선 자신의 창조성이 만든 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세계와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작곡하는 것이다.


음악은 언어인가? 나는 무언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멘델스존이 작곡하여 이름붙인 바처럼, 음악은 무언가(無言歌)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말한다. 심지어 나라마다 언어가 달라도,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항상 일정한 형태의 음악을 향유해왔다. 음악은 언어인 동시에 쾌감이다. 단선부이건 다성부이건, 울림이 풍부하건 적건, 박자가 빠르건 느리건, 음악은 분명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청각을 통해 이런 풍부한 쾌감을 일상 속에서 누릴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다이언 애커먼을 통해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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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은 오감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감각이다. 그래서인지 시각을 다루는 챕터에서는 체감상 다른 챕터보다도 더욱 과학적인 부연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저자의 설명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홍채와 수정체, 동공과 시신경 그리고 뇌에 이르기까지의 그 교과서적인 그림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시각은 빛과 직결되는 감각이기 때문에 우리가 빛에 받는 영향에 대해서도 시각과 함께 살펴보는데, 새삼스러운 것들도 참 많았다.


예컨대 빛이 얼마나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스웨덴에서 교환학생을 지내던 시절에 가장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은 해가 고작 서너시간 밖에 안 뜨는 겨울이었다. 밤이 아닌 시간에도 밤처럼 보내야 하는 그 때에 느낀 이상한 감정은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만큼 빛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빛이 반사되면서 우리의 시각에 잡히는 각각의 색깔들은 또 어떠한가. 색감만 가지고도 우리는 감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또 느낄 수 있다. 시각으로 접하는 모든 것들은 정보 그 자체인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감각들은 하나의 감각 인지로만 이어지지 않고 공감각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청각과 시각이 결합되기도 하고, 시각과 후각 또는 촉각과 후각이 결합되기도 한다. 이런 공감각은 보다 상황을 더욱 풍부하게 인지할 수 있는 기제가 된다. 그래서 다이앤 애커먼은 공감각을 설명하면서 작가들이 자신의 뮤즈로부터 어떻게 공감각적으로 영감을 받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예술가가 아니라서 그런 영감의 원천에 대한 일련의 서술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다. 다만 공감각적인 감상을 느낄 때에 그것이 어떤 방면으로든 나에게 더 큰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에 대해 막연하게 동의하면서, 그가 찬미하는 감각에 대해 나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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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우리의 감각은 또 얼마나 귀한 것인가. 다이앤 애커먼의 글을 쫓아가다보면, 그가 감각에 대해 표하는 그 경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감각을 예찬하는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독자된 입장에서는 간접적으로나마 살아있음에 대하여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고, 내가 느끼는 모든 감각을 놀랍고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다.


다이앤 애커먼은 감각에 대하여 통섭적인 견지를 보여주었다. 감각이라는 것 자체에 대하여 이만큼 이론적으로 풀어헤쳐 설명하면서도, 또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만큼 감각이 진화해온 놀라운 일련의 과정들을 살펴보면서도, 저자는 여전히 삶의 거대한 부분들은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각해야만 한다. 이토록 경이로운 감각들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나갈 앞으로의 삶은 얼마나 매혹적이고 아름다울 것인가. 생의 감각이란 이토록 예찬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라는 주지의 사실을 인지했을 때, 이후의 삶은 결코 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감각의 박물학


지은이 / 옮긴이: 다이앤 애커먼 / 백영미

분야: 인문교양, 에세이


출판사: 작가정신

페이지: 544쪽


정가: 28,000원

ISBN: 979-11-6026-304-6 (0330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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