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크리스마스 휴가 최고의 선물은 '나' [영화]

글 입력 2023.03.06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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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그녀가 없다. 그녀의 시선은 그녀를 쫓는 시선들을 따라갈 뿐이다.

 

그 시선들은 그녀가 하루종일 무엇을 먹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그녀에게는 그 시선들 하나하나를 볼 마음의 여유도 없지만, 그녀가 보고싶은 곳을 바라볼 기회조차 없다.

 

묘하게 선명하지 않은 영화의 편집은 답답함을 고조시키고 우리는 다이애나의 숨 막히는 상황 속에 이입된다.  그렇게 숨 막히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3일이 시작된다.

 

 

 

숨 막히는 시간, <스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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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노퍽의 퀸즈 샌드링엄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리고 그 휴가에는 왕실의 왕세자비인 다이애나 스펜서도 자리한다. 3일만 버티자는 끊임없는 자기 위안과 함께.

 

퀸즈 샌드링엄의 저택은 이해할 수 없는 전통만이 즐비한 공간이고 이곳에서 다이애나에게는 기본적인 의식주도 선택할 권리가 없다. 매 행사마다 정해져 있는 옷을 입어야 하고, 남편 찰스 왕세자가 불륜녀에게 선물한 것과 같은 목걸이를 걸어야 한다. 매 식사마다 정해져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며, 먹고 토하는 것은 참아야 한다. 유년 시절을 보낸 그리운 공간에 찾아갈 수도 없고, 추워도 온기 있는 곳에서는 몸을 녹일 수 없다.

 

두려움과 불안, 터뜨리지 못한 분노로 가득 찬 그녀의 눈동자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지만, 그 시선을 읽고도 아는 체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는 왕세자비로서의 행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만들 뿐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다이애나는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에서도 길을 잃게 되는 외로운 방랑자가 된다.

 

 

 

진정한 '나'를 입는 순간

 

하지만, 다이애나는 자기 자신을 갈망할 줄 아는 여성이다. 정해져 있는 옷을 입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을 옥죄는 목걸이는 끊을 수 있으며, 창밖을 가려 놓은 커튼은 걷어낼 수 있다. 옳지 않은 왕실의 꿩 사냥 관습에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가고 싶은 고향에는 달려갈 수도 있다. 

 

왕실의 사람들은 다이애나를 보호하기 위한 일이라는 명분으로 이런 그녀를 막아서지만, 다이애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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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하며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회의감은 진정한 나의 모습과 마주했을 때 크게 와닿는다. 현실의 문턱에서 순응을 택하였지만, 내면의 자아는 언제 어디서나 발현될 수 있다. 내면의 자아만큼 숨기기 어려운 것은 없다. 마음속 깊이 눌러놓았지만 작은 말과 행동들 하나, 흔적 하나에서 진정한 ‘나’는 저항 없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제 모습을 드러낸 자아를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놓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에서 그치고 후회와 그리움만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순간들은 그녀와 그녀에게 소중한 것들을 앗아갈 뿐임을 인지하고 그녀가 꿈꾸는 생활이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주장한다. 

 

그때부터 그녀는 휘몰아치는 감정의 동요를 억누르려고 애쓰지 않는다. 자신을 감시하고 가둬두는 왕실 사람들에게도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더이상 작은 거울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참겠다고 다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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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자아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매개체는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아버지의 옷이다. 어린 시절에 허수아비에게 입힌 아버지의 옷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고향과 자신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준다. 그 옷을 그대로 두지 않고 세탁하여 소중하게 챙기는 다이애나의 모습에서 그녀가 진정으로 지키고자 하는 자아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행복했던 유년 시절 다이애나 스펜서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게 된 다이애나는 한 번 더 그 모습으로 살고자 한다. 그녀는 허수아비에 자신이 왕실에서 입었던 옷을 입히며 ‘왕세자비’라는 감투를 허수아비에 내려놓고 온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의 외투를 입고 감투 속에서 허수아비로 살아온 자신, 다이애나 스펜서를 챙긴다.

 

그녀는 온전한 다이애나 스펜서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자 한다.

 

 

 

더 넓은 곳을 향해


 

크리스마스 휴가 3일 동안 대저택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다이애나가 온전히 있을 수 있는 공간은 방에 딸린 작은 화장실 뿐이었다. 견디기 힘든 왕실의 생활이 그녀를 괴롭힐 때면 그녀는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숨 막히는 일상 속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몇 분간의 짧은 도피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더 넓은 공간으로 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리고, 넓은 강가를 바라본다. 더 이상 자신의 모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향할 곳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한계 같은 건 없어 보인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 어디까지나, 아무런 방해도 있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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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다이애나 스펜서를 찾은 것이지 아닐까.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스펜서"

 


[이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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