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역사의 끈을 묶어 완성한 신발의 기호학 - 신발로 읽는 인간의 역사

글 입력 2023.03.0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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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발 이상의 신발


 

신발은 발을 보호하고 지탱하는 도구다. 신발은 기본적으로 기후 풍토에 따라 형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사회에서 신발은 더 다양한 층위의 의미가 있다. 우선 신발은 문명의 산물이다. 집에 와서야 비로소 신발을 벗는 것처럼, 신발장 앞에서 우리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그래서 신발은 의례적, 문화적, 계급적 성격을 띤다.

 

그래서 흔히들 신발을 정체성의 상징으로 표현하곤 한다. 아마 우리가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니고, 세상을 체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발은 문명의 세계를 탐험한다. 신데렐라의 왕자님이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가지고 그녀를 찾았던 것처럼, 신발은 일종의 명함같이 표현된다. 하지만 '모든 신발은 불편하다'라는 시인의 표현처럼, 신발은 우리를 옥죄는 상징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진짜 발을 가리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예를 다시 끌고 오자면, 신데렐라의 왕자님은 유리구두를 신기 위해 발을 잘라낸 언니들을 의심 없이 신부로 받아들이려 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유리구두'란 우아하고 고상했던 신데렐라의 사회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신데렐라라고는 할 수 없다. 신발은 진짜 정체성이 아니라 사회적 정체성이나 페르소나에 가깝다. 우리는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신발을 '고르고' '적절한' 신발을 신는다. 인류 역사상 신발은 사회 문화적 존재이기 때문에 단순한 기능 이상의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신발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들, 즉 젠더, 연령, 용도에 따라 그 형태를 변화시킨다.

 

그렇다해서 신발이 문명화된 코드에서만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신발은 사회적 역할에서 파생된 에로틱한 상징물로 정의되기도 하지만, 좀 더 원초적인 상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발은 오래전부터 성적인 대상으로 읽히기도 했다. 고대인들은 대지에 직접 맨살이 닿는 것을 에로시티즘으로 생각하여 발과 발의 노출을 성적 상징화 하였다. 발에 하는 키스는 복종과 성적 표현으로 해석된다. 후자의 경우, 발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생명력을 깨우는 행위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발을 은폐하는 전족은 여성의 감정, 태도, 욕망에 대한 통제와 성적 소유를 보여주는 문화였다. 자연스럽게 은밀한 환상을 표현하는 스타일과 패션의 중심에-신체의 변형을 불사하는- 구두가 서게 되었다. 전족 문화는 사라졌지만, 이런 성적인 상징을 위해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발 형태를 변형해왔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인류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다양한 방식-수동성-적극성, 남성성-여성성, 쾌-불쾌로 자신의 발을 변형해왔다. 발은 다른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으로서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그 사람과 집단, 사회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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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의 끈을 묶어 완성한 신발의 기호학


 

오늘 리뷰할 책, <신발로 읽는 인간의 역사>는 신발의 역사를 탐구하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 신발의 역사 기술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책은 디자인의 변천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앞서 내가 기술한 젠더적, 심리적, 계급적 부분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책은 여타 다른 디자인 서적처럼 좋은 해상도의 사진과 그림들이 높은 비율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디자인 서적'보다 '역사서'에 가깝다. 신발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패션이라기보다 사회적, 역사적 사건의 결과물처럼 묘사된다. 이러한 관점은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갈무리하는 마지막 섹션인 '신발'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목적처럼 책의 구성도 직관적이다. 책은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 신발로 다섯가지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마지막 섹션을 제외하곤 신발 형태에 따라 분류하였는데, 독자에게 각 분류에 따라 설명할 것을 예고라도 하듯이 각 신발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아이콘을 제목과 부제목에 노골적으로 표시해놓았다.

 

굳이 네 개의 신발의 종류로 일차 분류한 이유를 책을 천천히 읽다보면 짐작할 수 있다. 네 신발이 대표적인 신발의 디자인 형태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읽다보면 각 시대적 욕망이 잘 드러나있는 신발들을 선별하여 구분했다는 생각이 든다.우선 샌들은 형태상 숨겨야 하는 발을 직접 드러냈다는 특징이 있다.

 

샌들이 이처럼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발을 드러냈음에도 에로시티즘과 잘 얽히지 않는 점이 흥미롭다. 샌들과 얽혀있는 기능과 문화적 상징들이 좀 더 불편하기보다는 '편하다'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샌들은 에로시티즘 보다는 반체제, 캐쥬얼 패션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오늘날에도 샌들은 공식선상에서 신을 수 없는 신발이고, 자유로운 히피와 힙스터를 위한 디자인으로 자리잡았다.

 

두 번째, 부츠는 남성성과 얽힌 신발이다. 샌들과 달리 발을 온전히 감싸는 이 신발은 황야의 카우보이가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던 신발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부츠는 활동성, 남성성과 그 관계를 갖는다. 부츠는 발을 숨기고 어떤 파워와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분명 샌들과 대조된다. 실제로 스킨헤드 패션에서 부츠는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세 번째, 하이힐은 에로티시즘과 연관된다. 높은 힐을 가진 이 신발은 발을 변형하는 대신 매혹적인 실루엣과 움직임을 보여준다. 초기에 하이힐은 착용자의 키를 키워준다는 점에서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후 여성의 사치품으로 분류되면서 성적인 이미지가 되어가다가 핀업걸 등으로 어떤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성주의의 바람에 하이힐은 페미니스트의 신발이 되기도, 배척의 대성이 되기도 했다. 남성들 역시 하이힐을 신었지만 '붉은 하이힐'은 오늘날까지 어떤 성적인 상징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마지막, 스니커즈는 실용적인 운동화에서 최근에는 개별화된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신발이다. 스니커즈는 값싸고 실용적인 대량생산 제품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해 브랜드 로고의 노출과 같이 착용자의 성격을 보여주는 패션으로 자리 잡아갔다. 샌들만큼은 아니지만 비격식적이고 자유로운 이미지로 젊은 CEO들 사이에서 착용하는 신발이기도 하다.

 

이 책의 분류가 '역사서'에 가까운 만큼, 저자는 자신의 의견을 직접 전달하기보다는 당시의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이 책에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과 신발의 표현방법 뿐만 아니라 당시의 기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흥미롭고 세련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은 원하는 결론들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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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가며


 

책을 읽는 내내 매일같이 신고 나가는 신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겉멋 들린 패션이나 어떤 구분 짓기 자체에 어떤 경멸마저 느끼는 나로선 그런 생각 자체를 거부했다는 게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그건 타인을 향한 구체적인 경멸이라기보다 좀 더 추상적인 개념의 어떤 부분을 향한 것이었다.

 

실제로 책장을 넘기면서 우리 인간이 왜 이렇게까지 어떤 존재가 되려고 애썼는지 한숨이 나왔다.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을 이죽거리는 건방진 재간꾼들의 말의 반 정도는 공유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카페를 나서는데, 내 구질구질한 운동화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가지런하게 낮은 굽의 얌전한 정장 구두가 놓여있었다. 과연 나의 신발에도 어떤 의식적, 무의식적 표현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아마 이 책의 독자들 역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직접적으로 성찰을 유도하지 않지만, -다른 잘 쓰인 역사책이 그러하듯이- 다양한 방면에서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인류에게 언제나 특별한 물건이었던 신발은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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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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