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철저한 사랑의 공식과 변수, 사랑의 이해 [드라마]

글 입력 2023.03.0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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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완주했다. 울다가 웃다가 씁쓸했다 응원했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16화가 끝나 있었다.


사랑의 이해는 평범한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 얘기다. 동네에 하나씩은 있는 은행, 거기 안에서 일하는 은행원과 청경. 한 번씩은 보았을 법한 장소와 사람들.


특별한 거 없는 이 이야기가 이다지도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 이야기는 지독하게 평범한 사랑을 과장이나 축소 없이 보여주고, 우리는 주로 평범을 가장 현실적인 것이라 여기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범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드라마는 혹여나 가혹할 수도, 너무 쓰라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나온 누군가가 생각나서, 그때 안 했던 것들이 후회돼서, 아직도 그렇게 계속 아파서.


내가 드라마를 다 본 후에도 아직 이렇게 아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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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까요, 종현 씨랑?"

사랑의 이해 9화 중




희생은 이해(利害)관계를 만든다.



수영의 사랑의 언어는 희생이다. 수영은 상수가 자신을 위해 지점장 비리를 고발한 것을 알고 인정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수영이 처음 상수에게 호감을 표시했던 방식에서도 알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신입일 때 겪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적어놓은 오답 노트를 상수에게 주었다.

 

상수는 이를 아직 잘 간직하고 있다. 상수의 사랑의 언어도 희생이다. 그렇지만 상수는 더 광범위하게 희생한다.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점장님 구두 맡기러 갔을 때 시장 상인이 고등어 봐달랬다고 봐주고 식탁에 앉으면 자연스레 수저를 놓는다. 호감이 없는 상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수영에게도 희생했다. 다만 희생의 정도가 더 크다. 들키지 않게 지점장의 비리를 고발하여 희생한다거나, 무거운 무언가를 들어주려 하는 등 주위를 맴돌며 끊임없이 도움을 주려 한다. 수영과 약간 다른 점은, 상수는 이미 희생이 체화되어 미숙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영과 상수가 잘 맞는 이유는 어쩌면 사랑의 언어가 희생으로 같기 때문이리라. 상수가 횡단보도에서 수영과의 약속을 망설였을 때, 수영이 이해하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냈던 것도 그런 이유이다. 수영이 상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상수를 만났을 테니까. 그러니 회의실에서 수영의 접대에 대한 상수의 발언도 수영의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만하다.

 

이 부조리한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라니. 자신이었으면 남들에게 오해를 사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겠지. 역설적으로 사랑의 언어가 같아서, 그들은 그렇게 엇갈린다.


반면 미경은 희생하지 않는다. 애초에 가진 것이 많으니까, 아무리 줘도 희생이 되지 않는다는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은 상대의 반응과 되돌려 받는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되돌아오지 않아도 계속해서 주면 그만이니까, 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미경은 계속 준다. 상수에게 옷을 선물하고, 영양제를 선물하고, 자동차까지 선물한다. 마음도 준다. 비록 상수가 좋아하는 상대가 자신이 아니어도 계속 주다 보면 돌아보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상대가 나로 채워지길 바란다. 미경의 사랑은, 우정은, 선물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영은 여전히 사랑에서 줄 수 있는 것이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희생한다. 종현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무너진 그를 일으켜 자기 집으로 들이고, 자신의 공간을 내어준다. 심지어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공간이었던 베란다를 치워서까지 그렇게 한다.


종현은 그게 부담스럽고, 수영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종현의 사랑의 언어는 희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종현은 희생할 수가 없다. 종현은 희생할 자기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종현의 사랑의 언어는 미래고, 꿈이다. 희생해서 줄 만한 자신이 없어 비참하다. 그래서 미래에 근사해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상대에게 꿈을 준다. 같은 방향으로 꿈꾸는 것. 그래서 지금은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이럴 것. 가능성을 보는 것과, 가정하는 것. 그는 상대에게 예쁜 미래를 담보로 주고 현실을 견뎌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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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엔 갑을 관계가 없지만, 이해는 갑을을 만든다. 사랑은 어디로든 갈 수 있으나 희생은 받는 사람이 있어야 완성된다. 사회적 지위, 돈, 명예, 상대를 좋아하는 정도 등은 이해 속에서 마음을 포함한 모든 것들에 무게를 만들고, 따라서 저울은 항상 동등하게 달리지 않는다.

 

이때 갑이 을에게 퍼붓는 무작위적인 희생은 폭력이다. 수영의 사랑은 그렇게 종현에게 폭력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미경의 사랑도 상수에게 폭력이 된다. 분명히 주고 또 줬는데, 상대는 아파한다. 드라마에선 미경> 상수> 수영> 종현의 순으로 크고 작은 희생이 이루어지고, 그 역순으로 희생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가진 게 없으므로 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줄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수영은 아무리 모아도 자신이 꿈꾸는 미래와 간극이 있다. 창구직원과 정규직과의 간극, 자신이 사랑한 남자와의 형편 측면에서도 간극을 느낀다. 자기 자신이 자산이 되어 악착같이 살아온 수영은 항상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밖에 없다. 어쩌면 당연하다. 그걸 원동력으로 살아온 사람이니까. 그런 점에서 수영은 종현을 좋게 평가한다. 미래를 주고, 꿈을 꾸고, 그걸 향해 나아가고. 사랑하는 상대에게도 그걸 퍼먹여 주는, 그것밖에 없는 종현을.

