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정상의 비범한 부서짐 - 행복회로 부수는 중

글 입력 2023.03.1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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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회로 부수는 중_앨범커버.jpg

 

 

관용적 표현 중에 ‘나사 빠지다’라는 말이 있다. 정신 상태가 해이해지고, 완벽히 조립되지 못하고 덜그럭거리는 것 같다는 비유적 표현.

 

비단 타인에게 느끼지 않더라도, 스스로 한 번쯤 느껴보았을 감정이다. 내 일부분이 고장 난 건 아닐까, 지금 나의 한 부분이 망가진 건 아닐까. 이 세상에 대해 생각할 때 세상과 나 둘만 덩그러니 놓아 생각하게 되는 것.


나노말의 <행복회로 부수는 중>은 나에게 딱 이런 심상의 앨범이었다. 나사가 하나쯤 빠진 자신을 일레트로닉 음악으로 표현한 앨범. 80년대 일렉트로 팝 풍의 베이스와 신디사이저는 거칠면서도 음울한 느낌을 동시에 표현한다. 보컬은 오히려 섬세하고 유약하게 흘러나오지만, 보컬이 부르는 가사는 모두 자기 파괴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선명한 부서짐. 선명한 외로움. 선명한 분노.


이전 앨범 <행복회로 돌리는 중>, <행복회로 터지는 중, 행복회로 불타는 중>을 통해 나의 내면의 감정을 모조리 터뜨리고 불태웠던 이들이 부순 행복회로의 마지막 잔상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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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n Ocean’ 속 ‘우주미아’


 

 

난 우주미아

멍청하게 떠도는 미아


Your own love, own pain, own life,

own truth, own feel,

I left everything

 


1번 트랙 우주미아는 타이틀곡이자 가장 대중적인 느낌의 곡이다. 우주미아라는 이름에 걸맞게 신비로운 느낌의 노래였다. 나는 이 노래가 2번 트랙인 Neon Ocean과도 유기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Neon Ocean은 제목처럼 보라색 네온사인의 거리 속에서 떠다니는 느낌의 노래였다. 네온사인의 물결 속에서 결국 외치는 것은 외로움이다.


 

따따따 다신 그대를 떠 올릴 수 없게

바다는 필요 없어


이젠 나를 또 찾아서

그곳에 비밀을 숨겼어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곳에

나를 또 숨겼어

 

 

두 노래는 모두 우주의 흐름 속에서, 바다의 물결 속에서 요동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욱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느낌이 든다. 1번 트랙에서 ‘당신만의 사랑, 당신만의 삶, 당신만의 진실, 당신만의 느낌을 두고 와버렸다’며 ‘난 항상 비겁한 사람이야’라고 고백하는 화자가 두고 온 당신은 2번 트랙의 당신이 아닐까.


‘다신 그대를 떠 올릴 수 없게’의 독특한 띄어쓰기에 의미가 있다면. 두고 온 당신은 이제 없기에, 이제 당신을 떠올릴 수도 없고, 띄워 올릴 수도 없게 ‘바다가 필요 없다’며 나는 자신을 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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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바나나’‘Crazy Sock Thing’


 

4번 트랙인 해피 바나나와 5번 Crazy Sock Thing은 앨범 노래 중 가장 적나라하게 분노, 절규, 자조가 표현된 곡이다. 


 

추악한 내 말투와 쌓여있는 열등감

핑크빛 키스를 하며 날 푹 찌르려 해

 


분노의 끝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더럽게 화창한 바깥세상, 거추장스러운 예쁘장한 말투와 인사 같은 것들에 나는 분노하며 ‘너’를 공격한다. 너를 찌르려고 한다. 그러나 찌를 때마저 나에게 푹신한 너(외부)의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은 결국 상대적으로 나를 더 추악하게 느끼게 할 뿐이다. 5번 트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난 아파요 늘 그래요

난 당신을 미치게 해

막 화내요 분노해요

그만할게요

 


Crazy Sock Thing은 내가 눈물이 나오고,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아프다는 자기고백으로 시작하지만, 이것도 결국 너를 지치게 할 것을 깨닫고 또 슬퍼한다. 나사가 빠진 스스로 끊임없이 분노하지만, 또 소중한 너를 위해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생각하는 순간 또 스스로 과오를 깨달아 절망하기를 반복한다.


