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백하자면... - 지나친 고백

글 입력 2023.03.0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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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고백


 

‘지나친 고백’이라는 책에 접근한 것은, ‘고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울렁거림 때문이였다. 오랫동안 혼자 살아가는 것이 기쁜 동물인냥 살아가다 최근에는 왠지 삶이 다른 물결로 나를 이끄는 것만 같았다. 삶은 여러 모퉁이를 돌며 침묵에서 말하는 것으로, 숨김에서 드러냄으로, 고백하지 않음에서 고백함으로 나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책 ‘지나친 고백’은 끝을 알 수 없는 이 과정에 한 귀퉁이이다.

 

지나친 고백은 작가의 자전적인 책으로 작가 크리스티는 스스로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받을 수도 없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그런 그는 로젠 박사에게 그룹상담을 받게 되는데 이 상담의 재밌는 점은 비밀이 없다는 것. 유투브에는 ‘가까운 사람이라도 다 말하지 마요, 약점이 되어 돌아옵니다’라는 형형각색의 인생 수업 썸네일들이 만연한데. 비밀은 각자의 것이라 말하는 우리 기조와 달리 이 심리 상담의 공간에서는 비밀이 없다. 비밀은 혼자 끌어안고 있을 때 내가 감당하게 되는 ‘필요치 않은 무게’가 된다고. 

 

그래서 내담자들은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말한다. 내담자와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심리상담가를 제외하고 모든 내담자들은 그룹 내에서 알게 된 것을 제 3자에게 자유롭게 이야기할수도 있다. 주류의 가르침에 대항하는 사회실험이라도 꾸려 보듯이, 다른 사람들에게 약점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비웃듯, 어렸을적 트라우마에서부터, 연인관계, 성관계, 낮은 자존감, 진로의 고민까지 숨김없이 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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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면 가벼워져요. 아마도...


 

누군가 우리는 각자의 취약성에 기반하여 서로와 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비밀은 결국 다 그런 종류가 아닐까. 약하고, 찌질하고, 도덕적으로 결점이 있다거나, 결핍되거나 과잉되었거나. 사회에서 보여주는 반짝이는 이미지의 정도에 도달하지 못한 것, 우리의 한없이 취약하거나 취약했던 부분, 그 부분이 현실에서 일그러져 나타난 것. 그러나 아마도 진실은, 이 일그러짐이 우리의 모습에 더 가깝다.

 

책에서 크리스티는 여러 상담 그룹을 거치는데 가장 오랫동안 상담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세번째 그룹에 참여하기까지 이른다. 비교적 “친절”의 외양-혹은 사회적 거리-을 유지했던 이전의 그룹들에 비교해서 세번째 그룹의 사람들은 서로 거리낌없이 싸우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면 다른 사람은 금세 그 이야기에 공감하며 안고 눈물을 흘린다. 어떻게 들리는가? 지나치게 감정적이다거나 비현실적이다거나 작위적으로? 나는 이것이 ‘가능하게’ 또는 ‘현실적이게’ 들린다. 정확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사실에/사실을 아는것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령, 어떤 공상을 해보냐 하면…

 

그 누구도 진실을 말할 수 없고, 어려움을 나눌수도 없는 사회가 도래하는데 서로는 서로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들고 다니며 그 이미지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볼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이미지의 왜곡된 완전함에 자신의 얼굴은 영영 이방인으로 보일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같은 땅에 살면서도 무수한 이방인만이 존재하는, 주인은 한낱 이미지 쪼가리일 뿐인 혹은 왜곡 그 자체일. 왜, 들어보면 우정없는 모임들에 갔다 온 후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고, 더 공허해졌다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있지 않은가?

