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식 중독 [도서/문학]

만들고, 먹고, 치우는 수고로움은 나를 위한 그 어떤 투자보다 값지다
글 입력 2023.03.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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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중독의 시대이다. 하루 종일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과 넘기면 끊임없이 재생되는 짧은 영상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한다. 이뿐일까, 어느새 약물 중독도 우리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게까지 각종 마약의 언급이 잦았던 때가 있었나 싶다. 음주 문화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음식과 곁들이는 반주로 시작하여 사회생활에서는 필수적인 회식까지. 우리는 알코올과 너무나도 밀접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음식’에도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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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슈는 2002년 8월 22일에 맥도날드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냈다. 원고는 재즐린과 또 다른 10대 청소년이었다. 허슈는 맥도날드가 소금, 설탕, 지방, 콜레스테롤 함유량이 높은 제품을 파는 과정에서 불공정했으며 소비자들을 현혹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첨가물을 얼마나 섭취하게 되는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당시 식음료 업계에서는 일반적인 일이었는데 제품 포장지나 매장 진열대 어디에도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식료품점도 마찬가지였다.
 


‘음식 중독’은 한 변호사의 소송으로 서문을 연다. 식품 영양성분 표기법이 활성화되지 않은 때에 소금, 설탕, 지방이 얼마나 유해하고 중독적인지 알리려는 소송이었다. 소송 자체는 이기지 못했지만, 음식과 중독에 관한 논의가 과학계로 넘어가며 가공식품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학계는 설탕이 뇌를 자극하는 데에 0.6초, 즉 1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끊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담배도 뇌에 도달하는 데에 10초가 걸리는데 말이다. 책에서는 중독을 “어떤 사람들이 그만두기 힘들어하는 반복적인 행동”이라고 정의한다. 반복적이고 충동적으로 느껴지는 식탐은 소금, 설탕, 지방만으로도 강하게 발생한다. 


영양성분 표기가 법제화된 요즘이지만 사람들은 간편하다는 이유로 다량의 나트륨, 당, 지방이 포함된 가공식품과 배달 식품을 애용한다. 특히 자취를 하거나 직장에 다니며 집안일을 할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음식 중독은 더욱 습관적으로 다가간다. 음식이 약물처럼 뇌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공식품은 싸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접근이 훨씬 용이하다.


 
중독의 모순적인 현상 중 하나는 중독자가 중독 물질을 점점 덜 좋아하지만 점점 더 강하게 갈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음식을 여러 번 먹기를 싫어하는 탓에 매일 두 끼의 요리를 하는 나도 주에 한 번씩은 꼭 강렬한 맛의 배달 음식을 찾게 된다. 음식을 시켜 먹으면 처음에 느꼈던 감동과는 거리가 먼 맛이 난다. 배달 한 번에 쓴 돈과 장바구니에 담긴 재료의 가격을 비교하며 허탈감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느꼈던 그 강렬함을 잊지 못해 결국 또 배달을 시키게 된다.


가공식품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 만두 맛에 질렸는데도 이 만두와 저 만두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장바구니에 또 만두를 담고 만다. 2001년 맥길 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자신을 초콜릿 중독자라고 묘사한 사람들은 “너무 싫다. 더 먹으면 속이 이상해질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초콜릿을 먹는 행위를 멈추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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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먹는 영상, 소위 ‘먹방’ 시장이 커지며 ‘단짠’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했다. 짠 음식을 더 못 먹으면 단 음식으로 짠맛을 상쇄시키고, 단맛이 더 들어가지 않으면 또다시 짠맛으로 입을 헹구는 것이다.


나는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만들어 먹는 음식에도 설탕을 넣지 않고, 느끼한 음식을 먹어도 단맛 없는 탄산수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런데 자취를 시작하고 배달 음식을 먹으며 단 탄산음료를 찾는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단지 기름지고 느끼한 것만이 아닌, 짠맛이 강한 음식은 정말로 단맛을 끌어당긴다. 

 

 
새로움은 어떤 저항도 압도해 버린다.
 


많은 사람들은 단짠을 반복하면 음식이 무한히 들어간다고 이야기한다. 포만감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맛의 음식이 주어지면 다시 먹기를 반복한다. 밖에서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면 더 많이 먹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양한 메뉴를 시켜 나눠 먹기 때문에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극에 민감한 동물이다. 하나의 음식을 먹기보단 다양한 음식을 함께 먹기를 원한다. 식품업계는 더 큰 자극을 찾고, 더 다양한 맛을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상품을 만든다. 하나의 맛에서 그치지 않고 더 자극적이고 더 강렬한 맛의 제품을 선보인다. 


물론 사람들이 자극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트랜스지방을 지적하여 제품에서 트랜스지방의 비율을 줄이기도 하였고, 당류를 지적하여 많은 ‘제로’ 음료를 출시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기업들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 소비자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트랜스지방의 비율을 줄이는 대신 포화지방의 비율을 늘리는가 하면, 설탕 대신 위험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인공 감미료을 사용한다. 저자는 감미료의 위험성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퍼듀 대학교의 행동신경과학 교수 수전 스위더스는 혀에서 인지하는 열량과 실제로 위에 도착하는 열량이 다를 때 신진대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합성 감미료를 먹인 초파리는 잠을 자지 못하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먹으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이상할 정도로 많이 움직인 탓인지 체중의 변화는 없었지만, 몸에 쌓였을 때 결코 좋은 물질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시대 속에서 식습관을 지키려면 먹는 것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배달 음식도, 가공식품도 모두 내가 원하면 빠르게 섭취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강하게 욕망할 때,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뇌의 제어 기능은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배가 고프다고 느낀 순간부터 한입에 한 끼 식사를 끝내는 데까지 우리의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충동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거죠.” 음식 수업을 하는 교사 스티븐 리츠의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각과 후각으로 음식을 인지하는 만큼, 요리를 하며 간을 보고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뇌의 제어 기능은 활성화된다. 음식을 인지하는 데에 시간을 줄 때 뇌는 식탐을 조절할 수 있다. 바쁜 현대 사회에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요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매일 먹는 음식마저도 나의 의지대로 먹지 못한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만들고, 먹고, 치우는 수고로움이 나를 위한 그 어떤 투자보다 값지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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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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