칼, 추악함, 망상, 개자식, 짜증나, psycho! 등. 자칫 섬뜩한 가사가 많이 나옴에도 멜로디와 보컬은 외려 귀엽고 앙증맞다. 폭발하는 내부의 폭력성과 외부로는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유약한 표현. 그 사이에서 감정의 날을 느낄 수 있다.


 

 

‘냉동실’의 나는 ‘기억을 지우는 병원’으로, 이는 ‘KARMA’


 

8번 트랙 냉동실에서는 4, 5번 트랙과는 반대되는 차갑게 얼어버린 자기 자신을 이야기한다.


 

나 언제 끝날지 모를

이 하얀 눈 속 안에 파묻혀 있었지

난 항상 여기에 주저앉은 채로

혼자서 울먹이고 있었지

 


뜨거움과 차가움. 정반대의 심상이지만 양극단으로 향할 때는 오히려 가장 비슷한 감정의 날뜀을 느끼게도 한다. 너무 차가운 물체에 손을 대면 뜨거움을 느끼며 화상 같은 상처를 입기도 하니까. 때로는 세상에 대해 끓어오를 듯 분노를 느끼다가도, 세상에 혼자인 것 같아 한없이 차갑고 쓸쓸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지금 행복회로가 부서지는 상태인 것이다.


 

저는 당신에게 기억을 지우는 수술을

몇 번이나 해드렸습니다

제가 비워냈던 당신의

모든 상처들이 다시 돌아와버렸나요

 


너무 큰 상처를 지닌 화자는 9번 트랙 기억을 지우는 병원에 가서 끔찍한 과거와 기억을 모두 잊는 수술을 한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화자는 또다시 몇 번이고 병원에 다시 돌아온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상처는 계속 생기고, 견디지 못해서 찾아오는 화자에게 의사는 몇 번이고 다시 수술해 주겠다 말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또 누군가? 기억이 안 나는 나에게, ‘저건 당신인가요? Is That you?’ 이 끊임없는 반복의 굴레, 어쩌면 기억을 지우지만 또다시 회복하는 것도 또 내가 아닐까.


 

언젠간 모든 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은 끝없이 윤회할 것이다

그렇게 돌다가 돌다가 우매한 나도 언젠간

모든 진리를 깨우치게 될 것이다

 

 

다시 7번 트랙 KARMA로 가보자. KARMA는 업보라는 뜻이자 윤회 속에서 모든 것이 인과관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평생 돌다 보면 지금은 이렇게 우매하고, 절망하고, 무너져 있는 나도 언젠간 모든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인가? 아니면 평생 멍청하게 이 삶을 떠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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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Never Get Old, We Never Faded Away


 

나노말의 <행복회로> 마지막 시리즈는 나의 행복회로를 끊어내는 마지막 수단을 단행하며 느끼는 감정의 끝과 종말을 담고 있었다.

 

우리가 세상의 권태기, 인생의 슬럼프에서 한 번쯤 느꼈을 감정들을 극단으로 증폭시키며, 이를 쾌감 느껴지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담아냈다. 조각나고 망가지고 부서진 내 감정의 파편도 결국 모두 나 자체이다.

 

감정의 끝과 극단을 조용히 폭발시키고 싶을 때 나노말의 앨범을 들어보면 어떨까. 마지막 트랙의 제목처럼, 이 파편 속 선명한 감정의 우리는 절대 늙지 않고 희미해지지도 않을 테니까.

 

 

 

주영지_컬쳐리스트.jpg

 

 

[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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