 

결국 각자의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것은 ‘당신’이 누구이고 ‘내’가 어떠한 사람이고 그 어떠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즉 우리에 대한 이해를 구성한다. 단순히 ‘너도 문제가 있어서 위안을 얻었다’, ‘너의 불행에서 위안, 좀 더 가서는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슬픔을 공유하며 서로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자신에게서 상대의 얼굴을 본다. 서로의 낯빛이 투명해지고 그 얼굴은 자라나 그 문제 있는 상대방이 그만큼 문제 있는 내 존재에 기둥 하나가 되어주는, 치장된 거짓이 아니라 거북하고 날 것인 진실에 기반한 연결을, 책은 이야기한다. 책에서 크리스티의 친구 내담자들과 로젠 박사는 단순한 내담자 혹은 심리상담가로 남지 않는다. 그들은 크리스티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 기반이 된다.

 

 

 

도덕보다 진실(?)


  

자, 흥미로운 부분을 하나 소개하겠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책의 한 챕터에서 테이트는 부인과 사이가 나쁘고 곧 이혼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결혼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녀도 있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사랑의 징표로 나타나는 이런 저런 행동을 한다. 같이 그룹상담을 받고 있는 친구 내담자들은 그에게 우려의 표시를 하지만 정작 조언을 주어야 할 로젠 박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마치 크리스티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용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사건은 크리스티로 하여금 자신의 경향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안정적인 것에 끌리기 보다는 문제 많고 스트레스를 부과하는 것들에 끌리는, 스스로를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관계에 매력을 느끼는 경향. 이 유부남과의 관계 후에 크리스티는 점점 더 안정적인 관계들에 안착하게 된다. 유부남과의 연애에 잠자코 있었던 로젠 박사는 그 후 크리스티의 안정적인 관계들에 진심으로 기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떠오른 이야기가 하나 있다. 금욕을 요구하는듯 보이는 기독교의 신에 대립되는 그리스 신의 특성을 설명하는 이야기인데 그리스의 신은 신을 욕보이지만 스스로의 깊은 욕망에 충실한 사람과 신을 드높이지만 자신의 욕망을 모르는 사람 중 전자의 편을 든다고 한다.* 그리스의 신들은 “인간이 가장 깊고 신성한 본능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에 반응하여 행동할 때, 그 인간과 함께”* 한다고 말한다. 

 

이 때 ‘신’의 자리에 ‘도덕’을 대입해보면 어떨까. 가령 도덕을 욕보이지만 스스로의 깊은 욕망에 충실한 사람과 도덕을 무척이나 따르지만 자신의 욕망을 모르는 사람. 사회적 차원에서 양자 중 어떤 것이 옳다 그릇되다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울수 있지만, 혹은 대부분 후자를 선호할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최소한 스스로의 욕망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신화를 통해 말해준다.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알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그 욕망을 실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크리스티의 예처럼 오히려 그 욕망을 이해하는 것 자체, 스스로를 아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욕망을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크리스티가 안정적인 관계에 일종의 지루함을 느낌에도 그것이 관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고 마침내 그전에는 마냥 지루하다고 생각했을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 것처럼.

 

 

 

다림질에 대항하며


 

비슷한 맥락에서 예전에 김이나 작사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요새 친구들이 진지함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새 생긴 신조어들 중에 ‘중2병’ 그런말로 남들 놀려본 적 있죠? (중략)

'나는 이런 성향이 있고, 이런 말을 하는게내 진심인데, 

이런 얘기를 하면 뭐라 하는거 보니까 이런 말 안 해야지, 

아무렇지도 않은척 해야지, 덜 진지하게 해야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자기를 밋밋하게 깎아가려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너무너무 안타까워요 보기에. 

왜냐하면 그때 깎여 나가는 것들이 자기에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내 스스로 별로라고 느끼는 점을 잘 생각해보면 정말 문제가 있어서 고쳐야 될 점이 있고 

남들이 보기에 멋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을거에요. 

제가 이야기하는 소중한 것들은 후자예요. 그것을 흔히들 찌질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멋지지 않은 모습. 

그런 것들은 사실 뭔가가 과잉되어 있기에 남들의 눈에 거슬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적을 받는건데 남들보다 과잉이 되었다는건 

반대로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가지고 있는 무엇이에요. 