 

너무나 커다래서 줄일 수 없는 틈새라도 꿈에서는 다 가능하니까, 꿈을 꾸며 취해보고자 한다. 지금 상황을 낫게 만들면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릴 거라고, 자신과 현실을 희생한다.

  

철저히 남을 위한 희생이지만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 그가 사는 미래는 너무 밝아 보였거든. 나도 밝아지리만큼. 그렇기 때문에 수영은 상수가 아닌 종현을 선택한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택한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런데도, 사랑은 도저히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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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 계장님에게는 불행이었어요?"

"아니오, 변수." / 사랑의 이해 15화 중



그런데 희생의 공식, 사랑의 방정식은 모두가 변수가 없다는 전제하에 존재했다. 그리고 안수영은 하상수에게, 언제나 변수였다.

 

상수는 숨어 있는 수영을 항상 찾아내곤 했다. 은행을 갑작스레 그만두고 통영으로 떠난 수영을, 번호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한 바닷가에서 찾아낸다. 어떻게 찾았냐고 묻는 수영에게 상수는


'그냥, 여기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사랑의 이해'에서 좋았던 점은 고민하는 자신에게 주변 인물들의 말 한마디, 조언 한마디가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결정적으로, 운명같이 듣게 된 누군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문제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 걸 보곤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안다. 누군가 마법을 부리듯 내뱉은 말 한마디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자신만이 스스로 선택하여 그것이 옳게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다.


상수는 결국 이혼하고 사랑을 택한 석현과, 미경을 많이 사랑했지만, 집안의 격차를 인식하고 사랑보다는 현실을 택하게 된 경필의 상황을 모두 인지하고 그들의 말을 듣고, 고민하지만, 결국은 제 뜻대로, 사랑을 택하지도 현실을 택하지도 않는다. 그저 수영을 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공식이 깨지고 모든 생각이 멈춘다. 변수를 사랑하니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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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수영 씨한테는 항상 져 줄게요."

사랑의 이해 10화 중



나는 드라마를 14화쯤 보면서, 제발 상수와 수영이 사귀게 되기를 빌었다. 수영이 모든 관계를 의식하지 않고 상수를 택하여 남자친구로 만들기를 빌었고, 상수처럼 수영도 결혼을 생각하길 빌었고, 통영에서 미래를 그리던 둘이, 내일 서울에서 만나길 바랐다.

 

하지만 통영에서의 마지막 만남 이후, 그들의 다음 만남은 4년 뒤가 되었다. 왜 그냥 만나지 않느냐고 투덜댔다. 나였으면 '저렇게까지 하면 만나보겠다.' 하고 과몰입하기도 했다.

 

수영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수를 항상 생각했고, 상수로 인해 얻은 ‘내일의 행복’을 통해 카페를 차렸고,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했다. 상수는 몇 년이 지나든 수영을 생각했고, 수영처럼 보이는 뒷모습을 쫓았고, 항상 먼저 그녀를 찾았다.

 

누굴 만나든, 누구와 사귀든, 얼마나 서로를 보지 못했든, 그들은 그래왔다. 무엇보다도, 서로가 그것을 느낀다.


그들이 그토록 애틋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들의 사랑이 관계로써 정립되길 원하고 그렇게 우리의 눈앞에 가장 쉬운 방법으로 보이길 원하는 건 욕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록 우리가 정의하고픈 어떤 '이름', '관계'로 남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그들이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라는 명목으로 불리든, 사귀게 되었든 아니든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난 후에는, 다만 그들이 계속해서 사랑하길 빌게 된다.

 

어떠한 방식이든 좋으나 되도록 서로를 잃어버려도 찾을 수 있는 방식으로, 그토록 보고 싶던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이와 해가 상충하는 세상을 비로소 이해하여,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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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을 이해하려면


 

드라마를 보다 보면, 미세한 표정 변화들이 마음에 박힌다. 그 표정들은 꾸미지 않아도 다 드러난다. 슬프다가도 금세 웃음이 나기도 하고, 화가 났다가도 그리워지는 표정이 보인다. 그렇게 순간마다 바뀌는 감정들은 특정한 장면 안에 한 가지의 표정으로만 구현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에서 한 가지 감정만 느끼지 않는다. 아픈 사랑일 수도, 슬픈 사랑일 수도, 즐거운 사랑일 수도, 어쩌면 이 모든 것의 반복일 수도 있다.

 

이 글을 끝내기 전,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냐고 묻고 싶다. 어떤 사랑일지는 몰라도, 사랑 때문에 많이 아파도, 그래도, 처절하게 사랑하자고 하고 싶다.


"부서지지 않는 모래성을 만들어요. 지레 겁먹어 먼저 부수지도 말아요. 파도가 닿지 않는 곳에 있어요." 말해주고 싶다.

 

모두가 너무 늦지 않게 사랑을 이해하려면.

 

 

[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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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berry
    • 올해 들어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드라마인데, 글이 너무 좋아 한 번 더 정주행하고 싶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
    • 1 0
  •  
  • 묘화
    • 너무 인상 깊게 보았던 드라마 인데. 글이 너무 공감되고 잘쓰셨네요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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