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단행본 저술업자의 우직한 기록 - 도서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글 입력 2023.03.0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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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할수록 더 좋아지는 직업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궁금하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게 된 계기도 품고 있던 궁금증에서 비롯했다.

 

특히 건설회사 직원에서 신문기자로, 다시 전업 작가로 업(業)을 세 번 바꾼 특이한 이력을 지녔기에 그가 현재 파고들고 있는 소설가의 세계는 어떤 이점을 보이고 있는지 듣고 싶었다.

 

'이상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제목부터 흥미로웠던 책은 소설가 장강명이 자신의 업에 관한 생각과 일상을 가득 채워 넣은 에세이로, 솔직함을 뛰어넘은 솔직담백하고 당당한 문체가 매력적이었다.

 

'말하고 듣는 세계'보다 '읽고 쓰는 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에세이는 프롤로그 <소설가의 '일'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된다. 책을 펴내기까지의 에피소드를 풀어내면서 프롤로그를 끝맺을 때 소설가가 헌신할수록 더 좋아지는 직업임을 고백한다.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생산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대답해주면서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직업이기에 하면 할수록 더욱 헌신하고 싶어진다고 말한다.

 

소설을 써 본 경험은 없지만, 글에 매달리고 헌신해본 경험을 지닌 에디터로서 그의 고백이 심히 공감되었다. 동시에, 공감을 안겨준 자체만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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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3부까지 이루어진 목차,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짧지만 다양한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구성 덕분에 소설가의 삶을 여러 관점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독자를 우연히 보게 된 기억부터 오후 11시 반쯤 자고 오전 6시 반 전에 일어나 생활하는 하루의 루틴, 토지문화관 레지던지 프로그램에 참여해 새로운 집필 공간을 얻은 경험 등 소설가만이 마주할 수 있는 나날들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근육, 식사, 커피, 술 등 관리해야 할 대상들을 적다 보면 거꾸로 내가 어떤 경주에 참여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그것도 울트라 마라톤이나 투르 드 프랑스 같은 초장거리 경기다. 그렇게 관리를 해가며 내가 매달리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하고 내 업(業)의 본질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글쟁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아무 글이나 쓰는 건 내 일이 아닌 것 같아서다. 책이 될 글을 써야 한다. 나는 ‘단행본 저술업자’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 32p

 

 

한편으로 <영상의 은밀한 유혹> 장에서는 젊은 소설가들에게 덧붙이는 말로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소설을 쓰면서 영상화 가능성을 고민하는 그들에게 고민하지 말고 그냥 쓰라고 당부하는데,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향하고자 하는 장강명 소설가의 진중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글을 소중히 다루어본 사람에게서 우러나온 마음 같았다. 처음에는 글만 쓰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막막했지만,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에세이에서 말하는 동시에, 몸과 마음을 바쳐 작품을 쓰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뿌듯함을 표하는 그의 행동도 마음을 대변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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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음은 소설가의 수입에 대한 궁금증을 답해주는 과정에서도 보이곤 했다. 21세기 문화 강국에서 활발히 팔리는 소설 판권과 협업, 고용 제안은 반가운 일이다. 강연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러나 수고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거나 고료 체불, 인세 지급 누락 등의 문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임을 말한다.

 

출판은 문화 운동이기 이전에 엄연한 비즈니스이므로, '입금, 교정, 예의' 같은 기본을 제대로 지켜달라고 말이다. 에세이를 통해 업계의 현실을 알리고 이를 고쳐야 한다고 써 내려간 그는 분명 뱉어내기 쉽지 않았을 목소리를 있는 힘껏 뱉어냈다.

 

한 만큼의 정당한 몫을 받는 것.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부조리함을 장강명 소설가는 고발하기도 한다.

 

 

“요즘엔 별걸 다 해야 돼요”라는 푸념 아래에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불안이 깔려 있다. 나도, 편집자도, 마케터도, 서점 관계자도 그렇다. 우리가 점점 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 같다는 존재론적 위기감. 애써 아닌 척해도 콘텐츠와 책은 다르고, 크리에이터와 작가도 엄연히 다르다. 책은 글자로 돼 있고, 작가는 글자로 작업한다. 책의 본질이 굿즈나 토크에 담길 리도 없다. 우린 다 책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 190~191p

 

 

 

문학의 도구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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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소설가는 문학, 소설이 가진 자유의 감각에 강렬하게 사로잡혀 글을 써왔다고 밝혔다. 그러다 업으로 삼게 되면서부터 문학은 반드시 써야 하는 '의미'로 다가왔다.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의미가 된 문학과 한국문학, 출판을 이야기할 때 격렬해지고 말거라 다짐해보기도 한다.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학과의 관계 속에서 작품과 동의어가 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 장강명 소설가는 작품만 생각하며 그저 우직하게 쓰는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결론을 내린다. 사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은 월간 채널예스, 월간 방송작가에서 연재하던 칼럼과 이외 원고 청탁을 받아 쓴 글들을 엮은 모음집으로 우직하게 쓰는 게 무엇인지를 증명한 총체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우직함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글 쓰는 시간을 스톱워치로 재거나, 매일의 생산량을 엑셀에 기록하는 행위는 그가 항상 하는 루틴이기도 하다. 지속하는 힘을 놓지 않는 일련의 루틴을 본받고 싶었다.

 

문학을 도구 삼지 않고, 문학의 도구로 자신이 어떻게 쓰일 것인가를 끊임없이 찾아나서온 한 사람의 태도. 자신의 업에 최선을 다하고 진정으로 아끼는 모습이 묻어난 장강명 소설가의 에세이에는 소설을 쓰는 사람에서 더 나아가 주어진 삶을 허투루 쓰지 않는 인간 장강명의 인생 전반이 녹아들어 있었다.

 

 

“계속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 잘 써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차피 다른 분야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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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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