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꿈이 뭐예요? [미술/전시]

각자가 간직한 꿈을 대하는 태도
글 입력 2023.03.06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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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뭐예요?”

 

이런 질문을 하는 어른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꽤 오래 전부터 나는 ‘미련 없이 죽는 것’을 꿈이라 말한다. 그분께도 꿈이 무엇이냐 여쭈니 조금은 터무니없어 보일지 몰라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부끄럽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보다 20살이나 많은 그분이 순수한 눈으로 꿈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는 아이 같은 목소리가 되었다.

 

어린 시절, 직업 중 하나를 골라 꿈이라고 말해야 하는 줄 알았던 나는 화가나 글 쓰는 작가, 디자이너를 꼽았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 홀로 집중할 수 있는 작업실을 가진 예술가가 되는 것을 꿈꿨다.

 

지금의 나는 그림은 잘 그리지 않지만 어쨌든 미술이라는 분야 안에서 작업을 하며 글도 쓰고, 디자이너로도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괜찮은 작업실도 얻었다.

 

꿈을 이룬 셈이다.

 

 

 

버려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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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예술가 박혜수의 작가 노트를 엮은 책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에는 그의 작업 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박혜수는 사람들에게서 버려진 꿈을 가지고 새로운 꿈을 만들었다. 당신이 버린 꿈이 무엇인지 묻는 설문지의 답변을 분쇄하고, 관객들에게 자신의 ‘지금 꿈’을 조합하여 천장에 매달린 구 모양 조형물에 매달아달라고 요청했다.

 

꿈을 포기할 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 꿈들은 어릴 적 바랐던 무언가일 수도 있고 나이를 먹으며 바뀌게 된 생각으로 수정된 꿈일 수도 있다. 저 설문지에 적을 만한 포기한 꿈이라면 아마 대단히 소중한 꿈이었을 것이다. 가치관이 바뀌어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꿈은 아닐 테다.

 

위 작품 속 설문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버린 꿈은 사랑이라고 한다. 그것을 보여주듯, 결혼이 중산층 이상의 문화가 된다는 기사를 최근에 읽었다. 결혼식 비용과 신혼집 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뿐더러 여러모로 내게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대신에 대리 만족이라도 하고 싶은 대중의 심리를 반영한 것인지 연애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 인기이다.


 

내가 포기한 것은 꿈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내가 포기한 건 꿈이 아니라, 현실에 지쳐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내가 나를 포기한 거였어요.

 

박혜수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66p

 

 

 

각자가 간직한 꿈


 

하루 일과 동안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며 각자가 간직한 꿈이 무엇일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사무실과 거리, 상점에서 내 시야에 들어온 이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있을까, 지금 어디를 향해 걷고 있을까, 이 일에 임하는 태도는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개인을 관찰하다 보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람이 어떤 미래를 살게 될지, 무엇을 이루어낼지, 얼마나 갖게 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앞에 닥친 현실에 임하며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 귀한 것이다.

 

 

꿈은 미래에 이루고 싶은 것을 가리키는 경우가 일반적일 테다. 하지만 누가 꿈을 물어서 지금 갑자기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것도 성가시다. 나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는 꿈>은 현재 시점에서 이미 성취되었으며 앞으로도 이 상태를 쭉 이어 나가고 싶다는 의미에서의 <꿈>이다. 온전히 <지금>만 바라봐도 좋을 텐데, 언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게 전제가 된 걸까.

 

박혜수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33p

 

 

누구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터무니없는 꿈을 꾸더라도, 포기한 꿈을 마음 한 켠에 갖고 있더라도, 지금을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특별한 것 아닐까.

 

 

[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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