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 [사람]

나를 붙잡았던 순간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23.03.1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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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사진찍기에 재미를 들였을 무렵, 길을 걷다가도 여행을 가서도 자주 찰칵거렸다.

 

보정에 공을 들여 내 기억보다 더 멋지게 나온 사진들, 아름다운 풍경을 오히려 카메라로 다 담아내지 못한 사진들, 아주 뒤죽박죽인 방대한 기록들을 정리하며. 문득 사진을 찍을 때마다 또 찍은 사진을 다시 볼 때마다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소유하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는 조금 오만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과거의 내가 생각난다.

 

하늘의 구름도 머그컵의 손잡이도 때론 내 사진의 피사체가 되곤 한다. 누군가에겐 한없이 평범한 어떤 풍경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올 때면 사진을 찍었다. 난 사진을 찍음으로써 내게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붙잡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붙잡았다고, 사진을 막 찍기 시작했던 무렵의 어떤 순간까진 믿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선 내가 이 순간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순간들이 나를 붙잡는다고 생각했다. 무한하고 영원한 시간 속 어쩌면 찰나의 존재에 불과할 뿐인 나를 이 찬란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그리고 그것이 유한한 내 삶을 무한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고 믿었다.

 

그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내가 도달했던 결론은 결국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다소 회의적인 생각이었다. 노을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어느 날 방전된 카메라를 붙잡고 멍하니 버스 창 밖을 보다가 문득 하게 된 생각이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노을도, 마침 앉아있는 버스의 이 자리도, 이 황금빛 세상도, 지금 이 순간 드는 이 마음도. 이 순간에 마침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찰나에 불과하다는 걸. 때때로 사진들을 정리하고 또 꺼내보며 그 순간들을 추억할 때마다 난 그 시간들을 소유했다고 자만했지만, 과거를 추억하는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붙잡았다 생각했지만 결국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는 어쩐지 사진도 잘 찍지 않고 종종 쓰던 글도 안 쓰게 되었다. 글도, 사진도, 결국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기 위한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그냥 놔두고 싶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날 스쳐지나갈 뿐이라면 순간순간을 붙잡기 위해 덧없이 애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난 어디에 서 있을까. 여전히 흘러가고 나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순간 속에서 내 손엔 아직 카메라가 들려있다. 내뱉고 싶은 생각이 내 안에 고이면 가끔 글을 쓰고 어떤 풍경을 마주하면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를 처음 잡았던 시절처럼 자주 사진을 찍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종종 사진을 찍는다.

 

남는건 사진 뿐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사진을 찍었던 그 무수한 순간들은 흘러가고 남은건 그 시간이 존재했다는 그런 증거 같은 작은 파편들뿐이다. 결국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깨달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다시 사진을 찍고 있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정리하고, 다시 되돌아보는 그 모든 과정조차 내 삶의 순간들이자 시간이라는 것을 이젠 난 안다. 어쩌면 어떤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우리에게 그 순간을 살았다는 증거와 같은 작은 파편은 그 자체로 참 소중하고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걸 안다.

 

매일 지는 노을의 색이 다른 것처럼 그렇게 모든 것은 흘러간다. 요즘은 그렇게 좀 흘려보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흘러가는 시간들에 지나치게 좌절할 필요도 없지만 집착할 필요도 없다. 감정이든 기억이든 고인건 썩기 마련이다. 어쩌다 잘 찍힌 사진 한 장을 애써 공들여 보정해봤자 내 기억이 더 대단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전문 사진작가도 아닌 그저 사진찍기가 취미인 나 같은 일반인 주제에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진을 전보단 덜 찍는 것 같다. 어쩌다 아름다운 순간을 만나도 눈으로 가슴으로 담아두려고 하는 편이다. 기쁜 순간도 슬픈 순간도 아름다운 순간도 그렇게 흘러가야 또다른 내일의 풍경을 볼 수 있을 테니.

 

가끔은 사진으로, 또 가끔은 그저 눈과 마음으로 내 인생의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가득 담을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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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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