그래서 그 면은 내가 아직 모르는 내 재능과 연결된 경우가 많아요. (중략) 

그런데 20대부터 너무 다림질하기 시작하면 그냥 보급형, 기성품 같은 사람이 되어있어요. 

그냥 적당하게 무난한 사람이고 ‘사람 좋아’ 그렇지만 어딘가에서 꼭 필요한 사람일까요? 

그건 아닌 확률이 높은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 20대 때 여러분 또래에서 멋있어 보이려고 지금 자기만 갖고 있는 어떠한 재료들을 

털어버리거나 거세해 버리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도 많이 들어 말하기가 입 아프고 듣기에도 질린 부분이지만, 한국사회는 다림질이 심한 사회이다.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 같긴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어보인다. 직업, 성적, 집, 관계, 성격 모두에서 다림질의 기능이 작동한다. 비교하는 문화, 다름을 같은 ‘우리’로 흡수해 버리려는 동질적인 문화. 굳이 이렇게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인데. 가령 한국인구 전체 비율에서 대기업 종사자의 비율은 10% 남짓인데 자라올 때부터 들어왔고 이야기하는 대화에서나 머릿속에서 ‘대기업’이라는 개념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10%를 훨씬 웃돌 것이다. 숱한 재벌 드라마도 마찬가지이다. 훨씬 말하기 까다로울 성격이나 개성의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어떤 이미지를 비춰준다... 그 이미지가 진짜 사람들을 비춰준다고 묻는다면, 글쎄다…

 

“좋은” 직업,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욕망의 거세가 문제다. 대조되는 좋은 예를 들자면 책에서 크리스티는 모든 방면에서 자신을 이해해가는데 그 중 하나가 직업적 욕망이다. 크리스티는 책의 초반부에서 로스쿨을 다니는 학생으로 등장하는데 수석을 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아주 좋은 변호사 로펌에 들어간다거나 하는 커리어 우먼의 길을 감히 꿈꾸지 않는다. 그건 가장된 겸손일수도 혹은 성공이나 돈을 따라가는 아주 원초적인 욕망에 대한 주입된 거부감일수도, 스스로에 대한 이해부족일수도 있었겠지만 상담을 통해 사실 자신은 마음속 깊이 법조계에서 랭크가 높은 직장에서 일하는 단순하지만 명료한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크리스티의 행동은 바뀐다. 두드릴 수 없을 것 같았던 회사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흔히 ‘주체’는 ‘타인’에 의해 형성된다고 한다. ‘나’는 ‘당신’과의 관계에서 이해된다. 김이나 작가의 말처럼 다듬어지지 않고 과잉된 자신의 부분이 언젠가 건강한 자신의 개성으로 자리 잡기까지 그런 ‘내’가 될 수 있도록 ‘내’말을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당신’이 중요하다. 섣불리 타인에게 수술칼을 대지 않고 기다려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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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문제는 어렵다. ‘누구’에게 나를 고백할 수 있을까의 문제. 이는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질문이 아님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수동적으로’, 교정하려 들지 않고 타인의 고백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 뿐. '조금 더 고백해도 좋다'라고 말하고 싶고 스스로도 살금살금 이 교훈을 따라 살려고 한다만 세상이 그렇게 꽃밭인 것은 아니니까. 답답한 결론이지만 왕도는 없는가 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만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그래도 읖조려본다.

 

책의 문체는 전문적인 작가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수수하고 날것이다. 평균보다 잘 쓰인 누군가의 일기를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종이속에 있는 크리스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이 살며 부대끼고 이야기하는 것의 힘이 자박히 스며든다. 이야기는 내게로 흘러들어오고 또 누군가에게로 흘러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만남이 되었으면, 봄이 시작되는만큼 희미한 꽃밭을 거닌다.

 

 *민윤영, "안티고네 신화의 법철학적 이해", 법철학연구 제 14권 제 2호, 2011, 67-104쪽

**김이나, 청춘페스티벌

 

 

[남영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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